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타는 거 아니고 한라산 보며 걷기
지금 제주는 공식적으로다가 남의 밭에 떨궈놓은 농작물들을 주워 담아 내 집에 가져올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아이들 셋을 데리고 시간 날 때마다 제주에서 한달살기를 하던 친구가 이 시기에 꼭 해보라고 두고두고 하던 이야기를 마침내 몸소 체험하게 된 것이다!
요리에 취미가 없어서인지 그녀가 코치해준 대로 차에 실어 나르는 열정이 모지라 반려견 산이와 설렁설렁 걷다가 밭에 무나 당근이 팽개쳐져 있으면 하나씩 줍는 게 고작이었는데 ‘하나 더 주워올걸 그랬나?’ 아쉬울 즈음되면 옆집에서 꼭 더 챙겨주었다. 제주에 텃세가 심하다 해도 이런 것을 보면 또 딱히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마당 곁을 지나다가 우리 집 개가 갑자기 왕왕 짖어도 그러려니 무심히 지나는 사람들만 해도 그렇고(큰 개 키우는 죄인;;;) 어쩌다 ‘아직 애기구만’ 하며 당신이 당장 줄 간식이 없다고 미안해하는 때는 상당히 감동적. 바닷가 마을보다 중산간 마을 인심이 좀 더 여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지?! 종전에 바닷가 마을에 살 때 동네 할머니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어 새가슴이 된 큰 개 주인이다.
좌우간에, 조천읍에 이사 와서 3주 차다. 이 집에서도 가구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카펫을 이리 두고 저리 두는 나를 보고 7살짜리가 레고 갖고 노는 것 같다며 은근슬쩍 디스 하는 신랑과 또 시작이냐는 산이의 표정이 한 데 모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시간들’이 되었다. 누가 뭐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시간들이 얼마나 대단한 행복인지!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게 사치라고 윤여정 씨가 그랬단다. 반드시 한라산을 타고 떠나야 하는 분주한 여행자가 아니라 한라산을 보며 느리게 걸어도 되는 제주도민이라 괜찮다. 보통의 제주를 마음껏 사치 부려도 아무 걱정 없는 이 시간들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