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에 뭐가 있어요?
어디에 살아요? 하고 물어보면 힘주어 ’구좌읍이요,‘했다가 ’그 먼 데서 여기까지 왔어요?‘ 하는데 나름 city girl 이 한순간 시골쥐가 되었다. 가끔씩 서귀포나 제주서쪽으로 데이트립을 가보면 이런류의 대화가 잦았다. 그들에게 제주 동쪽은 촌구석이지만 사실 육지사람들 눈에는 거기가 거긴데… 그렇담, 나는동쪽 제주가 왜 더 좋은건데!?
제주 동쪽이 좋아 일 년 살기가 끝나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옆동네 조천읍에서 두 번째 살림을 시작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근처 신흥해수욕장에 나갔다가나와 같이 동쪽을 찬양하는 어느 가족을 만나 ‘저도요, 저도요’를 백만 번 외쳤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한적한 걸 찾아 제주에 왔다는 공통분모가 꼭 있다. 나는 젊은 엄마를 잃고 속 시끄러운 서울에 살다가 반려견, 산이에게 집착하며 마당 있는 집을 찾아주겠다고 고심 끝에 제주에 왔다.
처음에는 함덕에서 김녕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동복리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살았다. 친구 하나가 아들딸들을 데리고 종종 한달살이 하던 동네가 그 근방이라 낯설지 않았고 제주스러운 걸 다 가진 곳이라 한눈에 반했다. 푸른 바다와 야자나무가 턱 하니 베드룸 창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편의점까지 걷는 길에는 빨갛고 파란 지붕의 제주집들이 짙은 돌담에 둘러싸여 그야말로 옹기종기 행복하게 모여 사는 것 처럼 보였다. 산책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는 날이 일상이 되면서 나는 동쪽 제주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동쪽에는 진짜 뭐가 없는 것만 같다. 서귀포에 가면 신라호텔도 있고 국제학교도 있다. 국제학교 인근을달리다 보면 흡사 이곳이 판교 어디 즈음인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잘 다듬어진 도로와 높은 현대식 건물이 꽤 많다. 인스타그램에서 이 카페 좀 괜찮네? 싶어 구글 해보면 대다수가 서쪽이다. 그래서인지 한 번씩 서쪽에 놀러 가면 사람들이 그리도 많다. 주차장에 차들이 차고 넘친다. 마흔이 훌쩍 넘은 우리 부부는 도착지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이미 피로감이 든다. 그래서인지 전원에 도착했을 때 코 끝으로 훅 들어오는 그 어떤 공기가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 동쪽에는 대신, 온갖 나무들을 모아둔 비자림이 있고 온갖 돌들을 모아놓은 돌문화공원이 있다. 우리 집에서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딱 세 가지; 치킨, 짜장면 그리고 로컬 버거뿐이다. 사람들과 차들이 도로 하나를 같이 나눠 써도 신경질이 나지 않는 곳, 그게 제주 동쪽이다. 중문단지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제주의 자연경관이 아니어도 좋고 서쪽에 많이들 자리 잡고 있는 힙하고 유명한 카페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아집으로 제주 동쪽에 산다. 나중에 서쪽이나 서귀포를 칭송하는 글을 쓰더라도 지금은 동쪽이다. 어디에 살아요? 하고 물어보면 (요즘말로 #무족권) 힘주어 말한다. 동쪽에 살아요.
찐 제주는 동쪽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