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cekim Mar 23. 2020

작은 꼬리 다람쥐의 여행

네 번째 엽편소설


마른 풀들 사이로 연한 색깔의 풀이 돋아나고, 헐벗은 나무에 수줍은 꽃봉오리가 보이기 시작할 때, 작은 꼬리 다람쥐는 눈을 떴습니다. 포근한 동굴 집에서 기지개를 활짝 펼친 다람쥐는 문을 열고 코를 빼꼼 내밀었습니다. 기분 좋은 바람이 봄의 향기를 실어다주었고, 작은 꼬리 다람쥐는 행복한 기분으로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작은 꼬리 다람쥐는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겨울 내내 붙어있던 먼지를 털고 작은 꼬리를 예쁘게 폈습니다. 작은 꼬리 다람쥐는 보고싶던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긴 잠에서 깨는 오늘만 기다려 왔거든요.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가서 다람쥐는 세수를 하고 친구들을 찾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옆마을 친구인 동글이 다람쥐는 작은 꼬리 다람쥐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도토리 나무가 많은 곳에 사는 동글이 다람쥐는, 작은 꼬리 다람쥐에게 항상 가장 맛있는 도토리를 선물하는 착한 친구였지요. 작은 꼬리 다람쥐는 동글이 다람쥐의 동네로 신나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동글이 다람쥐네 집 근처에 있던 도토리 나무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큰 나무들이 있던 자리에 차갑고 커다란 괴물같은 것들만 있었습니다. 작은 꼬리 다람쥐는 동글이 다람쥐의 집을 찾을 수 없어서 실망했어요.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작은 꼬리 다람쥐에게 노란 모자와 빨간 날개 옷을 입은 작은 새들이 날아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꼬리 다람쥐는 혹시 이 새 친구들이 동글이 다람쥐네 집을 가르쳐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얼른 다가가 물어봤어요.

“예쁜 모자를 쓴 새야, 나는 여기 사는 내 동글이 다람쥐를 만나러 왔는데 집을 찾을 수가 없어. 혹시 너희는 아니?”

새 친구들은 대답했습니다.

“여기 살던 다람쥐는 벌써 이사를 갔어. 따뜻한 해가 비쳤다가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 어느 겨울 날, 봄이 온 줄 알고 일어났다가 괴물들을 만나서 얼른 도망을 갔지. 저 언덕너머 마을로 갔을 거야.”

작은 꼬리 다람쥐는 고마워서 인사를 하고, 다시 언덕 너머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언덕 너머 마을에는 비행사 다람쥐 이모가 살고 있었습니다. 비행사 다람쥐 이모는 몸을 펼치면 날개가 생겨서 나무와 나무 사이를 멋지게 날아다닐 수 있었지요. 작은 꼬리 다람쥐는 높은 나무 사이를 빠르게 날아다니는 비행사 다람쥐 이모라면 동글이 다람쥐가 어디로 갔는지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높은 나무가 많았던 언덕 너머 마을은 어느 새 숲이 많이 작아져 있었고, 작은 나무들 사이로는 사람들이 오가는 커다란 집이 보였습니다. 작은 꼬리 다람쥐는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비행사 다람쥐 이모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비행사 다람쥐 이모는 열심히 나무 열매를 따고 있었어요. 작은 꼬리 다람쥐는 얼른 비행사 이모를 불러서 인사했습니다.“작은 꼬리 다람쥐야, 오랜만에 만나는구나! 여기까진 무슨 일이니?”

작은 꼬리 다람쥐는 다시 한 번 동글이 다람쥐 친구를 찾아 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행사 다람쥐는 한참을 듣다가 대답했어요.

“동글이 다람쥐가 여기 왔었을 때는 숲이 좁아지고 있었어. 사람들이 살기 시작해서 우리에게 더 이상 이 숲은 안전하지 않단다. 동글이 다람쥐는 저 멀리 바위 산까지 여행을 떠났고, 나도 이제 높은 나무가 더 많은 숲으로 여행을 떠나야 해.”


봄이 오면 친구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언덕 너머 마을에서도 동글이 다람쥐 친구를 만나지 못하자 작은 꼬리 다람쥐는 슬퍼졌어요. 동글이 다람쥐도, 도토리 나무도, 키 큰 나무들이 있던 숲의 시원한 바람도 모두 그리웠어요. 그 때 키 큰 나무들 대신 작은 나무들이 예쁘게 심겨있는 길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요. ‘동글이 다람쥐 친구가 있었다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작은 꼬리 다람쥐는 생각하며 작은 나무가 있는 길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긴 잠을 자고 일어나서 멀리멀리 여행을 오다보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작은 꼬리 다람쥐는 맛있는 냄새에 그만 이모의 말을 잊고 말았어요. 상큼한 과일 냄새, 고소한 열매 냄새에 어느새 작은 꼬리 다람쥐는 작은 나무들 아래 커다란 집이 보이는 곳까지 와버리고 말았어요. 참새 친구들도 맛있는 냄새를 맡았는지 다람쥐가 있는 곳까지 날아왔다가 지저귀며 다른 곳으로 날아갔어요. 배가 고팠던 작은 꼬리 다람쥐는 아무것도 모르고 천천히 커다란 집 앞 마당까지 걸어갔어요. 그 때, 바스락 소리가 들리며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작은 꼬리 다람쥐는 너무 놀라서 얼른 작은 나무 뒤로 몸을 숨겼지만, 작은 나무는 아직 옷을 입지 않아 작은 꼬리 다람쥐를 완전히 숨겨줄 수 없었어요. 작은 꼬리 다람쥐만큼이나 그 사람들도 놀랐는지, 오던 발걸음을 멈춰 작은 꼬리 다람쥐와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엄마, 저기 봐. 저기 다람쥐 있어.”

작은 소녀는 다람쥐가 놀랄까봐 엄마에게 소곤소곤 말했어요.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조용히 말했어요.

“응, 귀여운 다람쥐가 놀라지 않게 우리 멀리서 보기만 할까?”

소녀는 조용히 다람쥐를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어요.

“엄마, 다람쥐 배고픈가봐.”

“그래? 그럼 우리 여기다 사과랑 땅콩이랑 두고, 멀리서 보자. 우리가 가까이 있으면 놀래서 못 먹을거야.”

소녀는 다람쥐를 가까이서 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운 눈치였지만, 엄마의 말을 따라 마당에서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자, 한참을 기다리던 작은 꼬리 다람쥐는 살금살금 다가와 작은 과일과 땅콩을 볼 속에 잔뜩 넣고 다시 숲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처음엔 너무 무서워서 가슴이 터질만큼 콩닥거렸지만, 이모가 말했던 것처럼 이 숲이 위험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작은 꼬리 다람쥐는 키 큰 나무들의 숲으로 돌아와, 잘 먹고 잘 잔 후에 바위 산 마을까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작은 꼬리 다람쥐가 이번엔 바위산으로 여행을 떠나려는데, 어제 봤던 소녀와 엄마가 작은 나무들을 지나 키 큰 나무들의 숲 앞까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작은 꼬리 다람쥐는 키 큰 나무 위에서 조용히 지켜보았지요. 작은 소녀와 엄마는 처음 만난 키 큰 나무 아래에 작은 상자를 매달았습니다. 작은 꼬리 다람쥐와 동글이 다람쥐처럼 몸이 작은 친구들만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는 작은 상자였지요. 작은 꼬리 다람쥐는 사람들이 가고 난 후 그 상자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작은 꼬리 다람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안에는 맛있는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작은 꼬리 다람쥐는 꼭 동글이 다람쥐를 찾으면 이 상자에 대해 이야기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작은 볼을 채워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상자에는 삐뚤빼뚤하지만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다람쥐 밥! 만지지 마세요.’



이전 04화 어떤 산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