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ry Nilsson
Without You
Harry Nilsson
안돼, 이 밤을 잊을 수 없어
떠나던 네 얼굴도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겠지
넌 항상 웃고 있어,
하지만 눈에는 슬픔이 담겨있지
그래, 그게 보여
안돼, 내일을 잊을 수 없어
내 모든 슬픔을
널 보내던 그 순간을 생각한다면
이제 네가 알아야 할걸
알려주려고 해
난 살 수 없어
너 없는 삶이라면
난 살 수 없어
더 이상 줄 수도 없지
난 살 수 없어
너 없는 삶이라면
난 줄 수 없어
더 이상 줄수도 없지
그래, 이 밤을 잊을 수 없지
떠나가던 네 얼굴도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겠지
넌 항상 웃고 있어,
하지만 눈에는 슬픔이 담겨있지
그래, 그게 보여
난 살 수 없어
너 없는 삶이라면
난 살 수 없어
더 이상 줄 수도 없지
난 살 수 없어
너 없는 삶이라면
난 줄 수 없어
더 이상 줄수도 없지
안돼, 안돼, 안돼, 안돼, 난 못살아
(안돼, 살 수 없어)
너 없는 삶이라면
(안돼, 난 살 수 없어)
난 살 수 없어
더 이상 줄 수도 없지
살 수 없어
(안돼, 살 수 없어)
(안돼, 난 살 수 없어)
Harry Nilsson
No, I can't forget this evening
Or your face as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 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r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No, I can't forget tomorrow
When I think of all my sorrow
When I had you there but then I let you go
And now it's only fair that I should let you know
What you should know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give
I can't give anymore
Well, I can't forget this evening
Or your face as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 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r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No, no, no, no, I can't live
(No,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no, I can't live)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Can't live
(no, can't live)
(No, I can't live)
https://youtu.be/G-ZDKirjQgM?si=HOg8W25F5LjhBfo9
해리 닐슨(Harry Nilsson)의 "Without You".
이 아름다운 멜로디 뒤에 음악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이 곡을 처음 만든 건 1970년대에 활동한 영국의 록 그룹 배드 핑거(Badfinger)였어요. 보컬을 담당하던 피트 햄(Pete Ham)과 톰 에반스(Tom Evans)가 작곡한 이 곡은 1970년 그들의 앨범 'No Dice'에 수록되었지만, 그냥 앨범 마지막에 존재감 없이 던져진 곡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러던 1971년, 미국의 가수 해리 닐슨(Harry Nilsson)은 파티에서 카드 게임을 하다가 우연히 배드 핑거의 이 곡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비틀스의 숨겨진 곡이라고 생각했죠.
다음 날 닐슨은 친구의 바이닐 컬렉션을 뒤지며 "어젯밤에 들었던 그 레논(Lennon)의 곡"을 찾았지만 비틀스 앨범에서는 그 곡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배드 핑거(Badfinger)의 피트 햄(Pete Ham)과 톰 에반스(Tom Evans)의 곡임을 깨닫게 됩니다.
닐슨은 당시 비틀스의 홍보 담당이었던 데릭 테일러(Derek Taylor)에게 데모를 보냈고, 프로듀서 리처드 페리(Richard Perry)가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웅장하고 극적인 몬스터 발라드로 만들도록 제안하면서, 배드 핑거의 곡은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이 곡으로 재탄생됩니다.
여담으로 해리 닐슨의 녹음 과정은 고통 그 자체였다고 해요. 닐슨이 최고음을 표현하던 중 끔찍한 치질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릭 테일러는 이후 이 곡을 들을 때마다 항상 그의 치질을 떠올렸다고...
1971년 가을 RCA레코드에서 발매된 이 곡은 1971년 12월 18일 빌보드 핫 100, 99위로 데뷔했고, 1972년 2월 19일부터 4주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닐슨의 유일한 1위 곡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5주간 1위를 차지하며 80만 장 가까이 팔렸어요.
닐슨이 이 곡의 녹음을 마치고 배드 핑거(Badfinger)를 초대해 자신의 버전을 들려줬을 때를 피트 햄은 이렇게 회상했어요.
"듣자마자 우리가 원했던 방식이었지만 감히 못했던 것임을 알았습니다."
거기에 톰 에반스가 덧붙였죠.
"닐슨의 버전은 프로덕션과 훌륭한 가수로 곡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1972년, 작곡가 피트 햄과 톰 에반스는 이 곡으로 브리티쉬 아카데미(British Academy)의 아이보 노벨로 상(Ivor Novello Award for Best Song Musically and Lyrically)을 받았고, 폴 메카트니(Paul McCartney)는 이 곡을 "역사적인 킬러 곡"이라고 치켜세웠죠.
배드 핑거는 성공했어요. 세상은 그들의 음악적 재능에 열광했죠. 하지만 세상에서 이룬 성공이 항상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1970년 11월 배드 핑거(Badfinger)는 스탠 폴리(Stan Polley)와 매니저 계약을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불행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스탠 폴리가 배드 핑거 엔터프라이즈(Badfinger Enterprises Inc.)라는 회사를 만들고 여러 페이퍼 컴퍼니와 사설 법인을 통해서 밴드의 재산을 빼돌렸거든요. 폴리의 회계사가 작성한 1970년 12월 8일부터 1971년 10월 31일까지의 재무제표를 보면 다음과 같아요.
"고객에게 지급된 급여와 선금 - 조이 몰랜드(Joey Molland) $8,339, 마이크 기빈스(Mike Gibbins) $6,861, 톰 에반스(Tom Evans) $6,211, 피트 햄(Pete Ham) $5,959. 순 법인 이익 $24,569. 스탠 폴리(Stan Polley) 경영 수수료 $75,744"
스탠 폴리가 밴드 멤버들 전체가 받은 금액보다도 더 많은 돈을 가져간 겁니다.
1975년 4월 23일 밤, 피트 햄(Pete Ham)은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모든 돈이 사라졌다는 내용이었죠. 그날 밤늦게 그는 톰 에반스를 만나 펍(Pub)에 갔고, 위스키 10잔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피트 햄은 자택 차고 스튜디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28번째 생일을 불과 3일 앞둔 때였죠.
그의 유서에는 스탠 폴리를 비난하는 내용이 가득했어요.
"나에게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그래서 이 길이 더 나아. 스탠 폴리는 영혼 없는 개자식. 나는 그를 데리고 갈 거야."
.
그의 죽음 한 달 후 그의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후 톰 에반스(Tom Evans)는 피트 햄의 죽음에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1983년 미국 투어 계약을 파기한 것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고, "Without You" 저작권을 두고 멤버 간 법적 분쟁도 있었어요.
그리고 결국 1983년 11월 18일 그도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유서는 없었지만,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어요.
"토미(톰 에반스)는 피트 햄이 있는 곳에 가고 싶다고 했어요. 여기보다 더 나은 곳이라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톰 에반스는 사실상 무일푼이었지만, 애플(Apple)에 동결되어 있는 백만 달러 이상의 출판 로열티가 남아 있었어요. 배드 핑거의 복잡한 법적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1994년 1월 15일, 해리 닐슨이 5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심장마비였죠.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1994년 1월 21일,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Without You" 버전이 미국에서 발매되어요.
캐리는 말했어요.
"어렸을 때 이 곡을 정말 사랑했고, 이 곡이 항상 나를 울게 만들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캐리의 버전은 영국에서 4주간 1위를 차지했고, 영국에서 7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3위까지 올라가 6주간 머물렀죠.
머라이어 캐리는 X(트위터)에 이렇게 적었어요.
"피트와 햄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