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엽편소설
숲 속 깊은 곳, 물이 맑은 계곡 옆에는 작은 사슴이 살고 있었어요. 작은 사슴은 아주 특별한 사슴이었어요. 왜냐하면 사슴은 숲 속의 다른 사슴 친구들과는 다르게 온 몸이 흰색이었거든요. 흰 사슴은 정말 아름다웠지만, 숲 속에는 사슴을 노리는 호랑이가 살고 있었어요. 배가 고픈 호랑이는 눈에 잘 보이는 흰 사슴을 쫓았고, 흰 사슴은 매일 도망쳤어요. 달려도 달려도, 초록색과 고동색의 숲에서 흰 사슴은 너무 잘 보였답니다. 흰 사슴을 불쌍히 여긴 다람쥐와 토끼 친구들이 나무굴에 흰 사슴을 숨겨주었고, 흰 사슴은 겨우 호랑이를 피할 수 있었어요.
사슴은 어느날, 매일 배고픈 호랑이를 피해 도망치는 게 힘들어졌어요. 사슴은 숲 속에서 제일 현명한 부엉이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말했어요.
“부엉이 할아버지, 다른 친구들은 모두 잘 숨을 수 있는데, 저는 흰색이라 숲 속에 숨기가 너무 힘들어요.”
부엉이 할아버지는 흰 사슴을 천천히 쳐다보면서 말했어요.
“그건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이 숲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작은 사슴아.”
흰 사슴은 깜짝 놀라서 말했어요.
“저는 이 숲에서만 살아왔는걸요? 그럼 저는 어디에 있어야 하나요?”
부엉이 할아버지는 다시 말했어요.
“너는 눈의 나라에 있어야 하는 사슴이란다. 그 곳의 동물 친구들은 너처럼 흰색이거든.”
사슴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눈을 빛내며 말했어요.
“할아버지, 저도 눈의 나라로 가고 싶어요.”
부엉이 할아버지는 흰 사슴에게 냇가 아래에 사는 오리를 찾아가라고 말해줬어요. 흰 사슴은 살금살금 냇가의 오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어요.
“오리야, 안녕.”
오리는 깜짝 놀라 날개를 푸드덕 거렸어요.
“아이, 깜짝이야. 너는 누구니?”
“오리야, 나는 숲 속에 사는 흰 사슴이야. 부엉이 할아버지가 너에게 가면 눈의 나라로 갈 수 있다고 하셨어.”
오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어요.
“흰 사슴아, 눈의 나라로 가려면 내가 아니라 내 사촌인 청둥오리들을 따라가야 해. 나는 가본 적이 없지만, 청둥오리 누나들은 엄청나게 멀리멀리 날아다녀. 정말 네가 같이 갈 수 있을까?”
“응, 나는 꼭 눈의 나라로 가고 싶어. 거기엔 나처럼 하얀 친구들이 많이 산대.”
오리는 큰 소리로 청둥오리 사촌들을 불렀어요. 청둥오리 사촌들은 흰 사슴의 이야기를 듣고 기러기 친구들을 불러, 함께 눈의 나라로 떠나기로 했어요.
기러기, 청둥오리와 함께 눈의 나라로 가는 것은 흰 사슴에게 엄청난 모험이었어요. 흰 사슴은 날개가 없어서 날아가는 친구들을 열심히 보면서 달려야 했지요. 숲 속처럼 호랑이는 없었지만, 사슴은 처음 보는 커다란 것들이 보이면 열심히 숨고, 또 열심히 달려야 했습니다. 흰 사슴은 기러기와 청둥오리 친구들이 휴식을 취할 때면 조금씩 다가가 물을 마시고, 함께 쉬었습니다. 함께 있을 때에는 친구들이 날개를 모아 작은 사슴을 숨겨주었지만, 친구들이 날기 시작하면 사슴도 열심히 뛰어야 했지요. 흰 사슴은 가끔 호랑이를 피해 함께 뛰었던 사슴 동생들이 그리웠습니다. 동생들은 흰 사슴이 눈의 나라로 가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했지만, 그래도 흰 사슴은 눈의 나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눈의 나라에서 흰 사슴은 숲보다 숨을 곳도, 놀 수 있는 곳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리가 아프고, 발바닥에 상처가 나도 흰 사슴은 꾹 참고 열심히 기러기와 청둥오리들을 따라갔어요.
흰 사슴의 모험이 계속되면서, 얼음과 차가운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계속 달릴수록 피해야 하는 무서운 존재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공기가 차가워졌지만 흰 사슴은 춥지 않았어요. 마침내 하얗게 뒤덮인 땅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을 때, 함께 날아왔던 기러기와 청둥오리 친구들이 작은 사슴에게 다가와 말했어요.
“여기서 헤어져야 해. 우린 눈의 나라까지 날아갈 수 없어. 이제부터는 혼자서 눈을 감고 눈의 나라까지 달려야 해. 누가 불러도 끝까지 달려가야 해.”
작은 사슴은 말했어요.
“눈을 감아야 한다고? 눈을 감으면 눈의 나라에 도착한 것을 어떻게 알아?”
청둥오리 대장이 대답했어요.
“눈의 나라에서 소풍을 나온 흰 여우 친구가 말해줬는데, 눈을 감고 달리면 눈의 나라가 너를 환영하는 노래를 불러줄 거야. 하지만 중간에 눈을 뜨면, 눈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흰 사슴은 무섭고 겁이 났지만, 친구들과 함께 여기까지 오면서 튼튼해진 다리와 잘 듣게 된 귀를 믿어보기로 했어요. 함께 온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마침내 흰 사슴은 혼자가 되었어요.
아무도 없는 차가운 땅을 밟으며 흰 사슴은 눈을 감았어요. 온통 하얀 땅과 하얀 나무, 하얀 여우와 자기처럼 하얀 사슴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사슴은 달리기 시작했어요. 차갑고 상쾌한 바람이 사슴의 볼을 간질이고, 부드러운 풀들이 사슴의 다리에 손뼉을 치는 것 같았어요. 숲 속의 친구들이 사슴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눈을 뜰 뻔 했지만, 흰 사슴은 눈을 꼭 감고 달렸어요. 열심히 달리는 사슴의 코에 향기로운 꽃냄새가 스쳤어요. 조금 더 달려가자, 사슴의 발바닥에는 폭신한 눈이 밟히기 시작했어요. 사슴은 눈을 뜨고 싶었지만, 청둥오리 대장이 말해줬던 노래가 들리지 않아서 꾹 참았어요. 사슴은 조금 더 걸어가면서 귀를 쫑긋 세웠어요. 멀리서 쪼르르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처음 듣는 노랫소리가 들려왔어요. 흰 사슴은 크게 숨을 내뱉고, 눈을 떴어요. 그러자 달려온 길은 보이지 않고, 사방이 흰 나무와 흰 바위로 둘러싸여 있었고 처음 보는 커다란 하얀 새가 흰 사슴을 보고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흰 사슴은 눈의 나라를 처음 보는 순간 알았어요. 흰 사슴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였어요. 흰 사슴은 더 이상 숨지 않았고, 눈의 나라 저 멀리에서는 아름다운 흰 사슴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