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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이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by 존치즈버거


살아오며 몇 번의 이별을 했던가.

그것은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일 수도 있고 차곡차곡 추억을 쌓았던 친구와의 이별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부터 나를 포근히 감싸주었던 이불과의 이별일 수도 있다. 그 상대가 무엇이 되었든 이별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은 우리가 그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했음을 뜻하는 것이 되겠지. 아무것에나 이별이라는 단어를 붙이진 않으니까 말이다.


준비된 혹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이별도 존재한다.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누군가가 내가 발붙인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은 언제고 깊은 고통을 준다. 다만 그와 나 사이에, 또한 그의 죽음에 어떤 의혹도 남지 않았다면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떠나간 그들의 육신처럼 고통도 서서히 세월의 풍화를 통해 부드러운 결정이 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과, 더욱이 '영원에 대한 맹세'라는 말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스스럼없는 사이에 당도한 이별은, 설령 그 이별을 받아들인다 해도 사는 동안 내내 감정의 부스러기가 남고 마는 것이다. 마치 습한 여름날 맨몸으로 백사장을 뒹군 등허리에 콕 박힌 모래알들처럼, 미세하지만 뾰족한 알알이 나의 심장 이곳저곳을 따끔거리게 만들어 버린다.


그중 유독 견디기 '싫었던' 이별이 하나 있다.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남자 친구들과의 이별은 술주정이라는 못된 버릇을 만들었지만 다시금 찾아온 사랑들로 인해 완치될 수 있었다. 전학이나 유학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멀어진 친구들은 sns라는 신기술의 등장으로 시간이 흐른 뒤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으며 다시 이어지기도 했다. 취업이나 결혼 등으로 삶의 2막을 연 친구들도 바쁜 시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내가 정말이지 '견디고 싶지 않았던' 이별은,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 서서히 멀어지는 이별이 아닌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하루아침에 완전히 남이 된 경우였다.


그 녀석은....... 내 인생의 제일 어두웠던 시기, 그 아이는 나에게 '깐족'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전까지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믿었지만 그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그런 생각이 나의 편견이었음을 확인했다. 우리는 다 큰 성인의 얼굴을 하고선 유치하기 그지없는 유머를 주고받고 이제 막 학교라는 문턱을 넘은 초등학교 1학년 애들처럼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까르르 웃으며 땡땡이를 치기도 했다. 그 아이는 사교적이었고 나는 낯을 가리는 것에는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성격이었다. 사실 우리 둘을 뚝 떼어 놓고 보면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성향임에도 둘이 만나면 폭소 대잔치가 따로 없었다. 활기찬 우정과는 별개로 유독 마음의 사춘기를 오래 앓았던 나는 거의 골방 같은 내 자취방에 처박혀 지냈는데, 며칠 방콕을 일삼다 보면 그 아이가 어김없이 내게 전화했다. '자신이 먹을 걸 사 오라'는 황당한 주문을 당연한 권리마냥 제시하며. 나는 천원도 안 하는 만두 한 봉지를 들고 그 애 집으로 갔다. 그럼 녀석은 별로 크게 환대하지도 않고 만두를 혼자 찹찹 먹으며 다시 깐족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유치한 말장난을 맞받아치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하였고 그러다 보면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 그 집에 모여들여 시끌벅적 해지고 말았다. 어두운 마음 따윈 생각도 나지 않고 마음껏 웃을 수 있던 시간. 그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했던지 나는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때에도, 그때를 떠올리는 꿈을 꾸다 킥킥 거리는 내 웃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 그러니까 내가 나이를 먹어도 그 시간만큼은 여전히 생생한 얼굴로 내 안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와 나는 줄곧 친하게 지냈다.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가 소소히 저지르는 실수들에 대해 떠들어 대길 좋아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 그 녀석은 늘 혀를 끌끌 차며 너는 인간쓰레기라는 욕지기를 세상 다정한 말투로 해주곤 했다. 그 아이와 나는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 조금 거칠고 퇴행적이긴 했지만 힘든 순간이 오면 먼저 밥도 사주고 어깨도 두드리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아이가 나를 어디에 가서 어떻게 말하고 다녔든 나는 그 아이를 언제나 좋은 친구로 생각했고 늘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정말 단 한 톨의 경쟁심도 없이 그 아이가 잘 되길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내 귀에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당사자가 아닌 나는 진실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하나의 철칙이 있는데 그것은 상대가 아무리 나와 가까운 사이라 해도 내가 정한 어떤 사회적 규칙의 마지노선을 넘어 버리면 바로 등을 돌린다는 것이다. 이건 냉정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마음이 약해 그럴 수도 있다. "걘 내 친구니까." 혹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반복되면 결국 그 일의 정당성과는 상관없이, 나는 아마 그 아이를 변호해주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 아이가 연관된 그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볼 수 없다.'라는 말을 먼저 한 건 그 아이였다. 그 아이도 나름대로 내가 보인 행동에 큰 배신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내가 그 아이를 내 인생의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그 일이 가져오는 충격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일에는 이런저런 복잡한 관계들이 개입되어 있었다. 아마 그 아이 눈에는 내가 자기편이 아닌 다른 사람 편에 선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그것은 연인과의 이별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사랑이 떠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며 느껴지는 애처로움과 절망감, 슬픔과는 달랐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쁨이 한순간에 도난당하는 걸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힘이 쭉 빠졌고 그동안의 추억들이 모두 분해되어 공기 중으로 증발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어울려 지내며 모든 사정에 대해 알고 있는 다른 친구를 만나 닭갈비를 먹으며, 그 아이가 얼마나 대책 없는 인간인지에 대해 욕을 하다가 펑펑 울어버렸다.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느닷없는 울음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인생에서 삭제시켰지만, 내 기억 속을 기쁨으로 물들인 지난 기억마저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떤 사건이 어떤 사람을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로 인식시킬 수 있다 해도, 내가 진심이라고 믿으며 삶의 힘겨운 순간 부적처럼 꺼내보던 추억까지 완전히 각색될 수는 없었다.


이제 나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꺼내기도 하고 주위로부터 들려오는 그 아이의 소식에 '아 그래?' 정도의 대답을 한 뒤 금세 까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금 그러한 이별을 맞아야 한다면 자신이 없다. 내가 얼마나 그 시간과 그때의 사람들 그리고 그 아이를 천금처럼 생각했는지 안다면 나의 이런 말이 이해가 될 거다. 나는 이후로 한동안 사람들에게 마음을 잘 주지 않았다. 다행히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찾았는데 그것은 다시금 깊은 우정을 믿게 해주는 내 주위 좋은 친구들 덕분이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는 말, 정말이지 인생의 몇 없는 해답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아이와 나는 완전한 남남이 되었다. 그 아이가 잘 되고 말고 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이나 감흥도 주지 않을 만큼 멀어져 길에서나 우연히 마주칠까 싶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아이가 나를 다독이던 장난스러운 위안과 바보 같은 우스갯소리를 기억한다. 하릴없이 학교 주변을 거닐며 우리가 정말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걱정하던, 그 날의 햇살도 여전히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그 기억은 공유할 수 있는 기쁨이 아닌 온전히 나만의 비밀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누군가의 좋은 친구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부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길 바란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인간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 먼지가 누군가의 눈동자에 콱 박혀 상처를 주고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유독 물질이라면 늦지 않게 방법을 강구하길 바란다. 좋은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사랑을 잃는 것에 버금가는 충격과 슬픔을 주노니. 누군가 내가 주는 것보다 더 나를 위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자체로 나 자신을 더 옳은 방향으로 걷게 하자. 온 마음을 다 해 자신을 응원해준 사람을 펑펑 울리고야 만다는 것은 전혀 유쾌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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