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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story Aug 20. 2022

때로는 비겁하게

그저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더 이상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의 갑갑함을 벗어버리고 싶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기대한 바를 충족시키며 지내 온 시간 동안 과연 나라는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일까. 경험과 사유가 부족했던 탓에 나를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타인의 뜻으로 이루어진 공간과 제도를 벗어나는 것에서부터가 시작이라 생각했고 이러한 생각을 옹호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현실에서의 비상식적인 충돌이 잦아질수록 커져만 갔다. 무기력을 넘어 무료함이 하루를 채워가던 어느 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 일을 하면서 살고 있으며
이것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누군가에게 비겁해 보일 수 있는 나의 삶은 진짜 나의 것이었다. 흰머리가 늘어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숨 죽이며 분주한 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 괜찮은 삶이란 조직에서 요구하는대로 정형화된 응수법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내는 데에 방점이 있다. 그렇게 교육받았기에, 우리는 교육의 무게에 늘 짓눌려 왔기에 그 공식을 벗어난 순간 내가 경험해야 했던 것은 타인의 질타였고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것이었다. 적응에 성공한 소수는 가급적 다수가 운집한 곳에서 오피니언 리더가 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의 표본이라 여기게 되었고 간혹 그 굴레를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며 성공의 흔적을 남기는 이들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고 모두가 그런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무의식을 통제했다.



 나를 찾아가는 시간의 누적을 한심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던 이들의 시선조차 가엽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인격적으로 어제보다 성숙해지려 하는 나를 조금씩이나마 알아챌 수 있었다. 불안함이 사라졌다는 사실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오직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삶을 살아가려 하는 이에게는 용기의 근원이 되었다.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고 숙고가 선행된다. 그 과정에서 여러 대안들을 따져가다 보면 예상 가능한 리스크와 통제권을 벗어난 리스크를 확인하게 되고 그것에 집중할수록 내가 가진 두려움의 크기는 무한대로 커질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걱정에 가득한 채로 24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오늘은 없다. 유독 이들은 과거를 곱씹어가며 후회하고 오늘은 내일 걱정에 갇혀 전전긍긍한다. 내일은 또 그다음 날을 걱정하게 될 것이다. 자력으로 해결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걱정에 집착한다.



 두 손 가득 쥐고 있으면서, 그것을 내려놓을 용기 또한 없으면서 우리는 새로운 것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은 끊임없이 하고 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 마저 잃게 될 것이라는 불안은 순응의 행보를 지지하고 스스로에게 씁쓸한 위로를 던지게 한다.

많은 이들이 타인의 시선 끝에 서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남은 자신의 삶 속에서 마주할 연의 끈 조차도 없는 이들의 시선 안에 머문다. 그런

이들에게 비겁해질 수 없기에 스스로에게 비겁한 삶을 산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우리는. 매순간 워라밸을 중요시 할만큼 스스로의 삶에 애착이 있는 이들은 오늘도 타인에게 비겁해지지 않으려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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