brunch

말이 주는 상처

내가 '불쌍하다'는 단어에 유독 민감한 이유

by 존치즈버거


나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중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어 하나가 있다.


"아, 불쌍하다."


나는 이상하게 이 말을 들으면 비수가 꽂힌 듯 가슴 한 구석이 얼얼해진다. 꼭 남의 아픈 상황을 퉁 치는 기분이 들어서. 물론 나라고 불쌍하다는 말을 아주 안 쓰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지키는 나만의 규칙이 있다. 가령, 내가 키우는 강아지가 감기에 걸려 고생 중이라거나 친구가 술에 취해 4등에 당첨된 로또를 잃어버렸다던지, 아이가 거듭된 노력에도 반에서 자기 혼자서만 훌라후프를 못 한다던지, 남편이 호기롭게 넣은 주식이 폭락해 한 달 용돈을 다 날린다던지. 그러니까, 안타까운 마음은 들지만 그 일의 당사자를 잘 알기에 그런 일쯤은 언제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경우, 풀이 죽어 있는 그 사람을 내가 충분히 위로해 줄 수 있는 경우 같은 때 말이다.


그렇다. 나도 자주 쓴다. 불쌍하다는 말.


하지만 세월이 약이 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고통이 누군가의 삶을 덮친 경우에 이 말이 쓰이는 것을 나는 애달프게 생각한다. 특히 그 말을 한 상대가 내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슬퍼지고 만다. 그것은 실망감에 가까울 수 있겠다. 뉴스에서는 매일 공포소설보다 더 공포스러운 사건들이 이어지고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퍼지는 세상이니 큰 일에도 무감해지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어떤 이유로든. 아이를 잃은 사람에게, 철탑에 올라선 노동자에게, 재난이 휩쓸고 간 집터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사람에게, 음지에서 살 수밖에 없는 소수자들의 고통에, 무심하게 "아, 불쌍하다." 하고 마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하다고.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고 항변한다면 어쩔 수 없다. 자신은 진심으로 그 사람이 불쌍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며칠 동안 마음을 앓을 것이다. 이 세상에 불쌍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불필요한 동정의 시선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불쌍하다는 말은 거두었으면 좋겠다. 불쌍하다는 말 안에 타인의 고통을 가두고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작은 소망이다.


어쩌면 내 마음이 너무 예민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냥 나는 이런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부디 어색한 대화의 '사이'를 메우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기보다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가십처럼 타인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오물 묻은 휴지를 쓰레기통에 내던지 듯 "거 참, 그 사람 인생 한 번 불쌍하네." 말하는 것이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타인의 존엄성에 침을 뱉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