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퇴사 그 후
그만두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어렵게 그만둔 만큼 다시는 머리아픈 일은 하지 않겠다고. 여기서 말하는 머리아픈 일의 의미는 그동안 해왔던 일과 비슷한 결의 일을 뜻한다.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기자와 공무원을 거치며 쭉 글쓰는 일을 해왔다. 기자일때는 모두가 아는것처럼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일이 메인이었고, 공무원 역시 기자경력으로 채용된 자리여서 기관장 기고문, 연설문 등 말씀자료를 쓰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처음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구직활동을 할 때, 이 점도 고려가 되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채용공고 만큼이나 이 세상엔 많은 직업이 있고 이젠 그동안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취업사이트를 살피는데 어느 순간 정부기관 말씀자료 작성 업무의 채용공고를 찬찬히 보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닫고는 흠짓 놀란 경험이 있다. '대체 왜 이걸 또 보고 있는거냐고'. 습관이란게 이렇게 무서운 것이라니. 이럴거면 일을 그만둔 의미가 없지.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쇼핑몰 발주 업무를 하고 있다. 원하던바대로 그동안의 경력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의 일이다. 그만두면 비슷한 수준의 일을 찾을 수 없다고, 그러니 기존의 직장에서 어떻게든 버티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버티는 자가 이기는거라고. 밖으로 나가면 육아맘이나 경력단절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고.
그런 우려를 보란듯이 불식시키고 당당히 취업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다시 일을 구하며 그러한 사회 통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했다. 기존의 경력을 살리는 일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진 않았지만 주변의 사례를 봐도 스카우트 되는게 아닌 이상 이 나이에 그만두고 비슷한 자리로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적당히 낮추어 가고자 마음먹어도 오버스펙 또한 채용하는 입장에서 달가운 조건은 아니니 이 역시 쉽지 않다.
나 역시 새로 구한 일은 채용공고를 통해 정식으로 면접 등 채용절차를 거친 일이 아니었다. 마침 일을 구하고 있는 절묘한 타이밍에 지인이 인터넷 쇼핑몰 발주 담당자를 구하고 있다고 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일도 맨땅에 헤딩이었다면 이렇게 순조롭게 구할수 있었을지 장담하지 못할 일이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업무에 만족하고 있다. 처음 생각대로 그동안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한다는 뿌듯함이 가장 크다. 쇼핑몰 주문 고객의 리스트를 취합하여 택배사에 발송요청을 하는 간단한 일이지만, 실수가 있어서는 안되는 꼼꼼함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하다. 재고에 따라, 택배사 사정에 따라 따로 처리할 일도 챙겨야 하고 고객 컴플레인이나 오배송을 바로잡는 등 AS도 신경써야 한다. 업무 자체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 과정에서 요즘 비즈니스와 홍보 트렌드에 대해서도 새롭게 배우게 된다.
누군가는 결국 돈벌이의 종착지는 사업이라고, 거기서 잘 배워서 자기 사업을 열라고 조언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은 사업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거. 이 세상엔 수많은 일이 있고 모두가 다 리더가 될 수 없음을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체득하였다. 큰 가지를 서포트하는 수많은 잔가지들이 제 역할을 해야만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새기며 오늘 나의 일에 만족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자 한다. 퇴사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다람쥐 챗바퀴 돌듯 반복했을 일상을 뒤로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음에 감사한 하루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