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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Nov 14. 2024

챕터 54 - 휴일(Holiday) 1

민수는 며칠째 검은색 후드 점퍼를 뒤집어쓰고 골목을 돌아다녔다. 일부러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다녔다. 있는 집 아이처럼 보이면 누군가의 신경을 긁을 수도 있으니까. 민수는 학교를 가거나 집으로 돌아올 때, 자신이 봐둔 곳들을 지나쳐 갔다. 태블릿을 찾아오겠다는 민수의 말을 식구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였고 탱크는 이미 엣지 태블릿을 새로 사서 민수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런데 민수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것을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민수는 고글과 이어폰을 장착했다. 이어폰은 캘리포니아 시티에 와서 그가 새로 만든 것이다. 고글과 이어폰 모두 내가 접속할 수 있는 장치들이다. 탱크는 아침에 군부대로 가서 업무를 보지만, 나는 보안 프로토콜을 이용해 언제나 집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고, 홈 네트워크를 중개소로 하여 민수나 다른 가족의 요청에 응할 수 있다. 탱크가 부대에 있을 때 내가 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들을 돌보는 데 쓰고 있다. 내 돌봄의 주된 대상은 이 꼬마 녀석이다. 그래서 스스로가 천방지축 꼬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진짜 이렇게 싸돌아다녀도 되겠어? 넌 가끔 네 나이를 잊는 것 같아. 넌 고작 열 살이야. 이곳에 온 지 거의 1년이 지났으니, 넌 금세 다 자랐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네 키가 하나도 자라지 않은 것만큼 네 나이도 거기서 거기야. 이런 위험한 데를 싸돌아다니다 걸리면, 넌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어.”


민수는 내 경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안에 든 물건을 주물럭거렸다.


“괜찮아. 위험하면 이걸 쓰면 돼.”


그의 주머니 안에는 그가 직접 만든 테이저 건이 있었다. 고글이랑 연동이 되어, 마치 전투기 레이더처럼 표적을 식별할 수 있고, 한 번에 최대 세 발을 발사해 자동으로 표적에 날아갈 수 있게 만들어진 물건이다. 시중에도 이런 건 팔지 않는데, 민수가 설계해서 직접 만들었다.


“그거 불법 무기야. 그냥 조용히 좀 살자. 왜 그렇게 가만히 있지를 못해. 얘가 또 광명에서 하던 버릇이 도졌네.”


내가 아무리 말려도 민수는 듣지 않았다. 자존심 문제인 것일까? 한때는 ‘선수’였던 자신이 다른 아이에게 털렸다는 사실이 분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탱크에게 자신의 말을 증명하고 싶은 것일까?


밖으로 나도는 집고양이처럼 민수는 걸핏하면 밖으로 돌았다. 하연이 어디에 다녀오냐고 물으면 게임샵이나 게임센터에 갔다 왔다고 말했다. 하연은 종종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워낙 영리한 아이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아무리 거리를 돌아다녀도 여자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서, 민수는 방의 컴퓨터에 인근 CCTV 영상을 연결해 달라고 했다. 그것도 불법이지만, 밖으로 나도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낫겠다 싶어, 탱크 몰래 그렇게 해주었다. 그날 이후로는, 전과는 반대로 집에 틀어박혀 나갈 생각을 안 했다. 민수는 학교에 가서도 틈만 나면 고글을 꺼내 쓰고 영상들을 확인하고는 했다.


그렇게 지낸 지 이주 정도. 꼬리가 잡혔다. 민수는 그 여자애가 대로에서 누군가의 주머니를 털고,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와 뒷골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여러 카메라의 정보를 종합해, 여자애가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아냈다.


“헤헤. 여기가 너네 집이구나!”


민수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이나 영상들을 바라봤다. “두고 봐라. 내일이면 그 밉살맞은 손목을 내가 탁 하고 잡아줄 테니까.” 민수는 벌써 승리감에 도취되어 침대에 누워 껄껄대며 웃었다. 웃음소리를 듣고 올라온 하연이 문에 노크를 하고 안을 들여다봤다.


“왜 그래, 민수야? 무슨 일 있어? 큰 소리가 나던데?”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영상 보다가 너무 웃겨서…….”


민수가 재빨리 표정을 바꾸며 대답했다. 하연이 방을 떠나자 민수는 다시금 침대를 뒹굴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일요일 오전.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강이 있다. 당연히 자연이 만든 강은 아니다. 인공으로 물을 끌어와 만든 개천 수준의 강이지만, 지하 시민들에게는 ‘자연’을 느끼게 해주는 휴양지였다. 강이 보이는 곳에 백화점이 있고 주변에 레스토랑과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린이 필라테스를 하는 곳도 거기였고, 그 근처에 료마가 일하는 도장이 있다. 오늘은 가족들 모두가 집에 있었는데 민수는 혼자 게임센터에 간다고 말하고 집을 빠져나왔다. 탱크는 그가 집을 나설 때, 내게 민수를 잘 지켜보고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일단 “알았어”라고 대답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또래 친구들끼리 밖에 나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는 어떤 말도 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비밀을 함께 나누는 것이 친구 아닌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뱉어내는 백화점 뒤쪽으로, 활기찬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뒷골목이 있다. 번화가의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 지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곳에서 민수는 어느 건물 옥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고글의 줌을 조절해 여자아이의 은신처를 계속 지켜봤다.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여자애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곳은 샌드위치 패널 같은 재료로 아무렇게나 지은  건물이었다. 드문드문 벽돌과 시멘트가 보이기도 했으나, 되는대로 이런저런 재료들을 덧대여 놓은 곳이었다. 민수가 광명에 있을 때 자주 보았던, 부랑자들의 안식처였다.


한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출입문으로 나오는 사람도, 들어가는 사람도 없었다. 민수는 배낭을 열어 초코우유를 하나 꺼내 빨대를 꽂아 마시기 시작했다. 그가 쪽쪽, 우유를 빨아 마시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민수는 옥상 난간으로 몸을 숙이며 계속 그곳을 바라보았다. 갈색 머리의 여자아이. 빗질을 제대로 하지 않는지 헝클어진 머리 그대로였다. 여자아이는 문을 나서서 골목으로 걸어갔다. 민수는 고글 위로 겹쳐져 보이는 골목의 CCTV 영상들을 확인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여자아이는 백화점 쪽으로 가고 있었다. 물고기가 많은 곳에서 고기잡이를 하려는 것이었다.


민수가 백화점 앞에 도착했을 때, 여자아이는 그곳에서 작업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백화점 앞으로는 많은 차들이 지나갔고, 온갖 사람들이 뒤섞여 정신이 없었다. 여자아이는 통화를 하고 있는 한 중년 남자 근처를 배회했다. 남자는 허공을 보며 혼자 말을 하고 있었다. 머리에 프로세서를 이식한 사람으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민수는 맞은편에 있다가 신호를 기다려 길을 건넜다. 그는 강물을 등뒤에 두고, 사람들과 섞여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갈색 머리 여자애는 사냥물에 정신이 팔려 민수가 가까이 가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남자가 백화점 꼭대기에 있는 시계를 바라보고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소녀는 남자의 곁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살며시 번지려 할 때, 누군가 소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고개를 돌린 소녀의 시선으로 민수가 들어왔다.


“왜? 이번에는 뭘 털려고?”


소녀는 당황한 얼굴로 민수를 바라봤다.


“저번에 가져간 태블릿 어디에 있어? 널 찾으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아?”


소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민수를 쳐다봤다.


“왜 이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자아이는 민수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어린 시절부터 뒷골목을 전전한 민수의 완력은 열 살 꼬마치고는 강한 편이었다. 소녀는 손목이 잡힌 채로 있었다.


“저번에 내 주머니에서 털어간 엣지 태블릿. 기억 안 나? 벌써 팔아먹었냐?”


여자아이는 난감한 표정으로 민수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저쪽으로 가자.”


그녀는 민수에게 여전히 손이 잡힌 채, 백화점 오른쪽에 있는 골목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손목이 잡혀 있어서 그녀는 마음대로 걸어갈 수 없었다. 소녀는 민수를 돌아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멍청아. 계속 여기에 이러고 있을 거야? 저쪽으로 가자니까!”


그제야 민수는 여자애의 손목을 놓고 그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골목 입구로 가서 여자아이는 민수에게 말했다.


“너 기억난다. 저번에 침 흘리면서 무슨 포스터 같은 거 보고 있던 꼬마애잖아.”


“누굴 보고 꼬마래? 그리고 내가 언제 침을 흘렸다는 거야?”


“너무 멍청해 보여서 다시는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너 좀 집요한 데가 있구나? 옷은 어디 도련님처럼 차려입고 있으면서…….”


민수는 괜히 자신의 옷을 살펴봤다.


“알았어. 그 태블릿, 아직 내가 가지고 있어. 가져다줄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이대로 달아날 생각이잖아?”


“아휴, 너 정말 성가신 꼬마애구나. 그거 잃어버려서 엄마한테 혼났어? 왜 이렇게 울고불고 난리야?”


“이게 정말……. 뭐가 이렇게 당당해? 그리고 내가 너보다 키도 큰데 왜 자꾸 꼬마래?”


“알았어. 알았어. 그럼 같이 가자. 같이 가서 네 태블릿 주면 되잖아. 남자가 쪼잔하게…….”


민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뭐 이렇게 낯이 두꺼운 애가 있지? 하지만 여자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새초롬한 표정으로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여자애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괜히 골목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시간을 끌었다. 민수가 자신의 집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민수는 그저 모르는 척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집과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여자애가 갑작스럽게 어느 좁은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진짜, 저게……. 저럴 줄 알았다.”


민수가 짜증을 내며 그녀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무척 복잡한 골목이었다. 민수는 숨을 헐떡거리며 여자애의 꽁무니를 따라 달렸는데, 겨우겨우 그녀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낚아챌 수 있었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소녀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다섯 번 정도, 방향을 틀며 골목을 따라 그녀를 쫓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여자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민수는 숨을 몰아쉬며 두 손을 무릎에 가져갔다. 몸을 숙이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민수는 말했다.


“아, 진짜 사람 열받게 하네. 진짜 얄미운 계집애……. 너 진짜 오늘 내가 가만히 안 둔다. 차라리 집 앞에서 기다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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