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엽편소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녀는 툴툴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그녀와는 달리 부모님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네 가족이 도착한 곳에는 여러 가지 클래식 음악 공연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그녀의 음악 취향은 대형 콘서트장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울림이 있는 곳이나, 그 울림만큼 큰 팬들의 환호가 쏟아지는 곳에 가까웠다. 게다가 오늘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 취향보다는 최근에 얻은 새 가족의 공연을 보러 가고 싶다는 부모님의 의견이 중요했다. 최근에 생긴 형부는 첼리스트였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언니와 형부가 사랑에 빠진 것이 의문이었다.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부모님은 사위가 이렇게 큰 공연장에 걸린 포스터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형부는 좋은 사람이었고, 같이 놀 땐 좋았지만 2시간 넘게 조용히 공연장에 앉아있을 생각에 그녀는 벌써 지루했다. 그녀가 지루해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부모님은 불시에 공격을 시작했다. 처음엔 형부를 칭찬하다가, 오늘의 프로그램에 나와 있는 다른 젊은 연주자들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눈치를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먼저 결혼한 언니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이 어려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지지 않고 폰 속에 고이 모셔둔 우상들의 사진을 내밀고 싶었지만, 잘 차려입고 여기까지 와서 엄마한테 등짝을 맞고 싶지 않아 화장실로 도망을 쳤다. 2시간 넘게 견디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는 화장실에 숨어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사람들과 우르르 객석으로 들어갔다.
형부는 장인 장모를 어찌나 공경했는지, 형부가 내준 그녀 가족의 자리는 무대가 잘 보이다 못해 대화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녀는 몰래 눈이라도 감을 수 있는 구석진 자리가 부러웠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녀는 무대 위에 엄청 많은 의자가 놓인 것을 보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5분씩 관찰하면 시간이 금방 가겠다고 생각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연주자들이 무대 옆에서 몰려나왔고, 형부가 잠시 이쪽을 보더니 최대한 웃음을 참으며 자리를 잡았다. 곧 객석의 불이 꺼지고 박수와 함께 외국인 지휘자가 나왔다. 가장 바깥쪽에 앉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일어나 지휘자와 악수를 하고 앉았다. 잠깐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객석과 무대 모두가 고요하게 지휘자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첫 곡이 뭐였는지 프로그램을 기억해보려고 애쓰다가, 그걸 기억해내도 어차피 모르는 음악인 데다 끝나는 시간도 저 지휘자의 손끝에 달려있을 뿐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튼 그녀가 모르는 음악은 시작되었고, 형부를 비롯한 모든 연주자들의 표정이 진지해져서 그녀도 무대를 똑바로 보았다.
현악기가 리드하면서 박자를 이끌었고, 현악기의 메인 멜로디 뒤로 관악기들이 긴장을 만들기도 하고 높은 플룻 소리가 안정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녀에게 조금 익숙했던 멜로디는 금방 지나갔고, 모르는 구간이 길었지만 또 중간중간 익숙한 멜로디가 변형되어 나타났다. 그녀는 가끔 엄마가 책을 읽을 때 틀어놓던 클래식 라디오에서 이 음악을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수많은 소개팅을 했던 그 고급진 카페에서 지루한 남자의 말소리 뒤로 들었을 수도 있다. 주로 어떤 풍경이나 상황의 배경이었던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여태 배경음악으로 생각해 왔던 것이 조금 미안해졌다. 그것도 잠시, 꽤 길게 연주가 이어지자 그녀는 연주자들에 대한 노고로 듣기보다는 음악에 대해 그냥 마음대로 상상하기로 했다. 여러 번 반복되면서 변형되는 메인 멜로디는 금방 시골마을의 호기심 많은 어린 소녀를 떠올리게 했다. 해맑게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친구를 만나서 같이 뛰어다니기도 하고, 어른들이 가지 말라는 곳에 몰래 갔다가 도망치기도 해서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소녀를 상상했다. 그녀 상상 속의 소녀가 집으로 돌아가 문을 닫는 장면에서 음악이 끝났다. 박수를 치려고 손을 올리자마자 그녀의 언니가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만류했다. 그녀가 입모양으로 ‘왜’라고 했는데 금방 다시 음악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상상과 함께 조금은 이 공연을 즐길 뻔했는데, 그녀는 부루퉁하게 다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언니 때문에 교양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그녀는 괜히 민망해서 무대만 쳐다봤다. 1악장에 비해 조용히 진행되는 2악장은 아무 상상도 일으키지 못했고, 그녀는 최초의 계획대로 연주자들을 한 명씩 관찰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비슷한 표정이었는데, 그녀는 갑자기 상사가 일어서서 쳐다보면 자기네 회사 사람들도 같은 표정일 거라고 생각하며 웃을 뻔했다. 언니가 또 눈을 가늘게 떴는데, 잠시 음악이 끊기고 새 악장이 시작되면서 지휘자가 춤을 추듯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3악장은 리드미컬하고 지휘자의 퍼포먼스가 볼 만했지만, 그녀는 이미 흥미를 잃었다. 이 정도면 꽤 오래 인내심을 가지고 공연을 흥미롭게 봤다고 생각했다. 물론 언니는 그녀를 그렇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언니 눈치를 보며 나오려는 하품을 최선을 다해 참았다. 하품을 참다 모인 눈물이 눈에 가득 고일 때쯤 3악장과 4악장 사이에 틈이 생겼고, 형부가 그녀를 보고 눈이 마주쳐 감동한 것 같았다. 그녀는 4악장이 연주되는 내내 형부에게 오해라고 해야 할지 언니에게까지 연기를 해야 할지 장기적 영향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도 처음 오는 연주회에 형부의 감동을 깨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쯤 오케스트라가 마주 고조되며 음악을 끝내고 연주자들이 일어섰다. 언니는 열정적으로 일어서서 박수를 쳤고, 얼떨결에 그녀도 따라 했다. 그녀는 이제 형부의 오해를 풀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쉬는 시간 동안 언니는 형부가 얼마나 멋진 공연을 하는 사람인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고, 엄마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장구를 쳐줬다. 아빠는 졸지 않은 척을 하며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아까 사 온 프로그램을 펼쳤다. 쉬는 시간 후에는 피아노 협주곡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그녀는 후반부는 또 어떻게 버티나 한숨을 쉬다 아빠와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엄마와 언니의 성화에 후반전을 치르러 들어왔고, 그녀는 무대 중앙에 놓인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를 발견했다. 객석의 조명이 꺼지자 형부를 포함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제일 먼저 들어왔고, 곧 아까 그 지휘자와 말쑥한 정장을 입은 젊은 외국인 남자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 그 남자는 그녀 핸드폰 용량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연예인들과 비슷한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 서자 그는 더 아이처럼 보였다. 그녀는 클래식계에도 저렇게 어린 사람이 있나,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쉬는 시간 전과는 무대 위와 아래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전반전과는 달리 기침이라도 잘못하면 크게 혼날 것처럼 고요했다. 이번에는 그가 처음 피아노를 부드럽게 만지기 시작한 때부터 그녀는 그가 어린애 같다는 생각은 금방 지워야만 했다.
그가 화려한 조합으로 건반을 강하게 치기 시작하자 그제야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천천히 연주에 합류했다. 그녀는 그가 아이처럼 어려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아주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분명히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지휘자가 피아노 뒤편에 서있는데도,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가 다른 악기들을 모두 지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아노 소리가 원래 이렇게 좋았던가, 비싼 피아노라서 그렇겠지 하는 멍청한 생각을 할 틈도 별로 없이 그는 피아노를 휘몰아쳤다. 그의 손가락은 건반 위를 그저 굴러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소리가 뭔가 그녀의 가슴에 와 간지럼을 태웠다. 이제 그녀에게는 오케스트라나 형부는 보이지도 않았고,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세우고 그의 손끝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가 긴 다리로 페달을 열심히 밟고, 몸을 격정적으로 움직이며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그가 귀에 전달해주는 소리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곧 이 감정이 치달아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모두 볼륨을 높여서 멜로디를 주고받는 구간이 오자,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더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울면서 뭐라고 입을 달싹였지만, 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의 피아노와 전체 오케스트라는 각각 분리된 두 개의 악기이자 두 인격체처럼 서로 계속해서 대화하고 있었다.
강렬하게 1악장이 끝났는데, 그녀는 연주가 멈춘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쉬는 시간은 짧았고 바로 2악장이 천천히 시작되었다. 그녀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눈앞에 보이는 그의 피아노 소리가 그녀를 달콤하고 화려한 꿈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고, 눈을 감았는데도 그가 눈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오케스트라는 피아노를 완벽하게 해주는 반주처럼 들렸다. 보통은 피아노를 반주로 생각하는데, 이번만큼은 그의 피아노가 아주 확실히 주인공으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1악장은 강렬한 힘처럼 느껴지더니, 2악장은 아주 섬세하고 예민한 그의 소리가 노래를 했다.
3악장은 거의 바로 이어졌기 때문에 그녀는 사실 분위기가 바뀐 것으로 악장이 바뀐 것을 겨우 알았다. 다시 박자가 빨라지면서 그는 거의 피아노 위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아까는 눈물을 흘리더니, 이제는 약간 미소를 짓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소리가 커질 땐 허리를 펴고, 작아지면 자기도 함께 피아노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이상하게 작은 소리일수록 그녀도 따라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숨조차 함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녀 마음에 그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파도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가, 마구 빠져나가는데 그녀는 손을 뻗어 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누구를 생각하지도, 무엇을 떠올리지도 않았는데 그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의 이마와 목덜미에 땀이 흘렀는지 반짝거렸고,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다가 구슬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인 것처럼 속도가 느려지며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한 소절씩 주고받으며 풍성함을 키워갈 때는, 혹시 끝인가 싶어서 그녀는 아쉬워졌다. 장엄하게 끝을 향해 달리던 음악을 마치고 그가 양 손을 피아노에서 뗐을 때 그녀는 이제껏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던 그가 높은 무대 위에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홀린 듯 그녀가 일어나 눈물을 훔치며 박수를 쳤고, 이번에 일어난 사람은 그녀 가족뿐만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아까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을 박수를 치고 공연장 밖으로 나온 그녀는 어딘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형부를 기다리며 멍한 상태로 말을 꺼냈다.
“언니, 나 사고 났다 사고.”
“뭐? 언제?”
“방금 전에 덕통사고 났어. 나 저 사람 피아노에 입덕이야.”
유명한 연주자로 초청 연주를 한, 형부조차 말 못 걸 사람에게 또 헛바람이 들었다며 엄마와 언니가 쿵짝을 맞추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의 눈과 귀엔 아직도 그의 피아노가 잔상처럼 남아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