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을 읽고 짧은 서평
소설을 습작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꿈과 용기, 열정을 지속시키는 명랑한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젊은 작가 수상 작품집의 10주년 특별판이 나왔다. 나는 여기에 수록된 편혜영, 김애란, 손보미, 이장욱, 황정은, 정지돈, 강화길 작가의 작품을 모두 사랑하고 애독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황정은 작가의 작품인 <상류엔 맹금류>를 콕 집어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황정은 작가의 경우, 우리가 너무나도 익히 알고 있듯 탁월한 문장력과 물 흐르듯 태연히 흘러가는 서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징한 주제들이 어울려 문학상 후보와 수상자에 단골손님이며 어쨌든 쓰는 소설마다 (질적으로) 아무리 못 해도 평타 이상을 치기에 오히려 기대가 없었다. ‘어떻게 써도 잘 썼겠지.’라는 마음이랄까. 노련한 작가라는 나의 판단이 되레 그녀의 작품을 학습용으로만 읽게 했을 뿐 딱히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연히 수상 작품집을 읽을 때면 황정은 작가의 작품은 맨 나중에 읽거나 필요할 때만 읽곤 했었다. 하지만 <상류엔 맹금류>라는 오묘한 리듬을 가진 제목이 주는 호기심에 이번에는 그녀의 작품부터 읽게 되었다. 다 읽고 생각했다. 엄청나군!
소설의 중심 내용은 간단하다. 오래전 연인과 그의 가족들과 함께 수목원으로 소풍 간 일에 대한 회고이다. 화자는 여자다. 그녀가 이 일에 대해 회고하는 장면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마도 일상생활을 하다 문득 그녀는 그 날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만큼 그녀의 뇌리에 깊게 박혀 살다가 불쑥 고개를 드는 기억이었다. 그녀가 말한 죄책감처럼 혹은 어떤 불쾌한 이물질처럼 머릿속에서 유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화자는 남자 친구인 제희의 집안 사정에 대해 잘 알고 또한 가족끼리 똘똘 뭉친 그 분위기를 질투하기도 하고 자신도 그 일원이 되길 원한다. 초반에 나는 그들과 함께 할 거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소설의 후반부에서 산산이 깨진다.
맹금류는 육식을 하는 새들로 상당히 잔인한 본성이 있어 애완으로 키우면 절대 불법인 조류다. 소설에 등장하는 소풍은 화자의 남자 친구의 '부모님'의 삶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맹금류가 똥오줌을 갈기는 강의 상류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 똥물을 기분 좋게 퍼마신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화자의 감정에 공감이 갔다. 나 또한 제희 부모가 보이는 태도가 상당히 이기적이고 별다른 지혜 같은 것이 없어 보였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다소 기이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아들이나 여자 친구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마치 그들이 이제껏 살아왔듯 그들이 추구하는 방식대로, 배려 없이 비탈길을 가로질러 점심을 먹는 모습이 어딘가 어리석고 불쾌해 보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가 ‘이쪽엔 맹금류 축사가 있더라고 나는 말했다. 똥물이에요. 저 물이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하고 말하는 부분에서 묘한 쾌감까지 느꼈다. 화자가 마지막 부분에 하는 어떤 참회의 말 같은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세 번씩 더 읽자 비로소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소설의 묘미는 이런 것에 있다. 의미의 타격. 내가 끄집어낸 소설의 의미가 나의 실체와 마주하게 한다.
이 소설에서 제일 안쓰럽고 안타까운 사람은 바로 화자였던 것이다. 화자의 ‘똥물’에 대한 폭로가 얼마나 폭력적이며 히스테릭한 외침인지에 대하여 고민하는 동안 나는 나 자신도 어쩔 수 없이 하류를 굽어보는 인간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은 어린 시절 연애담과 그에 얽힌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지만,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내’가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섬뜩한 고백이었다. 자신이 휘두른 폭력에 대한 고발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이 소설 자체가 마치 상류에 사는 맹금류의 날카로운 발톱처럼 여겨졌다. 그 발톱은 화자뿐만 아니라 읽는 나 자신의 마음에도 날카로운 구멍을 뚫었다.
황정은이라는 작가가 바라보는 삶의 이면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해석에 정말이지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재능 있는 소설가들의 탁월한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에 신이 나면서도 현시대에 써져야 하며 읽혀야 할 소설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기 수록된 다른 작가의 글들도 훌륭하긴 마찬가지다. 책상 앞에서 내내 고뇌하고 번민하다 최고의 문장 하나를 길어 올리려 토 나올 때까지 퇴고를 반복한 사실을 알기에 나는 질투 대신 찬사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