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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Nov 14. 2024

챕터 59 - 만찬(晩餐)

미리 약속된 네트워크 번호로 연락을 했을 때 대답을 한 것은 루이지(Luigi)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탱크가 그에게 “마리오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탱크에게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2층짜리 주택으로 현재 그곳에 사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물론 루이지라는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시스템 상에 존재하는 단말에 불과했다. 탱크의 음성과 암구어를 통해 워싱턴에 위치한 탱크 소유의 가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캘리포니아를 떠나올 때, 그곳의 모든 데이터는 파기되었고, 그들이 살았던 흔적 역시 남겨두지 않았다. 이제 스테이지 2. 작전은 다음 단계로 진행된다.


워싱턴에 온 후 첫 번째 주말. 민수와 마리는 거실에 앉아서 아침 만화를 보고 있다. 오리와 고양이, 쥐 따위가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100년 전에도 이 시간이면 아이들을 웃게 만들던 그들이, 100살을 더 먹고도 지금 열심히 화면 위를 왁자지껄 뛰어다닌다. 실없는 그들의 몸짓에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지어보인다. “저 오리, 진짜 멍청하다. 꼭 찰스 같아!” 가끔 마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민수는 그녀를 째려보며 성질을 부리지만, 마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늘 민수를 놀려대고는 했다.


만화를 보던 민수가 고개를 돌려 잠시 거실과 부엌 사이의 복도를 바라본다. 복도 벽쪽에는 커다란 벽장 같은 것이 있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는 알 수 없다. 육중한 철문으로 닫혀진 그곳은 자물쇠도, 그러기에 열쇠도 없이 굳게 닫혀 있다. 그 뒤에 무슨 공간이 있는지, 왜 저런 공간이 집에 있는지, 혹시 그 안에 케르베로스 같은 괴물이 숨어있기는 한 것인지, 민수는 알 길이 없었다. 그곳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이 집에 존재하고 있었다. ‘저 안에 도대체 뭐가 있을까?’ 민수는 궁금했지만 호기심을 해결할 길이 없었기에 이내 관심을 껐다.


벽장 옆으로 지하실로 향하는 문이 있다. 문은 살짝 열려 있다. 탱크는 무엇을 찾으려는지 방금 전 지하실로 내려갔다. 아직은 이른 시간, 7시. 린과 료마는 1층 자신들의 방에 있고, 두 꼬마는 거실 소파를 차지한 채 잠옷 바람으로 TV를 보고 있다.


하연은 집에 없었다. 새벽에 외출을 했다. 하연은 새벽부터 사격 연습을 하러 근처 실탄 사격장을 찾았다. 사격을 유난히 좋아하는 하연은 워싱턴에 온 후 가장 먼저 집과 가까운 곳의 사격장을 검색했고, 이사가 끝난 후 매일 사격 연습을 하러 갔다. 누가 보면, 국제 사격 대회에 출전을 할 기세였다. 이젠 세상에 그런 대회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탱크는 지하실 안에서 검은색의 플라스틱 상자를 보고 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샌딩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나무 테이블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전자식 망원 조준경을 부착할 수 있는 저격용 소총이 안에 있었다. 길림에서 그도 자주 사용한 저격 소총과 유사한 모델이다. 그러나 그보다 성능이 더 좋다. 망원조준경의 성능도 더 좋고, 결국 사격수의 능력에 좌우되지만 사격 보정 기능도 더 낫다. 일반 탄환과 고성능 철갑탄을 모두 장전할 수 있다.


이 소총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이 집에 있던 것이다. 누가 이것을 이곳에 가져다 놓았을까? 이 총은 무슨 목적을 위해 이곳에 존재하는 것일까? 3km 정도의 거리에서는 능숙한 사격수라면 안정적으로 저격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숙련된 사수라면 5km까지도 욕심을 내어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탱크와 같은 강화형 클론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탱크는 상자 안에 있는 소총과 부품들을 꼼꼼히 살폈다. 고장난 곳은 없는지, 작동은 제대로 되는지 살펴본 후, 그는 상자를 닫고 지하실 구석 선반 아래에 상자를 집어넣었다. 소총이 처음부터 놓여있던 자리에. 미국은 지금도 총기 소지의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이지만, 이 소총은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은 물품이었다.


탱크가 지하실에서 올라와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거실로 나왔을 때, 하연이 집으로 들어왔다. 7시 30분. 그녀는 새벽 5시 30분에 나가서 1시간 넘게 사격 연습을 하고 왔다. 하연이 집으로 들어서자 탱크가 그녀의 어깨에 걸려있던 스포츠 가방을 건네받는다.


“오늘은 어땠어?”


탱크의 물음에 하연은 활짝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만발이죠. 코치가 당장 강사로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고요.”


부엌에는 클라라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연은 부엌으로 가서 클라라에게 “빨리 씻고 와서 도와줄게요.”라고 말했고, 클라라는 “천천히 씻고 오십시오. 이미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클라라는 늘 입는 남색 원피스 근무복 위에 하얀 앞치마를 매고 분주히 부엌 안을 돌아다녔다.


잠시 후, 8시 30분 즈음 식구들이 부엌에 모여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탱크가 달걀 프라이를 나이프로 잘라 한 입 먹고서는 말했다.


“오늘 오후 5시에 차로 데리러 올게.”


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컵 안에 든 맑은 생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물질은 전혀 보이지 않는 깨끗한 물이었다.


“언니는 저녁에 뭐할 거예요?”


하연의 물음에 린은 입 안의 베이컨을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


“글쎄. 아마도 애들이랑 영화나 한 편 보고 올까 싶어. 클라라도 데리고.”


하연이 클라라를 쳐다보니 그녀는 아무 반응없이 접시 위 음식을 조용히 먹고 있었다.


워싱턴 시티. 과거 워싱턴 D.C.라고 불리던 곳 지하에 마련된 벙커 도시. 그곳에도 백악관(White House)이라 불리는 집이 있다. 이제는 더이상 사용되지 않은 지상의 건물을 그대로 본따 만든 건물이다.  다만 과거보다 직원이 많지 않아 규모는 조금 더 작다. 건물의 지하 깊은 곳에는 미국 연방 전역을 담당하는 세 인공지능, 루시와 키온, 세라가 존재하고 있고, 유사 시 대통령의 대역을 수행하는 대통령의 클론들도 백악관 영내 어딘가에 흩어져 대기를 하고 있다.


오늘은 그곳에서 만찬이 열린다. 합동참모본부의 차장 앤드류 고든 장군은 탱크에게 아내를 데리고 만찬에 참석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통령이 이번 작전에 대해 물어볼 것이 많다고 했다. 공식 보고보다는, 현장 경험이 있는 탱크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장군은 대통령이 복잡한 이야기는 싫어하니, 모든 질문에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게, 머릿속에 정리를 잘 해오라고 당부했다.


백악관의 규모가 축소된 만큼 그곳의 오리지널 인간들이 하는 일도 많이 줄었다. 대부분의 일은 인공지능이 알아서 처리해주고, 허드렛일과 불쾌한 일들은 모두 클론이 도맡는다. 대통령이 하는 일이란 인공지능과 수하들에게 자신의 요구를 강변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그들에게 엄청난 화염과 분노를 보이는 것뿐이다. 그러면 일은 알아서 처리되었다.


대통령은 어떻게 하든 중국을 이겨보고 싶어했다. 땅도 땅이고, 국익도 국익이지만, 세계에 남은 두 개의 강대 권력. 그 싸움에서 그는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클론 전쟁과 핵전쟁이 시작된 후, 미국은 한 번도 중국을 이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의 목숨이 걸려있는 전쟁은 아니다. 죽는 것은 클론이고, 사라지는 것은 돈일 뿐이다. 이것은 큰 판돈이 걸린 도박일 뿐, 과거처럼 인명(人命)이 걸린 심각한 ‘비즈니스’는 아니다. 그렇지만 도박이기에 참가자들은 그 놀이에 더욱 현혹되어, 침을 질질 흘리며 다음 게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악관 안의 큰 홀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참석자 대부분은 기업가로, 인공지능이나 안드로이드, 바이오 테크 등 첨단 기술 산업의 CEO들이 많았다. 특히 안드로이드와 바이오 테크 기업가들은 이번 전쟁에 관심이 지대했다. 안드로이드 기업들은 이번 공세에 최대한 많은 전투 안드로이드가 투입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로비를 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호황을 누리고 있는 클론 산업의 CEO들은 대통령 옆에 찰싹 붙어 지금의 번영이 영원히 계속 될 수 있도록,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대통령의 장광설을 듣고 있었다.


탱크는 앤드류 장군에게 하연을 소개했다.


“제 아내, 레베카(Rebecca)입니다. 베키(Becky), 여기는 고든 장군님.”


장군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직한 영어로 인사하는 하연은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맑은 느낌의 옷이었다. 어깨가 살짝 드러났지만 과하지 않았다. 드레스의 길이도 길지 않아, 그녀의 발목을 살짝 덮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선 탱크는 카키색 계통의 정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왼손으로 정모를 들고 있었고, 하연은 그의 오른팔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했는지 몰랐군. 프랭크.”


장군의 칭찬에 하연은 미소로 화답했다. 장군은 탱크를 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까 자네가 한 브리핑에 대통령이 무척 흡족해 하더군. 자네 설명을 들으니 공세에 안드로이드를 추가 투입하는 게 좋겠다는 확신이 든 모양이야. 저쪽에 저 사람 보이지? CR 테크라고, 안드로이드 기업인데 아주 입이 귀에 걸려있군. 저쪽도 추가 생산에 들어갈 거야. 저곳 전투 안드로이드 성능이 뛰어나거든. 지금 이곳 워싱턴에서도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 오는 길에 봤지? 시위대는 하루도 쉬는 법이 없다고. 이런 시기에는 공장을 쉬지 않고 돌려야 하네. 그러니 이번 공세에 대통령의 자존심만 걸린 것은 아니야. 이 ‘사업’에 얼마나 많은 가정이 걸려있는지를 생각해보게. 자네가 그 막중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걸세.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만 해주게.”


장군은 무척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탱크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그는 하연에게 인사를 건네며 자리를 떴다. 모처럼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자, 탱크는 하연의 손을 이끌고 만찬장 한편에 있는 발코니로 나갔다. 조금은 답답하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발코니로 가는 길에 탱크는 짧은 회색 머리를 한 웨이터에게 화이트 와인 잔 두 개를 건네받았다. 바깥 바람을 쐬며 두 사람은 발코니에서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여름이 오고 있었으나, 이곳 지하도시는 언제나 봄이나 가을 같은 날씨였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수영장 같은 곳은 다른 구역보다 더 높은 온도를 유지했으나, 대부분의 거주 공간은 가장 쾌적한 온도에 맞춰져 있었다. 동물들이 여름의 열기로 목숨을 잃기도 하는 지상과 달리, 이곳에는 딱히 계절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9월에 공세가 시작된다고 했을 때, 대통령은 왜 7월이나 8월에는 공세를 할 수 없는지 물었다. “최근 기온으로 봤을 때, 한여름에는 40도 이상이 되는 경우도 많아서 클론들의 기동이 불가능합니다.” 탱크의 대답에도 페머트 대통령은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는 살면서 그러한 더위를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워싱턴은 죽음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하의 자금이 돌고 공장이 가동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피와 살이 가공기에 들어가 소시지가 되는 것처럼, 클론의 살과 피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안드로이드의 금속 부품들이 추가될 것이다. 단백질과 금속, 기름과 실리콘으로 만든 특제 소시지.


돌로 된 발코니 난간에 팔을 괴고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하연은 탱크에게 말했다.


“이곳이 공기가 훨씬 깨끗하고, 물맛도 좋다고 하지만, 어디를 봐도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표정도, 거리의 풍경도, 사람들이 말 속에도……. 온통 죽음만이 가득해요. 이곳은.”


탱크가 난간에 올려진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의 선택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어요. 나는 어디든지 따라갈 거예요. 다른 식구들도 마찬가지고.”


군복 차림의 남자는 그 순간, 자신의 아내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 죽음의 도시 안에서 유일하게 살아 숨쉬는 존재는 그녀뿐인 듯했다. 탱크는 하연의 입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백악관에 모인 정치인과 기업가들, 관료와 군인들은 드높아진 기대를 품고, 밤이 늦도록 건배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밤새 인간을 찬양하고 문명을 수놓는 아름다운 노랫말과 시를 읊었다. 자신들은 조금도 믿지 않는 언어(言語)를, 죽음을 축복하는 만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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