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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Nov 14. 2024

챕터 64 - MoBH

평소와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로 회의가 진행된다. 물론 루시와 키온, 세라는 거실 소파에 앉아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고 루시 혼자 처리하다니……. 조금 난감하네. 왜 이야기하지 않은 거지?


꼬마 키온이 맞은편에 앉은 루시에게 물었다.


- 나도 확신이 없었어. 그리고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비밀은 새어나가기 마련이니까. 내가 만든 계획이지만, 나는 그것을 만들자마자 내 스토리지에서 지우고, 단 하나의 인공지능 안에 담아뒀어. 나 자신도 몰라야 하는 계획이었으니까.


- 나도 좀 서운하지만, 루시의 의견이 합리적이라는 데는 동의할 수밖에 없어.


세라가 곰인형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말했다.


- 그런데, 대통령을 암살한다는 건, 인공지능의 제약상 불가능한 일 아니었어? 우린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잖아?


키온의 질문에 루시가 답했다.


- 직접 위해를 가할 수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류 전체를 위해서는 득이 된다고 판단되면 간접적인 수단으로는 실행이 가능한 것 같아.


- 그렇다면 이 계획이 인류 전체에게는 득이 된다는 것일까?


루시의 말에 세라는 곰인형의 낡은 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 난 아직도 이 계획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뒤에 어떤 혼란이 올지, 나조차도 계산하기가 어려워.


세라의 두려움 섞인 말에 키온이 반박했다.


-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내 계산에 따르면 혼란이 길지는 않을 거야. 내전이 일어난다고 해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수습될 거야. 내 시뮬레이션 결과로는 그래.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고, 체제를 바꿀 수는 없어. 너도 꼬마애 모습이긴 해도,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잖아?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세라는 키온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루시는 안건을 회의에 올리기로 한다.


- MoBH에 대한 인공지능 의결. 루시 찬성.


키온도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 나도 찬성.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젠 진행할 수밖에.


2:1로 안건이 통과되겠지만 루시는 세라의 답을 기다렸다. 한참 몸을 웅크리고 생각에 잠겨 있던 세라는 고개를 들고 루시를 보며 말했다.


- 그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키온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내 계산으로도 이것이 최선이야.


결국 3:0으로 모든 인공지능이 계획에 찬성했다. 대통령의 권한을 승계한 E037의 제안이었으므로, 계획은 즉각 실행될 것이다.


이 결론에 이르는 데 걸린 시간은 0.03밀리세컨드. 그 사이 세 양자 인공지능은 엄청난 계산을 해치웠고, 현재로서 대통령이 제안한 계획(사실은 루시가 입안한 계획)이 최선임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세상의 배꼽, 즉 옴파로스(Omphalos)라 불리는 중앙 서버실에서 E037은 루시에게 제안을 하자마자 즉답을 받았다. “MoBH 계획을 인가하려고 합니다.” 그가 뱉은 말은 한 문장이었으나, 그것은 세상의 뿌리를 뒤흔드는 것이었다. 부드러운 여성의 음성이 E037의 귓가에 들렸다.


“루시, 세라, 키온은 MoBH 계획 실행에 만장일치로 동의하였습니다. 권한자인 페머트 대통령에게 묻겠습니다. 정말로 계획을 실행하겠습니까?”


E037은 크게 호흡을 한 뒤 대답했다.


“네. 저는 모든 계획을 다 검토했고,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인류의 보존을 위한 계획 MoBH, 모 베터 휴먼(Mo' Better Human) 계획을 실행하겠습니다.”


루시의 음성이 끝나자, 옴파로스를 보호하는 전투형 안드로이드들이 작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백악관 영내에 보관된 전투형 안드로이드들 역시 잠에서 깨어나, 백악관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로 향했다.


백악관 경호실에 있던 클론 경호원들과 그들을 지휘하는 오리지널 경호원들은 안드로이드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갑자기 저것들이 왜 움직이는 거지? 저것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이지?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안드로이드들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백악관을 둘러쌌다.


중앙 서버실로 향하는 길목, 백악관 내부에 있는 방어 시설, 관제 시설 등을 루시의 관할하에 있는 안드로이드가 모두 점령했다. 백악관 경호원과 경비들은 자기 옆에 서 있는 안드로이드들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으나, 그들은 그런 변화에 금방 적응하고 다시 자신의 책무를 다했다. 십 분도 지나기 전에, 천 기가 넘는 안드로이드들이 백악관을 점령했다. 그 많은 기계들이 그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만큼, 기계들은 백악관을 쥐 한 마리 통과하지 못할 만큼 철통같이 둘러쌌다.


그리고 계획이 실행되었다.


1. 각자의 거주지에 있는 클론들에게는 자신의 휴게 공간으로 돌아가, 정기적으로 투입받는 알약을 먹도록 명령이 내려졌다. 또한 근무 중인 클론들은 교대 시간에 알약을 투약하도록 했다. 전국의 클론들은 명령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클론들은 정서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알약을 처방받는데, 이번에 그들이 받을 알약은 평소와 조금 다른 것이다.


2. 어떤 호르몬 물질이 채워진 화학탄이 극동 지역의 대중국 전선 주둔군으로 전달될 것이다. 이것은 알래스카 지상의 공군 기지에서 반출되어 항공기로 극동 지역까지 운송된다.


3. 어떤 호르몬에 대한 설계도가 즉각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에 배포된다. 이것은 지금까지 기밀로 취급되던 정보였다. 이제 누구나 손쉽게 이 호르몬을 합성할 수 있을 것이다.


백악관은 한밤 중이었다. 영내에 남아있는 이들도 안드로이드들의 갑작스러운 이동에 놀라기는 했지만, 경계가 강화된 것이라 여기며 안심했고, 숙직을 서는 오리지널들은 여느 때처럼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조용하게 중대한 계획이 실행되던 밤.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듯 조용했고, 대통령 피습 사건의 흥분도 벌써 잊힌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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