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니 Oct 20. 2024

여우와 함께 (1)

그 아이는 남들은 평소 하지 못하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대놓고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으나, 나처럼 반 아이들과 섞이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는 아이 중 하나였다. 내가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를 떠도는 유령이라면, 그녀는 저 멀리 카이퍼 벨트에서 떠돌고 있는 유성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누구에게도 관측이 되지 않고 존재조차 인지되지 않는 그런 아이였다. 아니, 의외로 아이들은 그녀를 누구보다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소행성 중에는 최강자인 명왕성(冥王星, Pluto) 정도라고 할까?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의 소녀. 최현민(崔賢珉)이란 명찰을 달고 있는 아이는 쉬는 시간 내게 말을 붙인다.


아싸 + 아싸 = 아싸 오브 아싸.


난 이 말을 믿는다. 아싸(outsider)가 뭉친다고 인싸(insider)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태양계 끄트머리에서 서로에게 중력을 행사하며 떠돌 뿐,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아름다운 질서 바깥에 존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아싸가 뭉치면 인싸들의 주목받는 먹잇감이 될 뿐, 힘은 마이너스된다.


벌써 키득거리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 엄마가 이거 너 갖다 주래. 너네 엄마가 우리 엄마한테 부탁한 거래. 건강이랑 학업이랑 그런 거 봐주는 부적이래.”


앞머리를 반듯하게 자른 검은색 머리카락. 그녀의 머리카락은 칠흑 같은 밤처럼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로 현민은 내게 노란 종이를 내밀었다. 붉은색 글씨로 알 수 없는 내용이 담긴 종이에는 내 길운을 염원하는 기운이 담겨 있었다. 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난 얼른 부적을 받아 챘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주머니 속에 숨겼는데 그때 또 현민이가 내게 말을 붙였다.


“그거 교복 상의 안에 달아야 한대. 목 뒤에 주머니를 만들어서 그 안에 넣으래.”


“알았어. 그만 네 자리로 돌아가.”


난 너무 창피해서 현민이 무슨 말을 하든 알았다고 할 기세였다. 그런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현민은 내 옆 빈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 몇 시에 집에 가?”


“몰라. 갈 때 되면 가겠지. 왜?”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현민이는 “엄마가 너네 집 가서 부적 값 받아서 오래.”라고 말했다. 난 “너 혼자 받아가면 되잖아. 아니면 내가 내일 엄마한테 받아다 줄게. 아니, 너가 등교하는 길에 우리 집 들러서 받아서 가.”


“아침에는 너네 가게 문 닫혀 있잖아.”


나는 어떻게든 그녀를 피하려 궁리했으나, 그랬다. 우리 집은 가게 문을 통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아침에는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엄마도 그때는 일어나 있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밤에 피는 꽃이니까. 읍내 변두리에서 낡은 술집을 운영하는 엄마는 내가 학교를 갈 때도 깨어있는 경우가 없었다. 가끔 엄마가 새로 사귄 남자친구(물론 아저씨)가 러닝셔츠 차림으로 화장실을 가다 마주칠 때가 있었지만……. 우리 집은 가게를 지나가야 들어갈 수 있는 기이한 구조였다. 원래는 가게만 있었는데 사람 살 집을 그 뒤에 만들어 연장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장사를 하기 전에 집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아주 늦게 집에 들어가거나, 손님이 거의 없을 때만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가서는 밖에 잘 나오지 않았는데, 가끔은 가게 언니들이 예기치 않게 자리를 비울 때가 있어 손님 술 서빙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물론 시골 술집이라, 동네 아저씨들이 언니들이나 우리 엄마 엉덩이를 (성추행이 분명하지만) 이따금 만질 때도 있었지만 시골 인심이라 생각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수준의, 그렇고 그런 퇴폐적이지도 않고 별로 건전하지도 않은 그런 호프 집이었다.


“알았어. 그럼 집에 갈 때 말해줄 테니까, 일단 넌 자리로 돌아가.”


난 조금이라도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는 시간을 줄이려 애썼다. 그런 건 별로 신경도 안 쓴다는 듯 현민은 평소 그녀의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아이들은 ‘저주 썩소’라고 불렀다). 그녀의 자리는 가운데 줄 선생님 바로 앞자리였다.


현민이가 내게 아는 척을 하기 시작한 건 2학기가 시작되고 나서였다. 어릴 때는 알고 지낸 사이인데, 중학교 올라오면서 우리는 거의 말을 섞지 않게 되었다. 안 그래도 아싸를 넘어 괴롭힘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내게 그것은 재앙과도 같았다.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술집 딸이랑 무당집 딸의 콜라보라니.


왜 갑자기 내게 달라붙기 시작하는 건지. 하지만 워낙 내가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라 현민이를 아예 거부하지는 못했고, 눈치를 준다고 주고 싫은 티를 은연중에 낸다고 내는데, 현민은 그런 것에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하긴, 원래 그런 애였다. 엄마가 무당인데 그것에 대한 자의식은 조금도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엄마보다 더 무당 같은 모습으로 학교를 다닌다.


언젠가 현민이 내게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그러는데, 난 여우 혼령이 씌었대.”


“뭐?”


평소처럼 대충 상대하다가 말려고 했는데 그때는 너무 어이없는 말이 나와 뭐라고 반응할 수가 없었다.


“여우 혼령이 씌어서 귀신도 잘 보고, 사람들에게 씐 기운도 잘 보는 거래.”


그때 나는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여겨서 현민이를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했다.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영어 책을 펴놓고 마치 복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열심히 영단어와 문장구조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은지 너는 아마도……. 코끼리의 혼령이 붙은 거 아닐까?”


정말,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욱하며 나는 그녀의 말을 받았다. 주변에서 아이 몇이 우리 대화를 듣고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내가 어깨가 넓어서 그런 말 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넌 뭔가, 좀 강한 영혼이 있는 것 같아. 그러면서도 온순하고……. 옆에 있으면 사람들을 보듬어줄 것 같은 그런 기운이 있어.”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도 가슴은 조금도 자라지 않는데 어깨만 넓어지는 것 같아서 고민인 나였기에 ‘코끼리’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얼굴이 붉어진 나와 달리 현민이는 아무 표정변화 없이 온화하지만 음침한 표정으로 그런 창피한 말들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현민이와 집에 가야 하는데, 나는 자꾸만 쌓이는 ‘아싸 포인트’ 때문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대로 가면 3학년이 되기 전에 공공의 적, 공공의 아싸가 되어버리고 말 거다. 난 그런 암울한 예감이 들었다. 그것도 현민이네 엄마가 준 부적으로 막을 수 있는 액일까?




그녀는 가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볼 때가 있다. 반 아이들은 그 모습이 소름 끼친다고 말했다. 마치 고양이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을, 특히 어두운 곳을 현민이는 종종 한참이나 바라보고는 했다.


“왜 그래? 뭐 있어? 빨리 가자. 너 그럴 때마다 좀 무서워.”


현민이는 어둡고 좁은 골목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아냐. 아무것도 없어. 혹시 뭐가 있나 싶어서 봤던 거야. 그래, 가자.”


현민은 남색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책이 별로 들어있지 않은지 가방은 가벼워 보였다. 그에 비하면 나는 코끼리 같은 듬직한 어깨에 책과 참고서가 잔뜩 들어있는 검은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깨달은 것인데, 나는 내가 살 길이 공부뿐이라고 생각했다. 외모도 평범하고 사교성도 낮고 말투는 내 의도와 달리 건방지고 시크해서 아이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엄마는 사십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날씬하고 미모가 지금껏 ‘사롸’있는데, 나는 돌아가신 아빠를 닮았는지(그래, 가족 앨범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조금 각진 외모를 가지고 있다. 키도 별로 안 크고 옆으로만 골격이 성장하는 기분이다. 그러니 내게 남은 유일한 길은 공부뿐이다. 학교 사물함에 책을 넣고 다녀도 되지만, 집에 가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니 늘 책가방이 무겁다.


그에 비하면 현민이는 날씬하다. 어찌 보면 깡말랐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그 잘록한 허리는 늘 내가 가지고 싶었던 체형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었다. 다리도 날씬해 교복 치마가 잘 어울린다. 책가방과 같은 색인 남색 캔버스화와 흰 양말이 그렇게 산뜻해 보일 수 없다. 얼굴도 제법 예쁘게 생겼는데 그런 그녀가 나처럼 아싸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은 의외다. 아무래도 그녀의 출신과 그녀가 뿜어내는 아우라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앞머리는 반듯하게 일자로 잘랐지만 머리카락이 등까지 내려오는 헤어스타일이었다. 암흑물질을 뿜어내는 듯한 인상과 달리 머리카락에서는 언제나 윤기가 흘렀다. 트리트먼트 뭐 쓰냐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


어떻게 그녀는 이토록 상반된 이미지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일까? 여우는 사랑스럽기로 소문난 동물인데, 태생은 사랑스럽지만 전체적으로 그녀의 이미지는…… ‘무섭다’이다.


그래, 함께 다니면 뭔가 모르게 소름이 돋는 사람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른, 숨겨진 세계를 바라보는 그 시선 때문에.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빗자루로 바닥을 쓸다가 우리를 본 엄마는 현민이를 보고는 “아, 현민이 왔구나!”라며 반갑게 그녀를 맞았다. 현민이는 꾸벅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아줌마가 얘한테 부적 값 받아오라고 했다던데, 어떻게 된 거야?”


난 조금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는데 엄마랑 현민이에게는 잘 전달이 되지 않는지 두 사람 표정은 태연했다.


“아! 맞다. 내가 어제 현금이 없어서 집에 갔다가 돈 갖다 준다고 했는데 까먹었네.”


“카드는 안 돼?”


내 물음에 엄마는


“지갑을 아예 안 들고 갔어”


라고 대답했다. 아, 현민이네 점집은 카드도 되는구나. 요샌 다 그런가? 엄마는 가게 부엌의 좁은 통로를 지나 우리 안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지갑을 들고 나온 엄마는 현민이에게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주었다.


“엄마, 저기, 계산대에서 꺼내주면 되잖아.”


내가 엄마에게 지적하자 그녀는 “아, 그러면 되네”라고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현민이는 다시 머리를 꾸벅 숙이며 엄마에게 돈을 받았다.


“부적이 원래 그렇게 비싸?”


“몰라. 다른 데는 안 가봤으니까. 너 위한 건데, 난 오히려 별로 안 비싼 것 같던데?”


그 말을 하면서 엄마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하나 더 꺼내며 현민에게 건넸다.


“집에 갈 때 맛있는 거 사 먹어라.”


오랜만에 본 현민이가 반가운지 엄마는 현민이를 살갑게 대했다. 내가 지금껏 친구를 데려온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민이는 다시 머리를 숙이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돈을 받았다.


내가 가게를 지나 방으로 가려고 할 때 현민이가 내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저기 배스킨라빈스 가서 아이스크림 안 먹을래?”


그녀의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아직 들려있었다.


“난 됐어. 피곤해. 집에 들어가서 쉴래.”


“그래? 알았어. 그럼 내일 보자.”


현민이는 내게 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섰다. 사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는데 더 이상 현민이와 함께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아싸가 뭉치면 위험한 화학반응이 발생한다. 연쇄반응이 일어나며 반응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결국에는 폭발할 것이다. 아직 우리 반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있진 않지만 벌써 아이들은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 서로의 위계를 정한 지 오래다. ‘쟨 나보다 아래야.’ 아이들의 눈빛만 봐도 나는 알 수 있다. 저 아이는 이미 나를 자기보다 아래에 있다고 여기는구나. 현민이는 반에서 아주 동떨어진, 함께 하기 싫지만 그렇다고 괴롭히기도 꺼림칙한 아이로 분류되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나는 그냥 무색무취 교실을 떠돌아다니는 공기 입자 정도에 불과하다. 갑자기 색깔을 갖게 되고 심지어 유해하다는 판단이 들면, 탄압받을 것이 분명하다. 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 지내는 건 좋다. 하지만 남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조롱당하고 욕먹고, 급기야 신체적인 학대를 당하는 건 싫다. 혼자 지내더라도 나는 어엿한 한 명의 인간으로 살고 싶을 뿐이다. 남은 세 학기. 어차피 망한 중학교 생활. 최소한은 지키자. 그것이 내 중학 생활의 신조였다. ‘엄마는 외계인’이나 ‘아몬드 봉봉’을 먹고 싶었지만, 당장의 식욕보다 내 중학 생활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 ‘초콜릿 무스’도 맛있는데……. 요새 새로 나온 맛도 있는 것 같았는데……. 혼자서라도 사 먹으러 갈까?




저녁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아무래도 달달한 것이 땡겨 산책 겸 밖으로 나갔다. 공부하면서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좀 거금이기는 하지만 배스킨라빈스에 가서 세 가지 맛을 담을 수 있는 파인트 하나를 사 오려고 했다. 히히, 엄마는 외계인이랑 아몬드 봉봉이랑 초콜릿 무스랑 담아서 와야지.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아이스크림 가게에 도착했는데, 어랏, 가게 안에는 현민이 있었다.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려 했는데, 어랏,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평소처럼 멍한 표정이지만 눈빛만큼은 상대를 뚫어버릴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그녀.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하려다 말고 갑자기 밝은 표정을 짓고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사복 차림이었다. 난 아직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나왔는데…….


현민이는 흰색 반팔 티셔츠 위에 하늘색의 얇은 남방을 단추를 잠그지 않은 채 입고 있었다. 짙은색 청치마를 입고 운동화는 평소 신는 남색 캔버스가 아니라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서 날씬하고 청초한 느낌을 주었다. 옆머리를 한쪽으로 빗어 꽃모양 장식이 달린 머리핀으로 고정했는데, 내 눈에는 그 머리핀이 앙증맞게 보였다. 현민이네 엄마는 딸의 패션에 꽤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점으로 번 돈이 현민이의 치장에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아니, 그냥 보면 꽤 예쁜 모습인데 도대체 이 음울한 기운은 어디에서 솟아나는 것일까?


“너도 아이스크림 먹으러 왔어?”


누가 봐도 내 경로가 아이스크림 가게를 향하고 있었으므로 부정할 수가 없었다.


“어. 밥 먹고 나니까 단 게 땡겨서…….”


원래 나는 아이스크림을 무척 좋아한다. 중학교 들어 살이 붙고 있는 이유 중 상당수는 아이스크림 때문일 것이다. 하루에 한두 개는, 콘이든 컵이든 열심히 몸에 때려 박고 있으니까. 하긴 풀도 많이 먹으면 코끼리처럼 커진다는데, 꼭 아이스크림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난 기본적으로 열심히 먹는 편이다. 학업과 교우 관계, 학교 생활……. 스트레스받을 게 많은, 우주가 위태위태한 시절인 중학교 2학년이니까. 세계의 멸망을 고뇌하는 나이라 그런지 나는 식욕이 왕성하다. 그중에서도 아이스크림은, 내 최애라고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함께 배스킨라빈스로 들어갔다. 현민이가 ”뭐 먹을래? 내가 사줄게.“라고 물었고 나는 ”아냐, 난 파인트 사갈 거야. 비싸니까 내 꺼는 내 돈으로 살게.“라고 대답했다.


“너네 엄마가 준 돈 아직 있어. 내가 살게.”


현민이가 굳이 자신이 사겠다고 계속 우겨서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러자고 했다. 나는 파인트를 골라 내가 고대했던 삼색삼미의 아이스크림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담아놓고 보면 색깔은 비슷한 맛들이지만.


현민이는 뒤에서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한참 메뉴를 보더니, ‘너 T 야?’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을 골라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름이 웃겨서 나는 푹 웃었는데 현민이가 영문 모를 표정으로 나를 봤다.


“왜?”


“아니, 이름이 웃겨서…….”


“tea가 웃겨?”


“아니, 이거 그 티가 아니고, 다른 티잖아.”


“무슨 티?”


“이거 몰라? MBTI?”


아무래도 현민이는 뜻도 모르고 고른 것 같았다. 역시 유행이랑은 담을 쌓고 사는 모양이다.


“난 그냥 홍차 맛이랑 초콜릿이랑 섞여 있다고 해서…….”


그때 뒤에 서 있는 이십 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헛기침을 했다.


“야, 얼른 주문하자.”


내가 얼른 눈치를 보며 현민에게 말했다. 그런데도 현민이 마치 키오스크를 탐구하는 눈빛으로 느긋하게 조작하고 있자, 나는 그녀의 손에서 체크카드를 받아 순식간에 주문을 완료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뒤에 있는 여성에게 ‘무언’의 사과를 건네고 현민의 손을 잡아끌며 자리를 벗어났다.


아이스크림이 진열된 바(Bar) 형의 냉장고 뒤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이 주걱으로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파내고 있었다. 단단히 언 아이스크림을 ‘채굴’이라도 하는 듯, 야구 모자를 뒤로 돌려쓴 여자 알바생은 힘껏 아이스크림을 푸고, 그것을 용기에 담았다. 현민이의 컵 아이스크림, 그 문제의 ‘너 T발 C야?’ 아이스크림이 먼저 나왔다. 현민은 내 아이스크림이 나올 때까지 그저 멍하니 자기 아이스크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 모습, 그녀의 맹한 얼굴이 가끔 귀엽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내색하지 않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너 먼저 먹어. 어차피 나는 집에 가져가서 먹을 거니까.”


“아냐, 네 아이스크림 나오면 그때 먹을래.”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난 집에 가서 먹을 거라니까.”


“그래도…….”


됐다. 고양이를 이해하는 것이 현민이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쉬울 것 같다. 얼마 후 내 소중한 삼미의 파인트가 나왔다. 나는 아이스크림이 든 쇼핑백을 건네받고 현민이랑 가게를 나섰다.


“이거 잘 먹을게.”


가게 밖으로 나와서야 한 입 아이스크림을 떠 넣은 현민은 그 우중충한 이미지와 달리 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둘이 길을 걷고 있는데 보도 왼측으로 큰 현수막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본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나와 함께 걸음을 멈춘 현민이가 나를 보며 물었다.


“왜 그래?”


현수막 중 하나에는 ‘제우스’라는 글자가 어마어마하게 큰 폰트로 적혀 있었다. 그 세 글자는 내 가슴으로 퐁당 뛰어들며 내 마음을 고동치게 만들었다.


“콘서트를 한다고? 오 마이갓!”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 소식이었다. 서울. 다음 달 중순. 주말 이틀간. 유명한 그룹은 아니다. 나 같이 마이너 한 취향을 가진 여자애들이나 좋아할 법한 그룹이다. 뭐, 아직 인기를 못 얻고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내 ‘최애의 아이돌’이 사상 최초, 전국 최초, 전 세계 최초의 단독 라이브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사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수막을 자세히 보니 어디 조그만 공연장에서 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런 촌구석까지 현수막이 걸려 있을 정도면, 아주 제대로 날을 잡고 하려는 모양이다.


그래, 이름이 좀 유치하기는 하다. 버스를 타고 가고 있을 때였다. 어떤 여자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었는데, ‘제우스’가 화제로 올라왔다.


“야, 미친. 아이돌 이름이 제우스래. 그리스 신화 그거 맞지?”


“하하. 컨셉질 오진다. 멤버 이름이 다 왜 이래?”


“헤라클레스 기현? 오디세우스 윤석? 테…… 테…… 텔…… 텔레코마스? 아니구나. 텔레마코스 진형? 무슨 이름이 이래? 큭큭.”


여자애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멍청이들아, 그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이잖아. 그런 것도 모르면서 남들이 열심히 생각해 낸 아이디어를 비웃다니……. 하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소개해야 한다면 조금은 창피할 것 같은 컨셉이기는 하다.


내 최애? 유독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 텔레마코스 진형이 나의 ‘아몬드 봉봉’이다. 현수막에는 다섯 명의 멤버 사진도 있었는데 그중 오른쪽 맨 끝에 있는 아이가 진형이었다. 팀의 막내였고 사실 제일 주목을 받지 못하는 멤버였다. 텔레마코스가 누구인가? 트로이 전쟁에서 맹활약한 전략가이자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들이자, 아버지가 포세이돈의 분노로 인해 귀향하지 못했을 때, 어머니를 노린 무례하고 탐욕스러운 청혼자들을 떨쳐내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 나선 또 다른 영웅. 텔레마코스 진형은 오디세우스 윤석의 아들은 아니었다. 당연하다. 둘은 나이 차이가 두 살밖에 나지 않으니. 둘은 형제였다. 형은 체격이 건장하고 각이 진, 전형적인 미남자였다면, 동생은 얇은 몸과 어딘가 내면에 조금은 그늘을 가진 듯한, 그리스적 비극성을 지닌 멤버였다. 중2병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어딘가 그런 어두운 면에 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머리는 밝은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있지만(원래 첫 활동 때는 검은색이었다) 얼굴에는 언제나 누구도 모르는 자신만의 번뇌를 가지고 있는 영웅. 냐악해 보이지만 아버지를 찾아 먼 망망대해로 당장 뛰어들 것 같은 영웅의 모습이다.


내가 한참 혼자 흥분해서 어버버, 하고 있을 때 현민이 내게 물었다.


“저 아이돌 좋아해?”


“어? 아냐……. 아냐. 그거 말고. 그 밑에 있는 거 봤어.”


“밑에 있는 거? 그거 우리 집 현수막인데?”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현수막을 바라봤다.


‘최영 장군님 보살. 영험한 신기. 출세운, 연애운, 결혼운, 학업운 기타 등등 모두 봐드립니다.’


아, 그러네. 현민이네 집도 저기에 광고를 하고 있었구나. 나는 얼굴이 쌔빨개져서 현민에게 “아냐, 아무것도……. 얼른 가자”라고 말을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얼른 집에 돌아가려고 빨리 걷고 있는데 바닥만 보고 걷다가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어 고개를 들었더니, 어랏, 맞은편에서 같은 반 서너 명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워낙 겉도는 인간이라 아이들 이름은 몰랐으나 대충 우리 반 아이들이라는 것은 나도 알 수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이름이 아마도 ‘이미나’였는데 무리에서 리더 격인 아이였다. 우리는 반 아이들을 지나쳐 걸어갔는데 그쪽도 분명 우리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다고 쳐도, 현민이는 늘 아이들에게 주목을 받는 편이었으니까. 같은 반 아이들인 것도 모르는 듯 현민은 아이들을 지나쳐 가는 순간에도 그놈의 T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 현민아, 너 정말 T니?


등뒤로 아이들 중 누군가가 큭큭,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거리가 더 멀어지자 참았던 웃음소리가 일제히 터지며, “와, 대박.”이란 말소리도 들렸다. 난 그들이 우리 두 사람을 비웃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느꼈다.


비참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엉켜버린 기분. 그런 와중에도 현민이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녀만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일까? 나만 이 비참하고 혼란한 우주 속에 살고 있는 것일까? 누가 봐도 우리 둘이 절친인 것처럼 보였겠지?


난 그런 기분을 애써 감추며 현민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 근처의 골목길을 걷는데 길가에 세워진 차창에 내 모습이 반사되어 보였다. 둥근 얼굴에 푸석푸석한 피부. 각도가 안 좋아서 그런가, 왠지 더 못생겨 보인다. 난 가끔 현민이가 짜증 날 때가 있는데(하긴 그런 게 한두 번도 아니지만), 내가 못 가진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낭비하는 듯 보일 때면 더 그랬다. 나는 매일매일 혹시나 아이들에게 찍힐까 두려워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는데, 조금만 노력하면 현민이는 아이들 틈으로 흘러들어 가 ‘인싸’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좀처럼 ‘개선의 정’을 보이지 않았다. 늘 사람들을 겉돌았다. 내가 비자발적 아싸라면 현민은 자발적 아싸였다.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심연이 가로막고 있지 않은가. 자발적 실업자와 비자발적 실업자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무당집 딸이라지만 사는 것이 그리 팍팍해 보이지도 않는다. 불안의 시대. 아무래도 무속의 힘은 더 깊어지는 법이다. 나라도 내 인생에 대해 현민이네 엄마한테 가서 물어보고 싶으니까.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을 던져 넣었다. 입맛이 가셨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나도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골격이 현민이처럼 날씬하진 않지만 그래도 살을 좀 빼면 지금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외모가 좋아지면 다른 아이들이랑 친구가 되지는 못해도 최소한 무시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내일부터라도 당장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지네. 딱 한 숟가락만 먹고 시작할까? 어차피 내일부터 할 거니까 지금은 먹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유품(遺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