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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Nov 14. 2024

챕터 60 - 평일(平日)

탱크는 페머트 대통령의 클론 E037에게 작전 개요를 설명했다. 그곳은 지하 백악관에서도 지하로 6층을 더 내려간 곳에 있는 어느 회의실이었다. 회의실에는 E037, 탱크와 여군 중위만이 있었다. 4인용 테이블을 앞에 두고 탱크와 E037은 마주 앉았다. 20대 중반의 흑인 여 중위는 E037과 마찬가지로 클론이었다. 회의실 밖에는 클론 군인 여섯 명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탱크는 공세의 목적과 방향, 병력의 수 등을 E037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대통령 유고시 곧바로 활동을 개시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E037이 다음에도 대역을 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클론에게도 공세 작전에 대한 브리핑이 필요했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습니까?”


클론이었지만 탱크는 E037에게 존댓말로 브리핑을 했다.


“없습니다. 잘 짜인 작전이군요. 저번의 실패와 달리, 이번에는 작전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모습은 완벽하게 동일하지만 말투와 태도는 전혀 달랐다. 이처럼 차분한 클론이 어떻게 성미 급한 대통령을 연기할 수 있을지, 탱크는 의문이 들었으나 과거 아서 스미스의 클론을 떠올려보면 납득이 되기도 했다.


60대의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E037은 나이 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태어난 지 2년이 되었을 뿐이지만, 성장 가속을 통해 충분하게 ‘노화’가 된 모습이었다. 어차피 태어나서 1년 안에 사망하는 클론이 전체의 80% 이상이었기에, 그의 때 이른 노화가 안타까운 일은 아니었다. 만일 다음 선거에서 페머트가 지고 다른 사람이 백악관을 차지하게 된다면 그는 생물학적으로 폐기될 것이다. 페머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그의 클론들이 세상을 활보하고 있었지만, E037은 대통령직을 대행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대통령이 아닌 페머트의 대역은 존재할 필요가 없기에, 그의 수명은 페머트의 임기에 맞춰져 있다.


그런 자신의 운명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E037은 태블릿에 담긴 작전 정보들을 천천히 살피고, 그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브리핑을 통해 숙지를 할 수는 있지만, 기밀 정보를 두뇌 안 프로세서의 스토리지에 저장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E037은 세심히 자료들을 살피며 그 내용을 곱씹었다.


브리핑은 1시간이 걸렸다. 작전 내용을 숙지한 E037은 회의실을 빠져나와,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곱실거리는 금발에 이상하게 주름진 얼굴, 건장한 체구를 지닌 클론은 복도를 조용히 걸어갔다. 탱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철장 안에 갇힌 곰을 떠올렸다. E037의 주변을 여섯 명의 경호 클론이 에워싸고 복도를 걸어갔다. 그들은 모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탱크가 여 중위와 함께 1층으로 올라왔을 때, 백악관 건물 안은 무척 부산스러웠다. 특히 1층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경호실이 분주했다. 내일모레 대통령의 장외 연설 때문이었다. 지하 워싱턴의 D섹터에서 연설하기로 되어 있는데, 그날 군 관계자들은 물론 바이오 테크 산업과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산업의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한다. 장외에서 열리는 행사라 대통령에게는 일종의 선거 유세와도 같은 기회였다. 행사장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군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행사장 한편에는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맞불 집회가 열릴 것이라 한다. 11월에 있을 중간 선거에 대한 여론 조사가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시점에, 대통령이 이런 천금 같은 선거운동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의욕적으로 연설 준비를 했다. 연설문이 이미 완성이 되어 대통령의 ‘머리’로 전달이 되었으나 아마도 그는 즉흥적으로 연설을 할 것이다. 글 읽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자신이 무척 위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이니…….


탱크가 백악관 정문 앞 보안 섹터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경호원이 그에게 아는 체를 했다.


“소령님. 퇴근하나요?”


탱크가 뒤를 돌아보니 곤잘레스라는 이름의 경호원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악관에 드나들며 안면을 튼 남자였다.


“오, 곤잘레스. 그래. 난 지금 퇴근하려고. 오늘 할 일은 다 끝나거든.”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거든요.”


“내일모레 외부 행사가 있다지?”


“네. 아주 중요한 행사라 벌써 한 달 전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내일부터 이틀간 휴가라…….”


탱크의 미소를 곤잘레스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전 언제 쉬었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클론 녀석들은 자기 의지와 판단으로 하는 게 별로 없어서, 저 같은 사람이 없으면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리거든요.”


탱크가 그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조금만 더 수고해. 이번 행사 끝나면 좀 쉴 수 있지 않겠어?”


“그러게요. 이번 일만 끝나면 남미에 있는 지하도시로 가족들 데리고 여행이나 가려고요.”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탱크의 차례가 왔다. 탱크는 구릿빛 피부가 매력적인 오리지널 경호원 곤잘레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보안검색대를 빠져나갔다.


자율주행차량 뒷좌석에 몸을 싣고 탱크는 집으로 향했다. 26개의 섹터로 나뉘어 있는 지하 워싱턴에서 탱크의 집은 가장 북쪽 A섹터에 있다. 중심부인 L섹터와는 거리가 조금 있다. L섹터와 함께 백악관 섹터를 구성하고 있는 M섹터를, 사람들은 하나로 합쳐 LM섹터, 더 길게는 LEMON 섹터라고 부른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의미의 그 레몬. 정치에 대한 조롱과 환멸이 담긴 의미였다.


차량이 지나가는 거리 위로 잘 정돈된 지하 워싱턴의 모습이 보였다. 가지런한 관공서와 상업 지구,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주택과 박물관 같은 공공시설들,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공원……. 온도는 섭씨 20도. 지상은 이상기후로 펄펄 끓고 있을 8월 초였지만 이곳의 기온은 생활하기에 딱 좋은 수준이었다. 열린 창 틈 사이로 깨끗하고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역시 탱크에게는 이곳의 바람이 그리 쾌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연의 말대로 그것은 어딘가 죽음의 기운을 담고 있었다. 지상과 지하의 수많은 죽음 위에서 지탱되고 있는 지하 문명. 그들이 마시는 물과 음식, 그들이 호흡하는 공기, 그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온갖 미적인 요소들. 그 모든 것이 죽음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이 시기 미대륙의 여름은 너무나 뜨거워, 지상의 숲은 자연적으로 발화가 되기도 한다. 클론으로 구성된 지상의 군부대가 주둔한 곳이 아니라면 지하는 지상의 산불이나 홍수 같은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지상의 농장이나 산업 시설이 온전하게 돌아가기만 한다면, 지상의 기후가 이곳 사람들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힘겹게 싸워야 하는 지상의 삶과 달리, 이곳의 삶은 너무나 차분해서 오히려 죽어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젠 정말, 떠날 시기가 된 것인지도 몰라. 탱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읊조렸다. 그의 혼잣말에 차량의 인공지능이 반응한다.


“의도하신 바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혼잣말한 거야. 그냥 가던 대로 계속 가면 돼.”


“알겠습니다, 소령님.”


아직은 퇴근 시간이라 하기에 이른 시간, 도로 위에 차량은 많지 않았고, 탱크가 탄 차량은 효율적으로 구획된 도로를 막힘없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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