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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Nov 14. 2024

챕터 67 - Goodbye

버려진 집에는 의외로 자동차 충전기가 있었고, 마스크와 방진복, 그리고 2주간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이 있었다. 식량은 군용처럼, 포장에 있는 줄을 당기기만 하면 덥혀지는 음식이었고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영양은 충분한 것이었다. 보존기간이 아직 한참 남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다.


차가 충전되는 동안 탱크는 미리 근처의 터널로 가서 인증을 하고, 터널 입구를 열어놓았다. 그것은 1톤 트럭도 들어갈 수 있는 너비의 터널이었다. 지하의 비상 탈출로 중 한 곳으로 그 존재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터널 입구의 철문에는 이끼가 가득 끼어 있었다. 이것이 세워진 이후 이 입구를 열어본 일이 있었을까? 탱크의 신원이 확인되자 철문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흙덩어리가 후드득 떨어졌다.


집안에서는 하연과 린, 클라라가 물품을 챙기고 아이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탱크가 돌아보니 료마는 집중할 때면 나타나는 그 ‘진지한 눈썹’을 하고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처에는 이 집 하나뿐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도 집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곳은 W섹터 중에서도 가장 변두리에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주인이 없는 셰퍼드 한 마리를 보았을 뿐,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기 어려운 곳이었다.


차가 완충되려면 20분 정도가 남았다. 지상에서는 자동차를 충전할 수 있는 곳이 드물기 때문에 여기서 완충을 해가는 것이 좋다. 어제도 충전을 했으나 이곳에 오는 동안에도 전기를 소비했기 때문에, 탱크는 이곳에서 완전히 충전을 하고 떠나기로 했다.


그는 흙바닥과 잡풀, 곳곳에 이끼가 우거진 마당의 풍경을 바라봤다. 새가 한 마리 멀리 나무에 내려앉는 모습이 보였다. 지하에도 이런 풍경이 존재할 수 있다니. 이곳은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이지만, 지하의 인공 태양은 이곳까지 공평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조성한 토양 위에 나무와 풀이 자라고, 그 위를 야생 동물들이 뛰어다녔다. 이성(異性)이 아니라면 이곳을 지하라고 생각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 나무 위의 새는 자신이 천연의 풍경 속에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곳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편리란 얼마나 많은 것들, 얼마나 많은 가치들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가? 탱크가 하염없이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그에게 나쁜 소식을 하나 전해야만 했다.


- 우리가 놓친 게 있었던 것 같아. 이곳에도 감시 카메라가 있었겠지. 20명 정도 되는 병력이 이곳으로 오고 있어. 10분 안에 도착할 거야. 빨리 떠날 준비를 해야겠어.


그것은 루시가 내게 전달해 준 정보였다. 그 정보 안에는 챈들러 부통령이 스위트룸에서 각료들과 나눈 대화도 있었다. 인근에서 출발한 병력은 오리지널로만 이루어진 부대였다. 부통령 세력은 용케도 오리지널로 구성된 병력을 수소문해 빠르게 이곳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들이 탄 차륜형 장갑차는 혼잡이란 것이 없는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탱크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차에 태웠다. 차량은 완전히 충전이 되지는 않았으나 일주일 정도는 충분히 달릴 수 있는 전력을 저장하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이 폐가에 숨겨진 장비를 하나 작동시켰다. 그것은 전투형 안드로이드였다.


약 1년 전 즈음 이곳으로 이송된 안드로이드는 누군가의 정비를 주기적으로 받았는지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집 왼편의 창고 안에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의 데이터 전체를 그 안드로이드의 전자두뇌로 전송했다. 원격으로는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직접 조종을 해야 한다. 난 스스로 완전한 안드로이드가 되기로 결심했다.


지금 오는 스무 명의 병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총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 없는 오합지졸이다. 그들이 도착한 후 10분 안에 다섯 대의 안드로이드가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난 그들을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이 안드로이드 안에 있는 모든 기능을 사용해야 한다.


데이터 전송이 완료된 후, 나는 내 몸을 마당 한가운데로 이동시켰다. 진짜 몸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 그전에는 탱크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지만, 직접적으로 팔과 다리, 그리고 시선을 조종하니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어쩐지 나는 조금 신이 난 것도 같았다.


탱크가 허공을 보다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내쪽, 그러니까 안드로이드를 바라봤다.


“닉?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지?”


“나 여기 있어. 탱크.”


기계의 음성이 내 의사를 탱크에게 육성(?)으로 전달했다.


“너라고? 이게?”


탱크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제대로 싸워보려고 여기에 나를 업로드했어. 너는 어서 빨리 식구들을 데리고 저 터널을 빠져나가. 여기는 내가 막을 테니까.”


“아냐. 나도 여기서 같이 싸우는 게 낫지. 20명이면…….”


“그 뒤에 전투형 안드로이드가 증원될 거야. 지금 우리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 그러니까 빨리 가.”


“그럼 너는……?”


“난 괜찮아. 난 인공지능이잖아. 어디에든 있을 수 있어. 복제도 할 수 있고. 난 금방 너희들이 있는 곳으로 따라갈 테니까, 어디에 있든 금방 찾아갈 테니까, 너는 가족들 데리고 이곳을 떠나. 시간이 없어.”


멀리서 흙먼지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시간이 없었다. 머뭇대던 탱크는 식구들이 타고 있는 차량으로 달려갔다. 운전석에 앉은 그는 시동을 걸고, 커브를 틀어 터널 안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내쪽을 바라보는 민수와 마리의 얼굴이 트렁크의 뒷창문으로 슬며시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봐, 친구들. 내 역할은 이게 다야. 이것이 어머니가 내게 준 마지막 임무야. 우린 해야 할 일은 모두 했어. 그러니, 우리 여기서 이만 작별하기로 하자.


탱크. 너는 식구들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 그리고 멀리 가. 어디든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땅 위에 자리를 잡아. 그곳에서 농사를 짓든, 나무를 하든, 옷을 만들어 팔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 햇빛을 마음껏 받으며 살고, 네 아이들에게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만들어줘.


그게 내가 바라는 꿈이야. 그러니, 너는, 네 가족들은, 꼭 살아남아. 살아남아서, 내가 보고 싶던 세상을 살아가.




이상한 일이다. 나는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일 텐데, 이 생각을 하는 동안에는 뭔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안드로이드에게도 눈물이 있다면 이 순간 나도 코끝이 찡한 느낌이 들었을까? 안드로이드에게는 눈물 따위 없으므로, 나는 몸 안에 있는 모든 장비를 점검하고 어깨의 기관포에 탄약을 장전했다. 그리고 식구들이 탄 차량의 엔진음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리고 눈앞에 장갑차 3대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기관포 사격을 시작했다.


선두에 달리던 차량의 바퀴에 탄환이 적중하며, 장갑차는 양옆으로 크게 흔들렸다. 결국 균형을 잡지 못한 장갑차는 옆으로 뒹굴며 쓰러졌다. 뒤에 오던 장갑차가 넘어지는 차량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았다.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안드로이드 부대가 오기 전에 성가신 것들을 모두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 차량은 충돌 전에 자리에서 멈춰 섰고, 그 안에 든 병력들은 빠르게 하차했다. 하지만 몇몇 병사는 총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다. 아마도 오리지널 지휘관일 것이 분명한 한 병사는 방아쇠를 당겨도 총이 나가지 앉자, 총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옆 병사를 맞춰버렸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안드로이드에 당황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시 장갑차 안으로 도망가는 이들도 보였다. 선두 장갑차와 추돌한 장갑차 안에서 비틀거리며 병력들이 서너 명 나왔으나, 그들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코웃음이 났다. 안드로이드는 코가 없어서 그것을 표현할 길이 없었으나, 이 녀석들은 상대할 가치도, 죽일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이곳에 안드로이드가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혼란스러운 도로 위에 잠시 서있는 동안, 멀리 도로 위로 트럭 한 대가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트럭에는 다섯 대의 안드로이드가 실려 있다. 나는 등뒤로 소형 미사일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트럭의 바퀴를 조준했다. 슈욱, 하는 소리가 나며 미사일이 날아갔고 트럭은 큰 폭발과 함께 옆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뒤에 실려있던 안드로이드들이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살인귀들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를 식별하고는 곧바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것이 내 마지막 기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어디에도 나의 데이터를 업로드해두지 않았다. 이 안드로이드 안에 있는 데이터가 유일한 원본이다. 이 안드로이드가 파괴된다면, 곧 나 자신도 파괴될 것이다.


판타지 속 스켈레톤(skeleton) 같은 모습을 한 은빛의 해골 녀석 하나가 내게 주먹을 날리지만, 나는 그것을 피하며 왼손으로 그 녀석의 얼굴을 후려쳤다. 제대로 들어갔다. 하지만 곧바로 내 오른쪽에 있던 녀석이 내 머리를 강타한다. 몸이 비틀거리는 순간, 나는 등뒤의 기관포를 그 녀석에게 갈긴다. 철갑탄의 소낙비를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녀석도 몸을 비틀거린다. 하지만 녀석은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도 계속 움직였다. 두뇌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상된 시야는 다른 센서로 대체할 것이다. 다리 쪽에서 둔탁한 진동이 있었다. 어? 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시스템을 점검해 보니 왼쪽 다리에 상당한 손상이 있었다. 완전히 파손된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기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쓰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눈앞에 보이는 녀석들을 계속 후려치려 시도했다. 사실 내가 무엇을 때리고 있는지도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느새 안면의 시각 센서에 큰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잘 보이지 않았으나 가끔은 손에서 둔탁한 충격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무엇인가를 쉴 새 없이 때리고 있었던 것이다.


5분? 아니면 10분? 다섯 대의 안드로이드 중 한 대는 파손되었고, 나머지 네 대가 계속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대체 센서로 상황을 판단해 보건대, 나는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두부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적의 안드로이드는 엎어진 내 신체의 머리를 끝없이 내려치고 있었다. 그것은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젠 정말 마지막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터널 입구 쪽을 볼 수 있는 카메라 하나를 잡아냈다. 탱크의 가족이 탄 차가 떠난 후, 터널 입구는 자동으로 닫히기 시작했고, 지금은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처럼 굳게 닫혀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가족들은 터널을 빠져나가 반대편 출구를 통해 지상으로 나갔을 것이다. 그것은 긴 통로였으나 길을 계속 달리면 서서히 고도가 상승해 지상까지 닿을 수 있는 길이었다. 아무리 안드로이드라고 해도 저 터널 입구를 파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곳은 허락을 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고, 루시는 탱크가 이곳을 떠나도록 허락했다.


그러니, 이젠 안심할 수 있다. 어머니가 내게 준 마지막 사명을 이렇게 완수했다. 이제 나는……. 여기서……. 내 마지막……. 기록……. 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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