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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Oct 20. 2024

유품(遺品)

쓴 날짜를 보니 2023년 11월에 초고를 쓴 글이다. 딱히 잘 쓴 건 아닌데 이렇게 무색무취한 글이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시에 나를 계속 물고 늘어지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것에 대한 답을 찾으며 쓴 글이다. 소박한 답을 찾았으나,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일시적인 해답이었다. 어설프고 우스운 글이지만, 다시 읽어보니 나중에 브런치북으로 단편집 묶을 때 넣어도 되겠다 싶어 이곳에 저장해 둔다.




천년 뒤 사람에게 관광 거리를 만들어주려고 그 자리에 누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쓴 입맛을 다셨다. 모든 여정(旅程) 끝에 실망이 있는 것처럼, 별다른 기대 없이 온 여행이었지만 나는 후회했다. 무엇을 하기 위해 온 것일까?


고분(古墳)은 평범했다. 그저 큰 무덤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한쪽이 깎여나가고, 페인트가 벗겨진 철제 울타리가 있는, 아무 감흥 없는 무덤이었다.


관광객들이 몰릴까 싶어, 발길이 뜸한 곳을 찾다가 온 곳이었다. 대릉원(大陵苑)이나 금관총, 첨성대 대신 황오동이라 불리는 곳을 찾았다. 경주역과는 그리 멀지 않았다. 역 부근에서 간단히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걸어서 쭉샘지구라 불리는 황오동 고분군을 찾았다. 푸르고 둥근 무덤들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왔다. 근처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발굴이 진행 중이라 국가에서 주택들을 매입하여 철거를 하고 있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수선하고 황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6월 말이라 더위가 심하지 않았으나, 걸으며 유적을 둘러보니 금세 열이 나기 시작했다. 갈증이 나고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주변에 물 하나 살 만한 가게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무덤들 뿐. 문득 차라리 저 안이 더 편안하고 시원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잠시.




마지막 원고 의뢰를 받은 후 10개월이 지났다. 문학 계간지에 실릴 단편이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잡지였는데, 가을호에 실릴 작품을 8월에 물어본 것이었다. 지면이 남는데 도저히 올릴 작품이 없다는 것이었다. 편집장(이라고 해봐야 직원이 둘 뿐인 곳이었다)이 대학 동기라 몇 푼 원고료와 술값만 치르고 작품을 보내주기로 했다. 쟁여둔 작품이 없어서, 되는대로 써서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2주나 걸렸을까? 주인공이 신변잡기나 늘어놓다가, 갑자기 주변 사람 하나가 죽으면서 추리물로 반전되는 소설이었다. 퇴고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몇 번 읽기는 했으나, 나조차 독자가 되고 싶지 않은 글이었다. 차라리 돈을 주고 없던 일로 해달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나의 최근작은 형편없었다. 그래도 별 수 없이 원고를 보냈다.


그 시기 즈음 모든 것이 환멸스러웠다. 작가로서의 삶도, 생계를 위해 억지로 오르고 있는 강단도, 문예(文藝)보다는 인터넷으로 최신형 노트북이나 쳐다보며 군침을 흘리고 자신도……. 나는 왜 쓰려는 것일까?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경기도 변두리의 지방 대학에서 비정규직 강사로 학생들에게 소설 창작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두 권의 단편집을 냈다는 것 외에 내가 ‘소설을 쓴다’는 증거는 없었다. 학생들도 내 작품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두 권 모두 1쇄를 찍은 이후 증쇄를 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한두 건 정도 내 소설에 대한 글이 보인다. 단편집을 낸 직후에는 문예지나 신문사에서 비평을 해주기도 했는데, 그 후로는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중소기업의 경리로 일하고 있는 내 아내는 그 지루하고 무의미한 글들을 두 번이나 읽어주었다. 진심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게 가능성이 있다는 격려와 함께.


그녀는 지금의 삶에 큰 불만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불안한 일자리지만 지방 대학이라도 두 사람 살아가기에는 부족하지 않았고, 한두 해 정도만 더 고생을 하면 아이를 낳을 여건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희망이야말로 아내가 매일 미어터지는 지하철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원동력이리라. 아이를 그토록 좋아하는 아내였건만 서른다섯이 되도록 우리는 아직 아이가 없었다. 이제 막 대학 강단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나 때문이었다. 이제 막 초라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나 때문이었다.


그렇게 책 두 권을 세상에 내놓으니 세상은 내게 ‘소설가’라는 직함을 주었고, 나는 그것을 이력서 삼아 밥을 벌어먹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소설을 쓴 이후 나는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말 그대로 한 글자도. 강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자료들을 제외하고는, 나는 ‘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자기 소설을 쓰지도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소설 창작을 가르친다는 것일까?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아내 수경은 학기도 끝났으니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제안을 했다. 2박 3일 정도 혼자 충전을 하고 오라고.


“난 평일에 어디 가고 싶어도 못 가는데, 오빤 이제 딱히 해야 할 것도 없으니까, 잠깐 코에 바람이라도 넣고 와.”


맨 얼굴로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 젓가락으로 멸치를 뒤적거리며 그녀는 말했다.


“직장인은, 특히 나처럼 있는 연차도 못 쓰는 중소기업인은 평일에, 밝은 대낮에 어디 가보는 게 소원이야. 꼭 학교 땡땡이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 다 바쁘게 일할 때, 텅 빈 도시나 여행지 같은 곳으로 달려가는 게 꿈이라고.”


“가봐야 어딜 가겠어.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고…….”


제대로 씹을 새도 없이 밥을 입에 욱여넣으며 수경은 내게 다시 권했다.


“제주도도 좋고, 아니면 강원도에 바다 보러 가는 것도 좋고, 또…… 아니면 경주 같은 데 좋잖아? 오빠, 예전에 유적지 같은 데 되게 좋아했잖아?”


아내를 바라보며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나는 운이 좋은 남자라는 생각을 했다. 수요일에 짐을 챙겨 토요일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실마리라도 찾기를 바랐다. 불 위에 앉은 기분으로 이렇게 안달복달하지 않고, 어디로든 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다면……. 딱 한 문단만이라도 새로운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오래전처럼 다시 내게 ‘이야기’가 찾아온다면…….


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무덤 안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테고, 한 생애를 뜨겁게 살다 간 사람의 체취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수로 그곳에 가 닿을 수 있을까?


나는 상상했다. 이곳에 있는 무덤보다도 훨씬 작고 초라한 무덤과 그 앞에 놓인 비석을.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白紙) 같은 비석을. 아무도 읽지 않는 내 글들처럼, 어쩌면 석공(石工)이 정성스럽게(또는 기계가 무미건조하게) 새겨 넣었을 어떤 문장.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세상을 살다 갔다는 증거는 오로지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두텁게 쌓여있는 흙덩이가 전부이리라.


나는 신경질적으로 발걸음을 돌려 유적지를 빠져나왔다. 유적에 대한 설명문들이 곳곳에 보였지만 읽어 보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읽지 않는 1쇄짜리 소설책처럼, 그것들은 울상을 짓고 그곳에 있었다. 바람과 시간에 풍화(風化)되며…….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는 작은 골동품 가게가 있었다. 한옥으로 된 게스트 하우스들이 있고, 기념품 가게나 식당 사이에, 무신경하게 지나갔다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좁은 문이 있었다. 고풍스러운 이 도시와 달리 평범한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가게 전면에 난 창(窓)으로 사기그릇이며, 오래된 벼루나 비췻빛의 연적(硯滴) 같은 것들이 보였다. 창으로 슬몃 보이는 건물 안에는 책장에 꽂힌 낡은 책들이 있었다. 시간이 멈춘 곳 같다기보다는, 주인이 시간에 무신경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 가게였다. 장사를 하기는 하는 것일지, 이문(利文)을 남기기 위해 장사를 하는 곳이기는 한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근처 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에 소주 반 병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가게를 발견했다.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가 가져온 문예지나 뒤적거릴 생각이었는데, 가게가 보이자 일단 안으로 들어가 봤다.


가게 안에서는 된장찌개 냄새가 났고,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을 내어도 사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가게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서울의 인사동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가게를 그냥 지나쳐갔을 것이다. 왜 이 가게가 눈에 띄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선반에 놓인 물건들을 쳐다봤다. 딱히 눈에 들어오는 물건은 없었다. 내게 어떤 감식안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므로, 눈앞에 천금 같은 진보(珍寶)가 있어도 알아볼 길이 없었으나, 그냥 내키는 대로 물건들을 살펴봤다.


그러다가 벼루에 물 따르는 연적(硯滴)이 눈에 들어왔다. 기녀라고 할까, 아니면 정숙한 여인이라고 할까, 자리에 앉은 여인은 청자 같은 물병을 안고 있었다. 비녀를 꽂은 여인이었는데 치마 주름이 보일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나는 물건을 들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보았는데, 혹시나 의심을 했던 MADE IN CHINA 같은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여인이 든 물병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모양이었다. 여인의 머리 쪽에 실금 같은 것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그쪽으로 물을 집어넣는 듯했다.


그렇게 물건을 보고 있을 때 인기척이 났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가게 뒤편으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천으로 가려져 있던 곳이 불룩 올라오면서 뒤에서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나이가 꽤 많은 노인이었다. 그는 허리를 구부린 채 내 쪽으로 걸어왔다. 걸음이 무척 느려 노인이 내게 다가와 입을 열려면 한참이 걸릴 것 같았다.


“뭘 보러 왔소?”


그는 내게 물었다.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였다. 노인은 백발 위에 갈색 중절모를 쓰고 있었고 목에는 정갈하게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는 반팔 셔츠였지만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다가…… 이것저것 구경 좀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대답에 노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럼 천천히 둘러보다가 가시구려.”


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가게 한쪽에 놓인 책상으로 천천히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그는 낡은 책 하나를 열었는데 과문(寡聞)한 나는 책의 제목을 읽지 못했다. 옛 古 자와 참 眞 정도는 읽을 수 있었으나 무슨 책인지 알 수 없었다. 노인은 코에 안경을 얹고 천천히 책을 읽어나갔다. 아니 읽는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노인은 그저 물끄러미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혹시 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흘깃 계속 쳐다봤으나,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는 글자를 집은 손가락을 한 자씩 옆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다 가끔 뭐가 떠올랐는지, 글자를 집은 손가락을 떼어 옆에 놓여 있는 공책에 붓펜으로 뭔가를 적었다. 그 일련의 동작은 무척 느렸다. 붓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돌에다 끌로 글자를 파내는 것 같았다.


나는 가게 안의 물건들을 살펴보다가 아까 보았던 연적을 들고 노인에게 다가갔다.


“이건 언젯적 물건일까요?”


처음에 노인이 못 들은 줄 알고 다시 한번 물으려고 할 때, 그는 나무늘보만큼 느린 동작으로 나를 돌아봤다. 그는 코에 얹혀 있던 안경을 고쳐 썼다. 그래도 잘 안 보이는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안 보이는지 계속 가까이 오다가, 결국 내 손에 있던 것을 넘겨받고는 안경을 코 쪽으로 내려쓰며 연적을 바라봤다.


“한 이백 년, 삼백 년 됐을까? 조선 후기 때나 되지 않을까 싶네.”


“아, 네…… 꽤 오래된 물건이군요.”


“그때 선비들이 보기에는 천한 물건이라 뒤에 숨겨놓고 쓰던 연적일 게요.”


“아……. 그런가요?”


그렇게 듣고 보니 조금은 요염한 데가 있는 여인이었다. 노인은 다시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읽던 책을 계속 읽었다. 값이 얼마인지 묻고 싶었으나 노인에게는 물건을 파는 일보다 책을 읽는 일이 더 중요해 보여서 더는 묻지 않았다. 나는 노인에게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게를 나섰다. 그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한옥들이 이어진 거리를 걸었다. 얕은 돌담들이 연이어져 있었다. 조만간 여름이 올 테지만 저녁은 아직 시원했다.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받지 않더니, 다시 한번 전화를 거니 수화기 너머로 다급하게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오빠!”


그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문득 나는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품에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은 먹었어?”


내 물음에 아내는 여느 때처럼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먹으려고. 오빠도 없고, 밥 하기도 귀찮아서 배달 앱으로 치킨 시켰어. 맥주랑 같이 먹으려고. 오빠는?”


“난 국밥 한 그릇 먹고 왔어, 지금 막.”


“어때? 뭐 볼 게 좀 있어?”


“뭐 그렇지, 무슨 수학여행도 아니고 내가 여길 왜 왔나 싶은데, 그래도 그럭저럭 시간은 흘러가네.”


“기왕 갔으면 좋은 데 좀 많이 보고 와. 볼 게 없으면, 맛집이라도 찾아보고 오든가.”


멀리 있어도 아내의 명랑한 기분이 전해지는 듯했다. 차라리 주말에 같이 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막상 아내와 함께 왔어도, 나는 비참한 기분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매일 축 처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민망하여, 이곳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아내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홀로 경주에 온 것이었는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아내와의 통화를 끝내고 계속 걷고 있으니 거리에는 서서히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주황색의 불빛이 거리를 채우기 시작했고, 하늘은 하루 장사를 마치고 가판 위에 천을 두르듯, 검게 물들어갔다.


나는 양치는 목동이 된 기분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나는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그저 양들을 몰고 집으로 돌아가면 될 것 아닌가? 내가 풀어놓은 양들이 그곳, 백지(白紙) 위에 있으니 이제 녀석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될 일 아닌가? 취기가 오르는 눈으로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후 숙소로 돌아와, 씻을 틈도 없이 이부자리를 펼 새도 없이, 맨바닥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것이 어디에서 온 피로인지 알지도 못한 채.




커피에서는 금세 맹물 맛이 났다. 얼음이 거의 녹은 잔에는 묽은 카페라테가 남아 있었다. 모처럼 노트북을 꺼내 이런저런 문장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제 하루는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처럼 불국사, 첨성대, 미추왕릉 같은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계속 인상 쓰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자는 생각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당장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토요일 아침까지는 버티다가 서울로 올라가자고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마지막 날은 여유롭게 그리고 작가답게 보내고 싶다는 심산으로 숙소 근처의 카페를 찾았다. 크지는 않았지만 테이블이 대여섯 개 있어서 아늑하게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카페 안에는 커피 내리는 냄새, 그리고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 종업원의 옅은 향수 냄새가 섞여 있었다. 녹색이 많은 가게였다. 벽이나 기둥은 녹색이었고 곳곳에 액자가 붙어 있었다. 가운데 기둥에는 원두를 넣어둔 자루가 쌓여 있었다.


여전히 모니터 안 백색 화면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한 페이지 정도를 쓰다가 모두 지워버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초조하지는 않았다. 의욕이 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욕이나 희망이 언제 사그라들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시계를 봤다. 3시 17분. 딱히 무엇을 한 기억이 없는데 벌써 하루가 절반 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도 뭐랄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처음 경주에 왔을 때는 일분일초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초조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저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카페에서 한참 노트북과 실랑이를 하다가 문득 첫날 보았던 연적이 떠올랐다. 값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기념품을 사고 싶었다. 비싸봐야 얼마나 비싸겠냐. 가방에 노트북과 태블릿을 대충 쑤셔 넣고 카페를 나섰다.


그러나 골동품점은 문이 닫혀 있었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웠나 싶어 창으로 가게 안을 들여봤다. 불은 꺼져 있었다. 문에는 아무 메모도 없었다. 가게 창문에 영업시간 같은 것이 쓰여 있지도 않았다. 노인이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었다.


걸음을 돌려 숙소로 돌아가려 했다. 한 5분 정도 걷다가 나는 뭔가 마음에 걸렸는지 걸음을 돌려 골동품점으로 갔다. 그리고 골동품점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카운터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혹시, 이 옆에 골동품 가게요. 할아버지, 어디 가셨나요?”


덩치가 크고 눈이 큰 아주머니는 살짝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정씨 할아버지요? 아이고, 어제 아침에 돌아가셨다 아입니까?”


의외의 답변에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아줌마는 말을 이어갔다.


“혼자 사신지 오래됐는데, 그 전날까지도 정정하시더만, 갑자기 그렇게 돌아가실 줄 누가 알았겠능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딱히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아……. 어쩌다가 돌아가신 건지…….”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는 게 놀랄 만큼, 나는 하나마나한 말을 내뱉었다.


“연세가 아흔이 다 되셨으니까, 뭐 노환 아니겠습니까? 뭐라더라 심장이 뭐라 뭐라 하던데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런데 어르신이랑은 어떻게 되능교?”


“아뇨, 딱히 어떤 관계는 아니고……. 그냥 엊그제 가게에 한번 들렸던 사람입니다.”


나는 아줌마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려다가 다시 골동품점 앞으로 갔다. 창문 안을 바라보니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서 조금씩 가게 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엊그제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숨은 그림 찾기라고 한다면 몇 시간이고 그림을 붙잡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은 엊그제와 정확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단지 불이 꺼지고 문이 잠겨 있을 뿐이었다. 창 오른편에는 눈여겨봤던 연적이 있었다. 주인을 잃고, 이제 다시 새 주인을 맞을 수 없는 그 물건은 처음 봤을 때처럼 가지런한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한참 창문 안을 바라보다가 나는 발걸음을 돌려 방금 전 그 식당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아까는 맡지 못했던 설렁탕 냄새가 느껴졌다. 카운터 아주머니는 손님들에게 국을 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아줌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저기, 혹시 장례식장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빈소(殯所)는 그리 멀지 않은 병원에 차려졌다. 크지 않은 동네 종합병원이었고 장례식장은 지하에 있었다. 식당 아주머니는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겠지만,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병원 이름과 위치를 알려주었다. 하나뿐인 아들은 미국에 가 있고 그곳에서 손녀가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딸도 하나 있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나 노인은 경주에서 홀로 지냈다고 했다.


나는 가져간 옷 중에서 그나마 점잖은 옷을 골라 입고 빈소로 갔다. 검은색 면바지에 남색의 셔츠를 입었다.


빈소는 한산했다. 식장 앞의 모니터에는 ‘정택남’이라는 노인의 이름과 여든일곱이라는 나이가 적혀 있었다. 상주(喪主)가 없어서 마을에서 가장 왕래가 많았던 집의 아들이 대신 역할을 하고 있었다. 빈소에 들기 전에 봉투에 오만 원짜리 두 개를 넣어 부조(扶助)를 했다. 봉투에는 ‘김채엽’이란 세 글자를 적었으나 그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빈소에 서자 노인의 영정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향로(香爐)에는 누가 피어놓았는지 거의 다 탄 향 하나가 연기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향을 하나 집어 들어 조심스럽게 불을 붙이고 향로에 꽂았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서 고인에게 절을 드렸다. 다시 상주를 마주 보고 절을 올린 후 인사를 했다.


키가 작고 땅땅해 보이는 남자였다. 윗머리가 살짝 벗겨진 중년이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는 내게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생전에 할아버지를 잠시 뵌 적이 있습니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노인의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중절모를 쓰지 않은 노인은 백발을 오른쪽으로 가지런히 정리한 모습이었다. 언제 찍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미리 준비해 둔 사진인 것 같았다. 나는 빈소를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머리를 수그리며 노인에게 예를 표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었다.


상주는 내게 식사를 하고 가라 권했고 나는 빈소 옆의 텅 빈 식당에서 육개장과 쌀밥을 먹었다. 그리고 자리를 뜨며 다시 상주에게 인사를 하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이미 저녁이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마른안주 하나와 소주를 사 왔다. 숙소로 돌아와 독방에 앉아 TV를 켜고 아무 채널이나 틀었다. 채널을 돌리다 드라마 하나에 멈췄는데, 흔한 저녁 드라마였다. 잘 세팅된 거실이 보였고 잘 차려입은 가족들이 모여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인절미 가루가 묻은 땅콩을 입에 넣고 소주를 한잔 들이켰다. 드라마에서는 뭔가 대사가 나오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그냥 아무 소음이나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술이 두 잔, 세 잔 들어가니 서서히 졸음이 몰려왔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르자 양치를 하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 입에 넣고 거울을 바라봤는데, 그제야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아무 감각이 없었다. 취했다는 사실 말고는 느껴지는 것이 없었는데, 두 눈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구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일까? 노인을 위해서?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서? 아니면 내 아내를 위해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참이나 나는 거울을 바라보다가 대충 이를 닦고 밖으로 나왔는데, 그다음은 기억이 없다. 아마도 술에 취해 잠이 들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짐을 꾸려 서울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 짐가방을 소파 위에 던져놓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아내가 집으로 들어왔다.


“어! 오빠! 왔어?”


수경은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빵이 든 봉지를 들고 있었다.


“점심은 먹었어? 안 그래도 오빠 올 것 같아서 빵이랑 커피 좀 사러 갔었지.”


그녀는 내 품에 안기며 말했다. 손에는 커피와 빵 봉지를 든 채로.


“오면서 대충 먹기는 했는데 조금 출출하네? 사 온 것 좀 먹을까?”


아내와 나는 부엌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커피와 빵을 먹었다. 목으로 넘어가는 차가운 커피가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하고 달게 느껴졌다. 쓴 커피였음에도. 나는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를 다녀왔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의 앞에 앉아 있었다.




차문을 열자 향긋한 봄꽃 냄새가 밀려왔다. 아직 서늘한 기운이 있어 아내 수경은 어깨에 카디건을 두르고 있었다. 내가 차문을 열자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차에서 내렸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제 꽤 부풀어 오른 배가 힘들기도 할 텐데, 언제나처럼 아내는 밝게 웃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손을 잡고 경주 시내를 걸었다. 작년에 내가 걸었던 바로 그 길을.


가게는 열려 있었다. 여전히 좁고 평범한 콘크리트 건물이었지만, 가게 안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젊은 주인이 가게를 인수해서 새로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창가에는 여전히 골동품이 놓여 있었으나, 다른 선반에는 주인이 만든 것인지 브로치나 머리띠 같은 액세서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혹시 홈페이지 보고 오셨나요?”


우리가 가게 안을 둘러보고 있자 젊은 주인은 우리에게 물었다. 그녀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수정과예요. 아직은 좀 춥기는 한데, 저기 길 건너 맛있는 집이 있어서 잔뜩 사다 놨거든요.”


앞치마를 입은 주인은 키가 작고 통통한 여자였다. 서울 사람인데 경주에 내려와 장사를 하려다가 이 골동품점을 보고 인수해서 리뉴얼했다고 한다.


가게 안은 외형은 비슷했지만 분위기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들이 있고 인테리어도 산뜻하게 되어 있어서 옛것과 현대의 분위기가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제가 뭐랄까, 좀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거든요. 레트로라고 해야 하나? 세월을 머금은 물건들을 좋아해서, 이 가게가 나왔을 때 이곳에 뭔가 나만의 이야기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종달새처럼 이야기를 하는 여인이었지만 그 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아내는 어느새 주인과 친해져서 함께 자리에 앉아 수정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두 여자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가게 안을 둘러봤다.


창가에는 여전히 그 연적이 놓여 있었다. 그날 그때의 모습으로. 나는 다시 그것을 손에 쥐어보았다. 서예를 하지 않는 내가 연적을 쓸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물건은 내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주 안에 많은 고분들처럼, 그리고 이 도시 안의 많은 집과 많은 사람들처럼, 그 물건 역시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내가 어떤 이야기를 이어 써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가게 안의 다양한 물건들이 저마다의 소리로 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고고학자처럼 그 물건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싶다는 기분도 들었다.


나는 연적을 들어 가게 주인에게 물건의 가격을 물었다.


“음, 글쎄요. 사실 제가 여기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물건들 값을 잘 몰라요.”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만 원만 주세요. 제가 부르는 게 값이죠 뭐. 그렇다고 이 물건의 가치가 만 원이라는 건 아니고요.”


우리는 머리핀과 에코백, 모자를 샀고, 거기에 만 원짜리 연적까지 덤으로 샀다. 값을 치르고 가게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서려는데, 책상 위에 놓인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그 책을 열어 봤다. 안에는 붓으로 쓴 한자가 적혀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날 저녁 할아버지가 쓰고 있었던 공책인 것 같았다. 정갈하게 쓰인 한자들이 그곳에 있었고 군데군데 먹이 흘러 떨어진 자국도 있었다. 노인은 마지막까지 무엇을 쓰고 계셨던 것일까? 궁금했지만 나는 읽을 수 없었다. 책은 마치 누군가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곳에 있었다. 나는 잠시 그 글자들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공책을 닫고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주인에게 인사를 한 후 가게를 빠져나왔다.


길을 걸으며 아내가 내게 물었다.


“이게 저번에 말했던 그 물건이야?”


그녀의 손에는 연적이 들려 있었다. 물건을 보며 아내는 말했다.


“흠.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좋은 물건이네.”


나는 아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연적을 다른 물건들과 함께 가게에서 산 에코백에 담았다. 거리에는 봄이면 들리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이르게 꽃을 틔운 가지들은 벌써 하나 둘 꽃잎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수경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작년 그날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나는 이렇다 할 글을 쓰지 못했다. 조금씩 쓰기는 썼지만 작품이라 부를 만한 어떤 것도 아직 쓰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불안감이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내 안에서 서서히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아직도 그날의 여행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지금도 살아간다는 것이, 글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여전히 그 골동품 가게가 영업 중이고, 내 손에 이렇게 아내의 작고 사랑스러운 손이 들려 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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