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상처를 준 공무원에게
직장내 괴롭힘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를 구제하려는 법적인 장치는 마련되었지만 불행하게도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법이 존재한들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가 현실적으로 구제받기는 쉽지 않다. 어렵사리 법적으로 괴롭힘을 인정받았다 해도 처벌 수위가 약하고 이후 보복성 처사나 이로 인한 부담으로 결국은 피해자가 퇴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배드앤딩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특히나 직장내 괴롭힘은 공공이나 민간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인권의 문제지만 공무원은 직장내 괴롭힘 피해로부터 더 취약하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엄격한 직장 분위기도 그렇지만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법률적인 근거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근로자가 아닌 공무원은 보호받기 더욱 어렵다.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공무원 복무규정이나 업무상 재해 인정 부분은 여전히 입법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실은 매우 척박하지만 그래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할 수 있는 일은 괴롭힘의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다. 가해자의 행위를 입증할만한 증거는 구체적일수록 유리하다.
먼저 일지를 작성하여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발언이나 행위를 당했는지 시간과 장소, 괴롭힘 행위, 나의 대응과 당시의 느낌, 주변인들의 반응 등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록해놓아야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상처는 마음 깊이 기억에 남지만 사건 발생 날짜나, 시간 등 자세한 상황은 잊어버리기 쉽다.
사건에 대한 주변 동료의 증언이나 가해자와 주고받은 문자, 이메일도 구체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근거로 남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일반적으로 가해자는 괴롭힘 행위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행하거나 그 내용이 뻬박 증거가 되도록 글자로 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땐 녹음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제3자의 발언을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본인이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까지 가지 않아야 하겠지만, 현실이 가혹하여 이미 직장 내 괴롭힘의 수준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렀을 땐 정신과 진료 기록도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나마 현실적인 구제 방법이라면 직장내 괴롭힘 초기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가해행위의 중단을 요구하는 일이다. 직장내 괴롭힘의 피해자가 되면 이성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거나 당당하게 부당함의 시정을 요구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나 자신을 끝까지 지켜줄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 이렇게밖에 결말지을 수 없는 현실이 슬프지만 더욱 굳게 마음을 먹고 상황의 해결을 위해 무슨 노력이든 해보는 수밖에.
공직사회의 직장내 괴롭힘도 이제는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길이 열렸다. 공무원 사회에서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공무원 재해보상법'이 입법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사회에서 갑질, 괴롭힘으로 고충을 호소하거나 퇴사,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왜 이제서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이제라도 좀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