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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Jul 30. 2020

성격 차이

열한 번째 엽편소설

“행복해?”

“응?”

“행복하냐구.”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답 없이 남자가 빙그레 웃었다. 여자는 그 웃음으로 대답이 충분하지 않은 듯 재차 물었다.

“그게 뭐야, 행복하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글쎄.”

남자의 대답에 여자는 눈을 흘겼지만,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행복해. 행복한 것 같아.”

여자는 다리를 주무르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도 얼른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응. 많이 피곤해?”

“긴장이 됐나 봐. 아무래도.”

말없이 한참 여자의 어깨와 다리를 함께 주물러주던 남자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냥, 앞으로 더 많이 행복해질 텐데 오늘도 행복하다고 말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좋아. 오늘 너를 데려다주고 헤어지지 않아도 되니까.”

여자는 피식 웃으며 행복이란 말을 그렇게 아낄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함께 웃었다. 오늘, 그들은 연인에서 가족으로 관계를 바꾸었다.


다음날, 부산스레 일어난 여자는 캐리어에 옷이나 세면도구, 내용물을 알 수 없는 파우치 같은 것들을 던져 넣었다. 그녀가 부르는 소리에 느릿느릿 일어난 남자는 조심조심 그녀가 던진 것들을 개켜서 캐리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아침부터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그가 그녀를 천천히 토닥였다. 그녀는 좀 더 차분해졌지만, 얼른 씻고 나와서는 그가 욕실에 들어가 30분 넘게 느긋한 샤워를 즐기는 동안 그가 정리해둔 짐을 보며 웃어버렸다. 그는 그녀와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뿐인 욕실 안에서 그녀가 영역을 넓혀놓은 샴푸, 린스, 바디샤워 같은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수챗구멍을 비우고, 씻고 나서 그녀가 의도치 않게 물청소를 시도한 부분까지 정리하느라 평소보다 샤워시간이 길어지는 중이었다. 그도 그녀가 자신과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저 새끼 잡아!”

그녀가 소리 지르고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울리는 그녀의 한국어를 제대로 알아들을 사람은 그녀의 일행인 남자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외침에도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가 그를 지나쳐 돌진하는 동안에도 그는 그저 구경꾼처럼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표정만은 우사인 볼트 못지않았지만, 그녀는 끝내 쫓던 이를 놓쳤다. 그리고 붉어진 얼굴로 씩씩대며 그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영혼이 나간 듯 멍하니 캐리어 두 개를 잡고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그녀가 영사관에 전화를 하고, 예매했던 기차를 타는 대신 경찰서에 가서 번역기와 손짓 발짓을 더해 긴박했던 소매치기 현장을 묘사하는 동안에도 그는 충격받은 얼굴로 그녀를 열심히 따라다닐 뿐이었다. 영사관에 가서야 정신을 차리고 여권발급을 위한 서류를 적어낸 그는 조그맣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며 어차피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신혼여행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반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해도 될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괜찮아.”

그녀의 계획대로라면 오후에 도착해서 호텔 수영장에서 봤어야 할 일몰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렌터카 회사는 영어가 엉망진창이었고, 일처리 또한 영어실력 못지않았다. 그녀가 아무리 화를 내고 그가 점잖게 타일러도 타국의 서비스는 한국과 같지 않았다. 설상가상 시골길의 상태가 구글 내비게이션과는 상이했기에, 낯선 나라의 낯선 도시를 헤매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까지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도착지까지의 거리는 아무리 가도 줄지 않는 것만 같았다. 홀로 긴 시간을 운전한 그가 걱정되기도 하고, 이 여행 계획을 짠 그녀는 책임감을 느껴서 몹시 불안해졌다.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면 운전자가 더욱 스트레스받을까 봐 눈치를 보며 괜히 다른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그가 대뜸 다 안다는 듯이 괜찮다고 말했다. 금세 어두워진 산길을 듬직하게 비추며 묵묵히 길을 찾아가는 자동차가 왜인지 운전대를 잡은 남자와 비슷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조용히 일몰을 바라보면서 남자의 손 한쪽을 꼭 쥐었다. 그가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보며 말했다.

“진짜 예쁘다, 그치?”


“김치찌개. 아니, 부대찌개? 음, 삼겹살?”

“도착하면 시간이 늦을 텐데 한 개만 정해야지.”

겨우 일주일인데 돌아가면 먹고 싶은 음식이 이렇게 많다며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보며 남자가 차분히 도착하면 피곤할 테니 가장 가까운 곳에서 파는 걸 먹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길게 늘어선 줄에서 비행기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먹고 싶은 음식이나 돌아가면 할 일에 대해 말하다가, 여자가 뜬금없이 말했다.

“진짜 잊지 못할 것 같아. 너무 행복한 여행이었어.”

가만히 그녀를 보던 남자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나도 너무 행복했어. 너무 행복해.”

그리고 작게 덧붙였다.

“네가 나랑 너무 다른 사람이라서 다행이야.”

그녀는 그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너무 매력적이지?”

그리고는 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나도. 너라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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