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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태어나길 기다렸어.

0. 프롤로그

by 존치즈버거

Hey, 친애하는 코튼 킴!


내가 너만 한 나이일 때부터 나는 늘 생각했어. 내가 어른이 되어 엄마가 된다면 나는 꼭 베리 멋진 쿨맘이 되겠다고. 지혜와 용기를 가진 멋진 사람이 되어서 나의 아이에게 어마어마한 유산을 남기겠다고 말이야. 성장하는 동안 여러 가지의 사건들을 겪으며 결혼이라는 것에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너희 아빠의 달콤한 계략에 넘어가 나는 결국 너를 낳았단다. 그리고 엄마가 되었지. 나의 아이인 너는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귀여워. 내 생애 어떤 시기가 동강이 난 듯 육아라는 과정이 나를 기억상실에 걸리게 만들어 버렸지만, 훌쩍 큰 너를 보면 그 고군분투들이 마냥 헌신과 좌절로만 흐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누구보다 널 사랑해.


너와 함께 있는 시간은 어릴 때부터 내가 꿈꿔 온 바로 그 순간이야. 어디서 이렇게 멋진 녀석이 뚝 떨어져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지 가끔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벅찬 순간이 있어. 지리멸렬한 내 인생에 너는 행복의 방점을 찍어주고 있어. 하지만 문제가 있어. 내가 상상한 것보다 나는 가진 것이 얼마 없는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점이지. 나도 많이 노력했는데 삶은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걸 이뤄주진 않더라고. 물론 아직 나나 너에게 남은 날은 많지. 사람 일은 알 수 없다고 나도 언젠가 대박이 터져 너에게 변두리 아파트라도 증여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나 알 수 있는 일이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나에게도 물려줄 것들이 있으니까. 바로 좋은 소설들이지. “왜 하필 소설이야?”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글쎄,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할 때면 늘 이렇게 말해. “만약 나에게 인간적으로 조금이라도 장점이 있다면 그건 소설이 만들어 주었다.”라고. 내가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 바라본 세상이 지금 나라는 인간을 만들었음에 의심의 여지는 없어. 덕분에 나는 글을 쓰게 되었으니 소설을 읽은 시간들은 단순히 과거가 아닌 나의 미래이기도 하지.


어른이 돼도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 실수를 반복하는 만큼 후회들이 밀려오지. 나이만 어른이지 엄마도 아직 미숙한 점들이 너무 많아. 집에서는 잘난 체 쟁이지만 내가 모르는 것들 앞에서는 이렇게 조용한 사람이었나 의심이 들 정도니까. 그럼에도 매일 힘을 내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과 태도는 켜켜이 쌓아 온 이야기들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야.


사실 난 소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어. 이야기는 어디에나 존재했고 이야기가 주는 재미가 왠지 인생의 교훈과는 멀리 떨어진 것 같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거든. 소설보다는 비문학 계열의 책을 더 많이 봤지. 하지만 중학생으로 접어들며 접한 카프카, 헤밍웨이, 레이먼드 카버, 알베르 카뮈, 헤르만 헤세, 프랑수아즈 사강 등 수많은 작가의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지 알 수 있었지. 그 이야기들은 단순히 일시적인 재미만을 주는 게 아니었어.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 땀을 흘리고 그러면서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지난한 작업에서 깊은 감명도 받았지. 그들은 왜 쓰는 것일까? 저 혼자만 알고 있어도 좋을 삶의 의미와 철학들을 왜 이런 수고를 들이며 타인에게 선보이는 것일까?


소설을 통해 나의 심장은 단단해지고 수많은 좌절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배웠어. 물론 여전히 나는 실패하고 실수하고 후회하고 자책하지만. 그래도 알잖아, 엄마는 대부분의 시간을 잘 버티고 있다는 걸.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이거야. 값비싼 물건이나 너의 노후를 책임질 부동산은 아니지만. 그건 나도 가지고 싶다.


네가 태어나길 기다렸다!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권하는 책과 이야기들이 네가 걸어가는 삶의 길 위에 유용한 이정표가 되어주길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책들은 내가 너에게 건네는 조언이자 '너의 엄마'라는 인간이 밟아 온 삶의 궤적이기도 해. 부디, 사랑하는 너에게 나의 이야기들이 온전히 가닿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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