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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엄마 Aug 10. 2020

퇴사하면 큰일날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없더라

누구나 한번 꿈꿔봤을 것이다. 취미가 곧 직업이 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벌 수 있다면 행복에 좀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냉정한 현실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이뤄지도록 놔두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 원치 않아도 매일아침 각자의 일터로 무거운 발걸음을 뗀다. 


내 어릴적 꿈은 기자였다. 야구를 좋아했지만 운동신경은 지독히도 없었던 나는 스포츠는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야구장에 갈때마다 넓디 넓은 그라운드를 눈에 담으며 나도 여기서 일하고 싶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했더랬다. 그러다 결론낸 것이 매표원 아니면 기자였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기자가 됐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야구기자. 


대학 졸업반이던 시절 그 꿈을 이루고자 닥치는대로 언론사에 지원했고, 드디어 기자가 됐다. 그러나 어릴적 꿈을 이뤘다고 하기에는 많이 아쉬웠다. 야구기자가 속한 체육부는 근처에도 못가봤으니. 기자생활 대부분을 국제부에서 근무하며 밤낮으로 외신과 다투는 생활을 지속했다. 그러던 중 동기 한 명이 체육부로 발령을 받았다. 정작 그녀는 체육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부서가 배치되고 우리는 꽤 오랫동안 부서변경 없이 각자의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이직을 하게 됐고 나는 국제부 경력을 살려 타사 외신 파트로 가게 됐으며 그 친구는 아예 스포츠지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난 건, 스포츠지에 있는 다른 친구와 프로축구 경기를 보러 가서였다. 기자석에서 경기를 관전하던 그녀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렇다. 이게 바로 내가 꿈꿨던 미래였다. 운동신경 제로인 내가 펜을 공 삼아 경기장을 마음껏 누빌 수 있는 일.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대결을 제3자가 아닌, 관계자로서 가까이 느껴보는 일. 그렇게 살고있는 친구에게 가감 없이 내 감정을 표했다. 내가 정말 꿈꾸던 삶을 네가 살고 있노라고. 참말로 부럽다고. 그러나 돌아온건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원래 스포츠에 관심이 없던 그 친구는 아무리 와도 그라운드에 정이 붙지 않는단다. 자기에겐 그저 생계 수단일 뿐이라고. 당시 나는 첫 번째 이직한 회사에서 외신번역과 뉴스편집팀을 거쳐 정부부처 홍보업무로 두 번째 이직을 한 상태였다. 스포츠기자의 꿈은 이젠 마음속 깊은 곳에 고이 접어둔 뒤였다. 그런데 그 삶이 현실인 친구는 오히려 내가 부럽다고 했다. 본인은 기회가 되면 스포츠기자가 아닌 다른 자리로 옮기고 싶은데 기회가 안 돼 여기 있는 거라고. 

내 꿈이 누군가에겐 루틴한 일상일 뿐이라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후일담을 들으니 첫 번째 회사에서 체육부 발령을 앞두고 나와 그 친구를 최종 후보로 고민했다고 한다. 만약 그때 그 친구가 아닌 내가 체육부로 갔다면 지금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지금쯤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정부부처 홍보업무를 거쳐 기관장 말씀자료를 쓰는 비서로 일하면서 나는 조직 내 필요에 따라 일정관리 업무나 기관장 행정 업무를 맡기도 했다. 그렇게 비서로 일하는 기간이 길어지며 점점 하고싶은 일과는 다른 삶에 적응해갔고 그 일에 매이는 삶을 살게 됐다. 뻔한 공무원 월급이지만 생활은 그 예산규모에 맞춰져있고 아이들 등하원, 방과후활동 등 모든 시간 활용 역시 내 업무에 맞게 돌아가고 있었다. 꽉 매여진 매듭을 풀면 일상이 흩어질 것만 같은 그런 삶이었다. 매듭을 풀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난 자의로 그 매듭을 풀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부당한 괴롭힘을 당하며 떠밀리듯 퇴사하게 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하고싶은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니까. 스포츠기자의 꿈을 접은 이후 직장에 소속되어 있는 내내 나의 새로운 꿈은 글을 쓰며 사는 일이었다. 만약 퇴사당하지 못했다면 두 번째 꿈 역시 속절없이 흐른 시간 속에 또다시 접어두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막상 퇴사하고 나니 흩어질 것 같던 일상은 새로운 환경에 맞게 또다시 촘촘히 조직됐고, 비로소 내게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왔다. 보수도 없고 지켜보는 이도 없지만 스스로의 만족감만은 남다르다. 대략 10여년 전 다음 블로거기자로 활동한 이후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네트워크와 포토, 동영상, 감상 중심의 SNS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쓰고싶은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왔을 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브런치라는 찰떡같은 플랫폼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뽀시래기 시절, 호기심에 한 대학교에 놀러가 무작정 동아리방의 문을 두드린 일이 있었다. 노래패였는데 그때 교복입은 낯선 고등학생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잠시의 공간을 허락해준 대학생이 생각났다. 그 분은 간단히 노래패 소개를 하며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노래는 가수만 부를 수 있는게 아니라고, 모두가 유명해질 수도 없고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말 그렇다. 유명세, 경제적 보상 등을 생각하면 좁은 문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거라면 그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래서 난 오늘도 브런치에 글을 쓴다.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 아무런 보상 없이 그 행운을 누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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