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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Nov 14. 2024

챕터 58 - 전출(轉出)

워싱턴에서 왔다는 장군은 방금 전까지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짧은 회색의 머리카락 아래로 깔끔하게 면도를 한 그의 턱이 드러났다. 날카로운 눈으로 벽걸이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만지던 그는 카키색 정복 안의 넥타이를 고쳐 맸다. 남자의 정복 가슴에는 고든(Gordon)이라는 검은색 명찰이 붙어 있었다. 앤드류(Andrew) 고든 3성 장군은 탱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가서 그와 마주 보고 앉았다. 탱크의 황톳빛 위장(camouflage) 패턴 전투복에는 최(Choi)라는 글자가 적힌 명찰이 달려 있었다.


“캄차카 반도에서 오래 근무했다고? 3년?”


장군은 서류를 보며 탱크에게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탱크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장군은 조용하게 서류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탱크를 보며 말했다.


“함께 근무한 클론들이 자네의 활약에 대해 말하더군. 실제 전투에도 여러 번 참가했다지?”


“네, 그렇습니다.”


탱크는 클론들의 ‘증언’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캄차카에서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다만 장군이 어떤 전투를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캄차카 반도의 클론들은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 탱크의 전공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클론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실전 경험이 있는 오리지널은 워낙 희귀해서 탱크(프랭크 최)의 이력이 미국 합동참모본부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듯했다.


탱크는 자리에 앉아 방 안을 둘러봤다. 평소 회의실로 사용되는 곳으로 가운데 큰 책상이 하나 있고 그 주변에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조명은 밝은 편이었다.


장군이 말했다.


“상부에서는 차기 공세를 준비 중이라네. 정말 중요한 작전이 될 텐데, 현장 경험이 있는 지휘관들이 부족해서 작전 계획이 산으로 가고 있어. 인공지능이 있다지만, 루시는 전쟁을 싫어하는 모양이야. 작전 계획이 어딘가 모르게 조금씩 비어있거든.”


2134년 봄의 공세 실패 이후 행정부는 수많은 비난에 시달렸다. 2년이 경과한 지금, 행정부는 11월의 중간 선거 전에 유권자들에게 인상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대통령은 차기 공세에 집착했다. 공세 준비로 미국 지전역의 클론 공장은 밤낮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반군과 대치하고 있는 남부 전선에, 아시아의 대중국 전선까지, 매일 수 천의 클론을 찍어내도 병력이 모자랐다. 대통령과 한 배를 탄 여당 의원들은 클론 증산을 위한 계획을 수용했고, 미국 내에는 ‘이번에야말로 세탁업자들에게 미국의 실력을 보여주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중국 내부의 반란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이번 공세 준비에 힘을 실어주었다.


“2주면 되겠지? 가족들을 데리고 워싱턴으로 오게.”


장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상의의 단추를 잠갔다. 지금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지 오십 대인 앤드류 장군의 몸에는 군살이 없었다. 서류상으로는 이미 결정이 난 사항이었다. 장군은 서남부 지역의 부대를 시찰하는 길에 직접 탱크를 면담하러 온 것이었다. 탱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선 장군에게 경례했다.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6시에 퇴근해 집으로 돌아간 탱크는 식사를 한 후 1층에 있는 서재로 갔다. 그곳 방의 창문 앞에는 마호가니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양쪽에 여섯 개의 서랍이 있는, 엔티크한 가구였다. 고풍스럽지만 책상의 오른쪽 서랍은 물건을 넣어두는 공간이 아니다. 그 안에는 고성능의 양자 컴퓨터가 들어 있었다. 탱크가 소파에 앉자 주인을 인식한 컴퓨터가 부팅이 되고, 책상 상판에 내장되어 있는 모니터가 올라오며 접속할 준비가 완료되었다. 탱크는 그 컴퓨터를 별다른 인터페이스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 그의 뇌 속에 있는 프로세서로 조종할 수 있고 또한 내가 조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탱크는 모니터 위에 뜬 정보들을 직접 눈으로 보며, 또 손으로 조작하며 확인했다. 그 안에는 많은 글씨와 그래프, 사진이 있었다. 이곳에 처음 온 이후 탱크가 수도 없이 본 자료들이다. 이것을 만든 자조차도 잊어버린 데이터들……. 이제는 탱크가 그 모든 정보의 소유주이자 책임자다.


모든 것은 예측한 대로였다. 하지만 한 조각 퍼즐이 맞춰지지 않았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조각이. 탱크는 정보에 갈증을 느꼈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는 알고자 했지만, 해석에 핵심이 되는 단어가 사라진 고문서처럼, 그의 손에 있는 정보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지워져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탱크는 오늘도 골똘히 그 문제를 생각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연이었다.


“목욕물 받아줄까요?”


하연이 탱크의 뒤로 걸어오며 물었다. 모니터 위에는 탱크가 보고 있던 데이터들이 그대로 있었다.


“그냥 간단하게 샤워만 할게.”


탱크가 하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린이랑 료마는 뭐래?”


“그냥……. 어쩔 수 없다고 그러죠.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


탱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계획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설령 문제가 생겨도, 내가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을 거야.”


하연은 등 뒤에서 탱크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괜찮아요. 다들 각오하고 있어요. 모든 것이 끝나고, 우리가 한 곳에서 함께 살아갈 수만 있으면 돼요.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절대로, 당신하고 다른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릴 일은 없어.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다 처리할 거야.”


그렇게 수차례 다짐을 하지만 탱크의 마음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그는 가끔씩 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가족들과 지금 이곳에서, 이 상태로 살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텐데…….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 모든 것들이 탱크가 수행해야 하는 일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것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그는 자신의 책무로부터 도망갈 수 없었다. 그에게는 사명이 있었다.


그가 이곳 지하의 캘리포니아 시티에 도착하고,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처음 확인했을 때,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모든 것들이 혼란스럽고 예측한 대로 이루어진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지만, 이곳에 도착해 그 안에 담긴 기록들을 보니, 모든 것이 예정대로였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조종해서, 이곳에 도달하게 한 것처럼 그는 예정된 경로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이곳에 당도했다. 그러니 지금의 주저함 역시 예정된 경로 안에 있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그의 앞에는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더 걸어갈수록 그의 발목을 감싸는 안개의 농도가 짙어졌다. 그가 최종적으로 도착할 곳은 어떤 미래일까? 탱크는 다시 거대한 혼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아직 쓰이지 않은 미래라는 책 속으로…….




캘리포니아 시티의 지상에 있는 비행장. 워싱턴으로 향할 수송기가 활주로에 있다. 탱크를 선두로 하연, 린, 료마와 민수, 그리고 마리와 클라라는 검은색 수송기에 탑승했다. 무척 뜸한 민간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군 수송기를 이용하는 편이 편했다. 가족의 짐은 사흘 전 이미 육로로 보낸 참이었다. 그들은 몇 가지 간단한 짐만을 챙겨 비행기에 올랐다. 군용 수송기였으나 사람들을 태울 일도 있었기 때문에, 항공기 앞쪽에는 조그만 객실이 있었다. 일행은 객실로 들어가며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항공기 실내에는 정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쾌적한 공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막 취업을 한 료마는 이곳을 떠나게 된다는 것에 대해 일말의 아쉬움도 표하지 않았다. “늘 그랬듯, 강물 위에 올려진 조각배처럼, 물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될 뿐이오.” 며칠 전 그렇게 말하던 료마는 마리를 사이에 두고 린과 함께 객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리는 가슴에 봉제 인형을 하나 들고 있었다. 파란색의 코알라처럼 생긴 녀석인데, 아무래도 지구의 녀석은 아닌 듯했다. 린은 마리의 옆에서 그녀의 안전벨트를 채워주고 있었다.


화이트 부부는 워싱턴에 가면 마리를 입양하려고 했는데, 영주권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리고 그럴 시간이 없더라도, 자신들이 마리를 맡아 계속 키우겠다고 했다. “우리가 입양을 해야, 나중에 찰스랑 마리가 결혼할 수 있지.” 린이 그런 농담을 했을 때, 민수는 경기를 일으키며 머리를 흔들었으나, 어쩐지 볼이 조금 붉게 변하는 것 같았다.


약간의 대기 시간이 지나고, 항공기가 천천히 활주로 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항공기가 이륙했고 그들은 일 년 가량 터를 잡고 살았던 캘리포니아를 뒤로 하고 미국 동부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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