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협의이혼 확인 기일에도 우린 웃었다
이혼 접수를 한 지 어느새 한 달.
우리의 협의이혼 확인 기일이 다가왔다.
하루 전 서울 서부지방법원으로부터 안내 문자가 왔고, 1차 기일 또는 2차 기일에는 반드시 부부가 함께 참석해야 한다. 두 날짜 모두 참석하지 않으면 이혼 의사가 없어진 것으로 보고 자동으로 모든 절차는 취소된다.
우리는 진작부터 1차 기일에 참석하기로 정해놓은 상태라 둘 다 지난주 연차휴가를 내놓은 상태였다.
이혼 접수를 하던 날과 마찬가지로, 이 날도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어제가 일요일이었는데, 내일 법원에 가는 부부답지 않게 역시나 함께 산책을 하고 점심을 먹고 같은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세상 그 누가 봐도 내일 이혼하러 가는 부부의 모습은 아니었겠지.
그래도 한 번 가본 길이라고, 서부지법을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아니, 겉으로만 그럴 뿐, 그는 걸어가는 걸음걸음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으니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이 결과를 되돌리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잘못을 용서할 생각도 없었고, 내 선택이 최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난 이 순간이 마치 꿈같았다.
잠에서 깬 후에도 내 마음에 흔적이 남아, 가끔은 검은 어둠으로 나를 덮치고, 가끔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굳이 기억할 필요 없는 악몽처럼 떠올리게 될.
앞으로 내 긴 인생에서 이 순간이 얼마나 자주 떠오를지, 법원을 향해 걸어가는 지금은 짐작할 수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니 별도의 방으로 들어갔고, 거기에는 우리와 같이 이혼을 하기 위해 모인 15쌍 정도의 부부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이 정도 숫자면 많은 걸까 적은 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린 제일 뒤에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고, 모인 부부들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위치였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의 커플은 한둘뿐이었고, 대부분 40대 중반~50대 정도의 연령대였다.
이미 최소 10년 이상 결혼 생활을 해왔을 그들에게도 아마 나 못지않은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 어쩌면 여기서 우리가 가장 사소한 일이었을까. 속으로 이런저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순서대로 판결을 위해 한 쌍씩 판사가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10쌍 정도 들어간 이후, 우리 차례가 되었다.
필수품은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
판사 앞에 준비된 의자에 나란히 앉고 신분증을 전달하면, 판사가 사진과 대조하여 본인이 맞는지부터 확인했다.
남편의 주민등록증을 먼저 확인한 판사는 사진을 보고, 고개를 들어 “ㅇㅇㅇ씨, 마스크 벗어주세요.”라고 말하고 그의 얼굴을 확인한 후 바로 내 차례로 넘어왔다.
여기서 웃지 못할, 아니 너무 웃긴데 웃음을 참아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내 주민등록증은 무려 17년 전 사진이다. 내가 한 번도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보니, 굳이 재발급하지 않고 계속 사용 중이었다.
그런데 내 외모가 17년 전과는 크게 달라진 게 문제였다. 20살 무렵에는 통통한 편이었는데, 10년 사이 다이어트도 하고 외모에 신경을 쓰게 돼서 지금은 주민등록증 사진 속 내 모습과는 누가 봐도 성형한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 보니 판사가 똑같이 나의 사진을 확인한 후 마스크를 벗은 내 얼굴을 보더니, 갸우뚱하며 다시 한번 사진을 보고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고. 그걸 2번 반복했다.
나는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속으로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이 진지하고 근엄한 와중에 무슨 일이람.
다행히(?) 판사는 17년 전 내 사진 속에서 지금의 내 이목구비 중 무언가를 확인한 모양이다. 별 다른 추가 확인 없이 다음 단계로 진행되었다.
“ㅇㅇㅇ씨, 이혼에 동의하십니까?”
그는 약 2초 정도 입을 열지 못하다 대답했다.
“네.”
“ㅁㅁㅁ씨, 이혼에 동의하십니까?”
나 역시 1초 정도, 그렇지만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 1초 정도가 흐른 뒤, 단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우리가 아마 두 번은 겪게 되지 않을 판사 앞에서의 시간은 이렇게 끝이 났다.
기일 공판 이후 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협의이혼 확인신청서 1부, 이혼신고서 1부이다.
이 서류는 둘이 함께 작성한 뒤, 두 명 중 한 명이 구청에 가서 제출하면 된다. 이 서류들을 제출하지 않으면, 이 역시도 이혼의사가 사라진 것으로 간주하여 그동안의 모든 절차가 취소된다.
이걸 보며 ‘아.. 역시 정부는 어떻게든 부부관계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구나. 세금의 원천인 가족관계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이렇게나 여러 과정과 장치를 만들어서 최대한 이혼을 못하게 막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혼 서류는 내가 회사 바로 앞의 구청에 가서 이번 주 안에 제출하기로 했다.
서부지법에서 나오니 저녁 6시 반쯤,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법원 바로 뒤에 유명한 두부와 콩국수집이 있다길래 거기를 방문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한 뒤, 내가 아까 있었던 판사 이야기를 했더니 역시 그도 무슨 상황이었는지 바로 알았다고 했다.
자기도 ‘아, 아내의 사진과 지금의 아내 얼굴이 달라서 당황하셨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우리는 그 일 덕분에 큭큭 거리며 즐겁게 웃었다.
협의이혼 확인 기일에도 이렇게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
같이 정말 많은 걸 공유하고 이해하고 있는 사이.
그렇지만 이제 그 누구보다도 멀어지게 될, 다시는 이어질 수 없는 관계로 바뀌는 사이.
이혼은 이런 거구나. 새삼 웃다가도 슬퍼졌다.
하늘이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