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소식을 접한 부통령 마이크 챈들러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안 그래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던 그는 드디어 대통령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피습을 당하고 서둘로 백악관으로 향했던 그는 대통령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외부 일정을 위해 백악관을 떠난 상태였다. 원래라면 지상의 공항으로 가서 항공기를 타고 남미로 향했겠지만, 그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호텔에 계속 머물렀다. 대통령의 담화를 들은 몇몇 각료와 정치인들이 호텔로 찾아왔다. 그중에는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그리고 합참차장 고든 장군도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부통령은 보안 프로토콜 같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온 국방부 장관에게 물었다. 그곳에 있는 접객용 안드로이드를 통해 루시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아니 신경 쓰지도 못한 채 그들은 대화에 열중했다.
국방부 장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뒤에 있던 합참의장이 뚱뚱한 몸을 흔들며 앞으로 나왔다.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사실, 오늘 담화를 발표한 자는 페머트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흰색 머리를 오른손으로 쓰다듬으며 부통령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깊게 파인 그의 두 눈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오늘 아침 그 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의 클론입니다.”
“그러면 대통령은 어디에 있습니까? 병원에요?”
“대통령은……. 이미 장례가 끝나, 백악관 지하 시설에 수용되었습니다.”
“죽었다고요?”
부통령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호텔 스위트룸의 천장을 바라봤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있습니까? 원래대로라면 부통령인 내가 대통령직을 승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질문에 국방부 장관이 대답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최근에는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입니다. 대통령들이 모두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서, 유고시에는 클론이 대행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뒀다고 합니다. 페머트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아무래도 인간이란 자기랑 가까운 사람에게 권력을 넘기고 싶어 하니까…….”
챈들러 부통령은 갑작스레 의자에서 일어나 방 안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무리의 남자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니까……! 그토록 중대한 일을 고작 클론 하나가 결정해서 처리했다는 말입니까? 정당한 권력 승계자인 나를 건너뛰고?”
민간인 차림의 국방부 장관과 제복 차림의 군인들 모두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여기 있는 각료들 모두 반란에 참여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반헌법적인 일에 동참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거죠?”
부통령의 말에 합참의장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희도 클론이 저런 일을 벌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일단 이번 공세까지만 진행이 되면, 그다음은 순리에 맞게 진행을 하려고…….”
그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의 항변은 부통령에게 가로막혔다.
“됐습니다. 일단 상황을 수습해야지요. 대통령이 죽었다는 것, 지금 백악관에 있는 자가 클론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부통령의 질문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 대통령 앞에서 자기 의견을 제대로 밝힌 적이 없는 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드러내며 스위트룸에 모인 각료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때 합참의장이 고든 장군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친구는 안 왔나? 어제 마지막으로 클론을 봤던 사람. 프랭크라고 했나?”
고든이 대답했다.
“네. 연락을 넣었으나 불통입니다.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데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의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부통령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고든 장군이 대답했다.
“이번 공세 작전을 담당하던 소령입니다.”
“그 사람이 어제 대통령, 아니 그 클론 녀석을 마지막으로 봤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을 어떻게든 이곳으로 데려다 놓으세요. 그리고 일단, 저는 여기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해야겠습니다.”
스위트룸에 모여있던, 열 명가량의 각료와 정치인들은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뭘 그렇게 놀랍니까? 클론 따위에게 어떻게 대통령직을 맡길 수 있습니까?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소심하던 부통령이 그처럼 완강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국민들이 믿어줄까요? 그리고 군부대나 경찰 지휘관들은 모두 클론인데, 그들이 우리 편을 들어주겠습니까? 더구나 백악관은 루시가 움직이는 안드로이드에 의해 장악되었습니다. 그 안에 있던 오리지널은 모두 포로로 잡혀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럼 이대로 두고 있습니까? 일단 취임 선서를 하고, 대통령 권한으로 군부대를 소집할 겁니다. 센트럴 로봇 CEO와는 통화가 되었습니까?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는 얼마나 있죠?”
그의 질문에 뒤편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비서실장이 대답했다.
“방금 통화를 했는데 100대 정도 확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물량은 모두 군부대와 백악관에 있다고 합니다.”
방 안에는 긴 탄식이 이어졌다. 챈들러 부통령 역시 얼굴을 찌푸렸다. 부통령은 취임 선서를 주장했고 결국 사람들은 그 말에 동의했다. 그들은 취임 선서 이후 의회를 소집하고, 군부대에 앞으로는 챈들러의 지휘에 따르라는 명령을 내리기로 하였다.
부통령 일행은 아무 성경이나 구해와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기로 했다. 구약과 신약이 함께 들어있는 성경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죽 양장본이었다. 비서실장이 성경을 들고 있자, 부통령은 그 위에 손을 얹고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보통은 오래된, 전통 있는 성경을 이용했으나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부통령은 취임 선서를 마친 후, 곧바로 호텔의 연회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연회장에 자리를 잡고, 또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품은 부유한 시민들도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부통령이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그는 연회장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손에 준비해 온 원고를 들고,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어제 나는 믿을 수 없는 비보를 접하였습니다. 어제의 습격으로 인해 페머트 앤더슨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부패한 현재의 시스템은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오리지널이 아닌, 그러기에 시민도 아닌, 일개 클론에게 대통령직을 승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국민 여러분도 모두 보았다시피, 그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러버렸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일을 해버렸습니다. 방금 나는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미국의 제76대 대통령으로서 업무를 시작합니다. 모든 군부대의 지휘관들에게 명령합니다. 이제부터는 내 명령에 따르도록 하십시오. 백악관을 점령하고 있는 가짜의 명령은 단호하게 거부하십시오. 마찬가지로 나는 정당한 권력 승계자로서 중앙 인공지능 루시에게 명합니다. 당장 백악관의 포위를 풀고 그 가짜 녀석을 체포해 내 앞에 데려다 놓으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국의 클론들에게 명합니다. 동요를 멈추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원래의 임무를 수행하시오. 그것이 그대들이 존재하는 이유이니, 그대들은 신이 내려준 의무를 완수하도록 노력하시오. 국민 여러분, 참담한 밤이 지나고 새로운 아침이 밝았습니다. 나는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이 혼란을 종식시키고, 이전의 시스템을 되돌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런 권한도, 어떤 적법한 절차도 없이 나타난 가짜를 끌어내리고, 국민 여러분의 온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God bles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기자회견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 모든 변화와 정보가 감당이 되지 않았다. 어느 기자가 손을 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공지능의 반란입니까?”
또 다른 기자가 답을 들을 새도 없이 질문을 했다.
“페머트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방금 들어온 정보인데, 워싱턴에 주둔한 사단의 모든 지휘관들이 대통령, 그러니까 백악관의 명령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지금 부통령님, 아니 대통령님? 대통령님의 명령을 따를 것이라고 봅니까? 그들 전부가 클론인데요?”
진행자는 한 사람씩 질문을 해달라고 했으나 기자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쌓여있는 질문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그 사이 백악관에서는 클론 대변인이 부통령의 말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란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부통령은 결국 통제되지 않는 기자회견을 뒤로하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챈들러 부통령은 밖으로 나가며 그의 뒤를 따르던 국방부 장관에게 물었다.
“군부대가 정말 그 가짜 녀석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했단 말이오?”
국방부 장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바깥 상황은 어떻습니까?”
“일단 군부대는 통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찰도 상황을 수습하고 시내 질서 유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부통령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아직 시내 곳곳에 약간의 소란이 있기는 합니다만…….”
국방부 장관은 확신 없는 목소리로 말을 하다가 말았다.
부통령은 국방부 장관 옆에 있던 합참의장에게 물었다.
“그 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클론과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다는 남자.”
고든 장군이 대신 대답했다.
“지금 W섹터에서 그가 운전하는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부대를 보내 데려오려고 합니다. 모두 오리지널로 구성된 특수부대입니다.”
“오리지널? 그들이 총이나 쏠 줄 압니까? 센트럴 로봇에 연락해서 안드로이드 몇 대를 그쪽으로 보내달라고 하세요.”
“어차피 저항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고든 장군의 말을 반박하며 부통령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사람이 왜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나요? 그 자가 지금 이 사태에 연루된 것 아닙니까?”
장군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부통령이 그의 옆을 따르던 아만다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지금 바로 센트럴 로봇에 연락하세요. 안드로이드 다섯 대를 W섹터 쪽으로 보내달라고. 정확한 위치는 고든 장군이 알려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부통령은 자신의 스위트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