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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Mar 30. 2020

바다와 담요

여섯 번째 엽편 소설

바다를 바라보는 커다란 통창 앞에 그녀는 오래 앉아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북을 노려보며 이따금 잔뜩 쌓인 문서를 뒤적이곤 했다. 평일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혼자 한숨을 내쉬며 노트북과 바다를 번갈아 쳐다보는 그녀를 오가는 사람들이 흘끔거렸다. 사람들이 보건 말건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다가 노트북을 두들기다 한숨을 쉬는 일을 반복했다. 카운터에 서 있던 남자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모르는 척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앉은자리는 그다지 카운터와 가깝지 않았지만, 카페가 그리 크지 않은 데다 카운터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구조라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장소라서 그런지, 혼자 오는 손님들은 가끔 그녀가 앉은자리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하염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구경하곤 했다. 간혹 눈물을 흘리는 손님이 있기도 했지만, 그녀처럼 많은 짐을 가져와 많은 한숨을 풀어놓는 손님은 처음이었다. 왠지 신경질적인 그녀의 타자 소리를 들으며, 그는 쓸데없는 서비스를 주는 것보단 아무것도 못 본 사람이 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장사 경력이 길지 않기 때문이었는지, 유일한 장사 경력이 바다가 보이는 시골 카페이기 때문이었는지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리에서 몇 시간째 머리를 쥐어뜯는 그녀가 신기했다. 도시와는 달리 아직 봄이 오지 않아 추운 바닷가 동네에 그녀처럼 얇고 화사한 옷을 입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히 여기 바다가 예쁘단 소문을 듣고 멀리서 온 사람 같은데, 괴로워하면서 스스로 화를 내는 그녀가 어색하고 안쓰러웠다. 동네 사람들이나 주변 가게 사장님들도 그에게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가 그녀의 한숨 소리에 어색하게 퇴장하기를 몇 번째였다. 그래도 카페에서 한숨을 쉬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괜히 바빠 보이는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도 주책맞은 것 같아 그는 그냥 카페에 흐르는 음악을 키우고 애꿎은 책장만 넘겼다.


그녀의 한숨과 신경질적인 타자 소리가 멈추었길래, 그는 그녀가 나간 줄 알고 책에서 시선을 뗐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녀는 노트북을 덮고 조용히 밖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빨간 해를 천천히 삼키는 바다를 담고 있었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은 것 같았다. 그가 너무 티 나게 쳐다봐서인지 그녀의 고개가 휙 돌아서 카운터를 향했다. 그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괜히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다행히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지 조용한 상태가 유지되었다. 하늘이 붉은빛에서 서서히 어두운 색으로 물드는 동안, 네 명의 단체 손님과 연인 한 쌍이 카페를 나갔다. 카페 앞에는 그의 차 말고는 더 이상 주차된 차도 없는데, 그녀는 망부석처럼 바다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조용하게 흐르는 음악 사이로 그와 그녀의 침묵의 균형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처음엔 서서히 빨갛게 물들던 하늘이 생각보다 빠르게 어두워진 탓에, 그녀는 천천히 카페를 둘러보고 자기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이 시간이 되기까지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만 한 것을 깨닫고 후회했다. 홧김에 떠나온 여행에까지 노트북을 굳이 들고 온 것부터 이렇게 될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떠나고는 싶은데, 책임감은 어설프게 두고 올 수 없었던 그녀는 허탈했다. 그래도 몇 시간 떠나오면서 눈을 조금 붙인 것과, 작업하는 동안의 바닷가 풍경이 그녀의 분노를 삭이는 데 도움이 되었단 점을 떠올리며 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의 눈에는 그녀의 생각들이 보일 리 없었지만, 가게를 둘러본 뒤 주섬주섬 짐을 싸는 그녀의 뒷모습이 등장했을 때보다 평화로워 보여 안도했다. 그녀는 짐을 싼 뒤, 컵과 쟁반을 들고 카운터로 걸어왔다. 들어왔을 때 날카로운 표정으로 카페인을 긴급하게 요청하듯 샷 추가를 외칠 때와는 딴판으로 평화로운 얼굴이라 그는 괜히 뿌듯해졌다. 자기가 한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가게에서 바라본 일몰과 그가 내린 커피, 음악과 분위기가 어쨌거나 그녀를 위로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백팩을 메고 금방 유리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카페 안에 있을 때와 그녀는 옷차림이 같았다. 외투조차 챙기지 않고 밤바다로 나가다니. 게다가 대부분 렌터카를 빌려오는 이 지역 관광객들과 달리, 그녀의 차는 주차장에 보이지 않았다. ‘아냐, 괜히 오버하지 말자.’ 그는 분명히 이렇게 생각했었다.


“저기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앞치마 차림의 그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의 손에는 카페 이름이 적힌 담요가 두 장이나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당황한 듯 그를 보고 서 있었다.

“아니, 드리는 건 아니구요. 추워 보이셔서 빌려드리는 거니까 다음에 갖다 주세요.”

“어, 저기,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기엔 그녀는 거의 밤바다와 비슷한 색의 입술을 하고 온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럼 안 돌려주셔도 되니까 쓰세요. 어디까지 가시든 이러고 가시다 얼어 죽겠어요.”

“그러면, 감사히 쓰고 나중에 돌려드릴게요. 진짜 감사해요…….”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울먹였다. ‘겨우 담요 2장에 운다고?’ 그는 당황해서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저, 그럼, 가게에 아무도 없어서. 조심히 가세요.”

그는 얼른 뛰어서 가게로 돌아왔다. 그는 여자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는 사람도 아니고, 오늘 처음 만난 손님이 덜덜 떨길래 담요를 빌려줬더니 우는 상황 같은 건 그의 대화 알고리즘을 오류로 이끌었다. 담요를 두고 사라진 그를 눈으로 좇던 그녀는 손으로 얼른 눈물을 훔쳐내고 담요를 위아래로 둘렀다. 그리고 다시 카페를 흘끔 보고, 발걸음을 돌려 점점 멀어졌다. 그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 모르겠지만, 후다닥 카페로 돌아온 그는 괜히 테이블이나 의자를 정리하며 바쁜 척을 했다. 밖은 어둡고, 통창의 카페는 모든 불이 켜져 있어서 그녀가 그를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쓸데없는 곳까지 가게를 정리하다 밖을 보니,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녀는 카페 근처에 보이지 않았다. 그에겐 잊기 힘든 특이한 손님에 대한 기억으로 그 밤의 담요와 그녀는 밀려났다. 겨울이 길었던 바닷가 동네에도 부드러운 공기와 달큼한 꽃 향기가 찾아오면서 그의 카페에도 화사한 옷을 입은 손님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지곤 했다. 연인들의 소곤거림과 아이를 데려온 가족 손님들의 웃음소리에, 그는 머리를 쥐어뜯던 그녀가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날씨가 따뜻해질수록, 그는 이제 그녀가 다시 찾아와도 한 번에 알아보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일 손님들이 그의 카페에서 해가 지는 풍경을 보고 갔지만, 그래도 그는 그녀의 뒷모습이 포함된 그 날의 풍경과는 매일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했다.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창에 카페 모습이 거울처럼 보이는 시간이 되면, 공연을 다 본 손님들은 카페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오면 그는 가게를 정리하고, 괜히 잘 보이지도 않는 밤바다를 보며 음악소리를 키웠다. 아마도 그래서 그날도 출입문의 종이 울리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을 것이다.

   


“저기, 이거요. 돌려드리러 왔어요.”

평소와 다름없이 가게를 정리하는 시간, 처음만큼이나 묘하게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가 누군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 없었던 것은 그가 그녀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들고 온 담요들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리고 사장님답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 돌려주실 줄 알았는데, 다시 오셨네요.”

그녀도 한 달 전의 우울함과 괴로움의 그늘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소 지었다. 그때의 그녀가 이렇게 아름답게 웃는 사람이었던가, 그는 생각했다.

“네, 그땐 제가 좀 정신이 없었어요. 죄송해요 늦어서. 대신 자주 올게요.”

‘자주 온다고?’ 뜻밖의 그녀의 마지막 문장에 그는 놀랐다. 이 동네는 주민이 적어서, 그의 카페에 오는 사람 중 그가 모르는 사람은 관광객들 뿐이었다. 흘끔 카페 밖 주차장을 보니 이번에도 그녀는 차가 없었다. 그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는 이번에도 그녀가 참 신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주고 간 담요를 집어 들었다. 부드러운 담요 사이로 카드 한 장이 떨어졌고, 그는 얼른 집어서 카드를 펼쳤다. 거기엔 죄송하고, 감사했고 등의 그녀의 감정들과 함께 여러 단어들이 쓰여있었는데, ‘사장님과 담요, 바다와 하늘 때문에 결심한 한달살이’까지 읽고 나자 그는 더 이상 후회할 일을 만들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날 저녁처럼 앞치마 차림으로 그는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벌써 멀어졌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달리던 그는 모래사장을 따라 걷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 날처럼, 그는 그녀에게 달려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저기요! 그, 혹시, 저녁 드셨어요?”

그녀는 대답 대신 가로등처럼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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