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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엄마 Sep 21. 2022

갑질러들 중에서도 그 사람이 제일 나빠

내가 목격한 갑질의 유형

갑질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갑질이 판을 치는 시대. 뉴스에 나오는 떠들석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오늘도 우리는 직장에서 크고 작은 갑질을 목격하고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갑질러들은 급을 나눌 것도 없이 다 몹쓸 인간들이지만 개인적 경험에 따라 그중에서도 유독 더 나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당해보거나 지켜본 갑질을 종류별로 분류해본다면 권력오남용형(각종 평가조작, 혜택배제), 일상적 괴롭힘형(일거수일투족 감시, 시비걸기, 황당한 업무지시), 업무과다부여형(업무시간내 소화하기 불가능한 분량의 업무부여), 강약약강형(윗사람에게 과잉충성 아랫사람에겐 함부로), 불법은폐형(부적절한 업무지시, 뒷돈빼돌리기) 등이 있다. 




권력오남용형 

개인적으로 기관장 비서실에서 일하면서 쉽게 접했던 유형이다. 특히나 상명하복이 일상화된 공무원 조직에서 기관장이란 거의 전지전능한 신에 가까운 존재다. 그야말로 마음먹은 대로 안되는게 없는, 뭐든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자리. 그 자리에 그릇이 안되는 사람이 앉았다가는 그 조직은 후퇴가 불가피하다. 


요즘도 이런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지 않게도, 피라미드 꼭데기에 앉아있는 권력형 갑질러는 부적절한 부서배치부터 개인적 업무지시까지 회사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손을 대는 것이 가능하다. 제일 최악인건 한 사람의 땀방울인 평가에 손을 대는 것. 맘에 안드는 직원의 평가서를 직접 확인하고 평가등급이 본인 생각보다 높으면 조정을 요구하는데, 하늘같은 기관장 말씀을 따르지 않을 자는 없다. 타부서에서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여 평가자로부터 그에 적합한 등급을 받았더라도 과거 본인의 심기에 거슬린적이 있다는 이유로 끝까지 괴롭히는 심리는 무얼까. 부당한 지시를 받은 평가자는 따르기 싫으면 옷을 벗어야 하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동료에게 미안한 행위를 자행해야 한다. 의도치 않게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것. 


성과급 시즌에는 맘에 드는 직원과, 맘에 들지 않는 직원의 등급에 손을 대는 일도 버젓이 일어난다. 이런 사람의 특징이 대외적으로는 엄청나게 공정한 척을 한다는 거. 회의결과가 전직원에게 공유되는 간부회의에서는 평가만큼은 누구도 이의가 없도록 공정해야 한다며 강조 또 강조하는 이중성. 이런 사람이 대가리의 자리에 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직원의 사기를 꺾고 열정을 사그라들게 하는 유형. 한 사람의 입김으로 그 기관 전체가 피해를 입고 공직의 특성상 그 피해는 다시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 인사가 만사라는 명언을 다시 한 번 새겨본다. 


일상적 괴롭힘형 

위에서 언급한 권력오남용형은 평가나 성과급에 손댈 수 있을만큼 권력의 최정점에 있어야만 가능한 괴롭힘이기에 굵직한 한방이 있지만 본인의 체면과 평판을 나름 고려하여 일상에서는 아무일 없는 듯 사람 좋은 척을 하는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잘 표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적 괴롭힘형은 가장 가까운 상사나 동료로부터 행해지는 갑질로 하루하루 피를 말리게 하는 직접적인 괴롭힘 유형이다. 직장내 괴롭힘 인정 사례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형태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예시는 너무 다양하지만 그래도 꼽아보자면 늦은 나이에 공직에 입문했는데 나이도 한참 어린 사수가 본인이 말하는데 리액션이 없다는둥 이유없이 갈구는 경우.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더냐와 같은 업무와 무관한 폭언, 욕설, 험담 등 언어폭력. 휴가를 쓰는데 개인적인 사유를 구체적으로 캐묻거나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꼭 필요한 일이 아닌데도 다시 부르는 일. 휴일에 자고있는데 조기게양을 시키는 등 명시된 업무 외의 잡무를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폭언, 욕설 등 직접적 가해가 아니더라도 따돌림, 차별도 넓은 범주에서 직장내 괴롭힘이다. 다른 동료들을 선동하여 따돌림을 유도하거나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일, 업무 수행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경우도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행위로 인정된다. 실제로 자잘한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이런 조직인지도 모르고 공무원공부하며 보낸 세월이 가장 후회된다며 퇴사를 택한 동료가 있었다.   


갑질상사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있는 사회가 오길



업무 과다부여형 

한 사람이 소화할 수 없는 만큼의 업무량을 안겨주는 것 또한 의도하지 않은 또다른 형태의 괴롭힘이다. 타 부처에서 몇 명이 나눠서 하는 일을 한 사람에게 몰다보니 업무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업무 외 시간까지 불태워야 하는 것은 기본. 그러다보면 잠이 부족하고 신체적으로 피로가 쌓이는 것은 물론 더 심각한 것은 벗어나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 좋은 상사를 만나면 업무를 조정하여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 신규인원 채용이나 업무재분배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니. 그러나 대부분은 업무과다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한들 대책이 마련되기는 커녕 무능한 직원으로 찍히게 된다. 이 경우 보통은 단순하게 '다른사람들은 했는데 너는 왜 못해?'를 시전. 아무리 부당해도 상사들은 현재 시스템이 바뀌는 것을 꺼리며 어떻게든 적응하길 강요한다. 


업무과다부여형이 더욱 힘든건 죽을만큼 괴로워도 기준 자체가 추상적이고 모호한 부분이 있어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선 과다업무에 대해서는 괴롭힘이 인정되지만(억지로 없는 일을 만들어 시키는 경우) 업무상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범위에서 과다업무를 수행할땐 괴롭힘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개인에게 당한 갑질이라고 보기도 어려워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요상한 구조이기도 하다. 굳이 가해자를 꼽자면 업무분장 책임자? 그렇다고 그 책임자가 개인적인 득을 보고자 이런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애매하다. 


대부분의 성실한 직장인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왠만해선 업무를 빵꾸내지 않는다. 잠자는 시간을 태워서라도 맡은 업무는 해내고야 만다. 그럼 당사자의 사정은 어찌됐든 업무는 돌아가니까 이런 악순환은 계속 반복되고..그만두거나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그런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고서야 벗어날 방법을 찾기 힘든 현실.  



강약약강형 

똑같은 상황인데도 입장에 따라 처신을 달리하는 갑질러도 있다. 상사에겐 괜찮은 것들이 부하에겐 안되기도 하며, 욱하고 윽박지르길 잘하는 사람인데 그 성질을 사람 봐가면서 부린다는 사실이 더욱 꼴보기싫게 만든다. 상사의 요구에 과다 충성하고자 부하들의 에너지를 갈아넣기도 한다. 


한번은 내일까지 특정 책 20권정도를 마련할 수 있냐는 기관장의 지시를 받은 적이 있었다. 직원들은 여러모로 방법을 알아봤지만 출판사에서도 당장은 불가하다며 며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했고 인근 서점에도 지점당 2~3권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직 위만 보이고 아래는 보이지 않던 눈먼 상사는 기어코 기관장 눈에 들겠다고 부하직원들에게 서점을 모두 돌아 당장 20권을 구해올 것을 지시했다. 그것도 퇴근시간이 이미 다가온 시점에. 저녁내내 식사도 못하고 쉴 시간도 반납해가며 여러명이 개발에 땀나게 뛰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종이 되고 싶은걸까. 그럼 직접 하던가. 여튼 고생은 부하직원들이 했는데 다음날 그 모든것이 본인의 공로가 되는 것은 기본. 너 그렇게 살지마 라는 말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오게 하는 인간군상이다. 



불법은폐형 

불법을 자행하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용인과 입막음이 필요하다.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건 아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만 하며, 최악의 경우 지시에 따랐을 뿐인데 대신 책임을 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업무상 필요해 의해 배정된 예산이지만 부도덕하게 마음만 먹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빼돌릴 수 있는게 또 예산이다. 격려금 명목으로 사용 가능한 예산을 가상의 직원이 격려금을 수령한 것으로 조작하여 뒤로 남겨두기도 하며 워크샵 등 업무상 용도로 사용할 와인을 대량 구매하여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놓고 양심에는 찔렸는지 회사로 배달을 받으면 와인을 대량구매한 사실을 직원들이 목격할 수 있기에 개인차량을 이용해 회사에서 먼 곳에서 와인을 수령해올 것을 지시받기도 했다. 결제도 업무 관련 카드는 사용 불가. 꼭 현금결제만 이용했다. 


이밖에도 출장기록을 조작해 과비나 개인수당으로 수령하는 일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얼핏 보면 그냥 개인의 비리로 치부할 수 있지만 문제는 양심에 찔린다고 나만 안할 수도 없는 분위기. 혼자만 올바르게 행동했다가는 그대로 찍히기 쉽상이다. 한번씩 출장내역을 기록하는 서류를 돌리다가 출장 간 적이 없는 신입 직원이 안 적으려고 할 떄가 있는데, 원래 다 적는거라고 지어서 쓰라고 가르치는 일도 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문제삼으려 하면 얼마든 걸려들 수 있는 위험한 범죄에 가담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겪은 괴롭힘도 다를 테고 제일 나쁘다고 생각되는 유형도 다르겠지만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해 개인은 고통을 느끼고 이는 다시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점은 매한가지다.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는 고통스러운데 가해자가 빠져나가는 것은 너무 쉬운 사회구조. 윗물이 맑으면 상당부분 해결될 문제겠지만 윗물이 맑기가 참 힘들다는 것이 대다수 직장인들의 경험이다.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부당함을 성토하는 젊은 직원들이 상사의 자리에 오르는 미래에는 이러한 문제가 상당부분 개선될 수 있을까 기대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 갑질하는 저들도 한때는 패기넘치고 바른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식적인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는 유토피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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