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교 동창을 만났다. 대략 10년 만의 재회였다. 그 친구는 예전보다 한층 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갤러리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갤러리?" 문득 갤러리라는 공간을 떠올려 보았다. 내게 갤러리는 화이트 큐브 형태의,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구매해야만 할 것 같은 압도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상업 공간에 불과했다. 그동안 미술관은 종종 방문했지만,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그날 나는 ‘친구 따라 갤러리 간다’를 실천하게 되었다. 혼자였다면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을 텐데, 친구와 함께라니 마치 전우애라도 생긴 듯 든든했다. 친구는 익숙한 듯 직원에게 다가가 작품 리스트를 요청했다. 나는 순간 당황하며 속삭였다.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친구는 웃으며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갤러리는 감상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작품과 대화하고 관계를 맺는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첫 문턱을 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혼자서도 갤러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유명한 대형 갤러리부터, 점점 내 주변의 작은 갤러리들까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전시를 따라다니기도 하고, 지역별로 차근차근 섭렵해 나갔다. 그렇게 갤러리는 내 일상 속 일부가 되어갔다.
그러던 중,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기획자가 직접 갤러리를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우연처럼, 그 갤러리에서 협업하는 작가님의 전시와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또 다른 전시에서 관심 있던 작가님의 2인전이 열린다고 해서 강남의 어느 갤러리를 방문했는데, 글쎄, 그 작가님이 직접 전시장에 와 계셨다. 더 놀라운 건 그 작가님이 결성한 아트 크루 멤버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작가님들과 교류하며 대화가 깊어졌다.
그때부터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술 네트워킹이 시작된 건.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전시로, 또 다른 공간으로 나를 이끌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예술적 관계가 확장되고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으로 한 갤러리 대표님과 한 시간 넘게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컬렉팅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얻게 되었다.
사실 나도 예전에 좋아하던 작가님의 오일파스텔 작품을 구매한 적은 있지만, 아트 플랫폼을 통한 경험이었을 뿐 갤러리에서 직접 작품을 컬렉팅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갤러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속에서 컬렉팅은 그저 '소유'가 아니라, 예술을 삶에 들이는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갤러리는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하는 공간이었다.
마인드맵처럼 뻗어나가는 이 모든 인연이 처음엔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니, 결국 하나하나의 연결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결과일 뿐이었다. 갤러리를 두려워했던 나는 이제 갤러리를 통해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새로운 관계를 쌓으며, 내 삶 속에서 예술이 어떻게 숨 쉬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혹시라도 갤러리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진다면, 한 번쯤 문을 밀고 들어가 보길 권하고 싶다. 갤러리는 생각보다 열려 있고, 그 안에는 누구든 반겨줄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