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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Dec 17. 2021

밀라 논나, 박막례... 멋있으면 다 언니

나의 어릴 적 꿈은 언니가 생기는 것이었다. 남들이 동생을 낳아달라고 조를 때 나는 언니를 낳아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어이없어 하며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면 생각해보겠다고 웃었다.


장녀로 태어난 나는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나 부러웠다. 뭐가 그리 부러웠냐고 묻는다면, 글쎄... 인생을 반발짝 정도 앞서간 언니들의 진심 어린 조언과 친근한 보살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은 자매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언니들은 동생들을 챙겼다.  

             

ⓒ 유퀴즈온더블록 유튜브 캡처


학생으로서, 여자로서, 사회인으로서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내겐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오로지 내 판단과 느낌만 믿고 그 많은 선택들을 했다. 어른들은 고리타분했고, 남의 언니들은 정말 남일처럼 여겼고, 친구들은 자기 일도 바쁜 상태였다.


그렇게, 좋은 선택 나쁜 선택들이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층층이 쌓여 마흔몇 살의 내가 되었다. 단언컨대 내게 언니가 있었더라면 좀 더 완벽한 크레이프 케이크가 됐을 거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늦게나마 소망을 이뤄 나도 많은 언니들을 갖게 되었다. 일하다 만난 언니, 동네에서 만난 언니, 애들 친구인 언니 등등... 하지만 그들은 내가 꿈꾸던 언니가 아니었다. 어릴 땐 한 살 차이도 그렇게 어른 같고 멋져 보였는데 이제 한두 살 차이는 얼추 친구 먹기도 하며 K-중년의 고단함을 나누는,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돼버린 것이다.


그런 내 눈에 얼마 전부터 새로운 언니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인생을 반발짝이 아닌 열 발짝쯤 성큼 앞서간 언니들이었다. 육아, 일, 결혼이라는 큰 산맥을 굽이굽이 헤치고 지혜라는 정상에 오른 언니들... 사람들은 그들을 "할머니"라고 불렀지만 나는 그들을 "큰언니"라 부르고 싶었다.


그간 언니가 없었던 한을 풀듯 매일 밤 큰 언니들을 만났다. 유튜브로, 책으로, 강연으로. 때론 독설도 하고 지루한 말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는 거짓이 없었고,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들은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었다.  


70세 밀라 논나 언니는 "미래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를 항상 중심에 두세요"라는 말을 강조했고, 75세 박막례 언니는 "왜 남에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 치고 장구치고, 지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이 와서 추는 거야"라고 따끔하게 말했다.


돌아가신 일본의 유명 작가 사노 요코 언니는 "인생이란 이렇게 하찮은 일이 쌓여가는 것... 인생은 번거롭지만 먹고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고 일러 주었다.


큰언니들은 성공하는 법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단지 인생을 잘 사는 법에 대한 지혜를 나눠주었다. 오만하지 않고 겸손했고 불안감보다 생의 기쁨을 더 많이 상기시켜주었다. 허구한 날 듣는 부동산과 재테크 이야기로 피로도가 쌓여가던 와중에 큰언니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사찰 처마 밑에 달린 풍경소리처럼 마음을 맑게 해 주었다.


ⓒ Koreagrandma


누가 마흔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라 했던가. 나는 사시나무처럼 흔들려서 사십인 줄 알았다. 예순살까지 갚아야 하는 대출금, 노후 준비는커녕 애들 교육비로 절절매는 현 처지에서 할머니가 되는 일이란 유병 장수할까 무섭고 자식들에게 원망의 존재가 될까 두려웠다. 이런 와중에 진짜 할머니로 살아가고 있는 큰 언니들은 '괜찮아 괜찮아' 하며 축 처진 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같았다.


마흔이 되면 뭐라도 돼 있을 줄 알았다. 헌데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는 매순간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었다. 이게 맞냐고, 이렇게 살면 되는 거냐고. 그런데 이 나이쯤 되니 맘 터놓고 물어볼 데가 없다. 노쇠한 부모에게 물을 수도 없고, 후배에게 묻기도 뭣하다. 선배들은 묻기도 전에 내 미래의 짠함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때 만난 큰 언니들이 나에게 도움이 됐다. 그녀들의 당당한 삶의 모습이 나의 모든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하고 무기력한 노인이 아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멋지게 나이들 수 있다는 것을. 언제든 다시 시작해도 괜찮고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것을 지나온 세월로 증명해주었다.


요즘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그저 잔소리, 꼰대로 생각하고 조롱하는 시대다. 그런데 세대를 자꾸만 구분 짓고 분열시키고 귀를 닫는 이 현상 때문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닐까?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시대에 발맞추는 것만을 '우와' 할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나이든 사람들의 연륜과 지혜를 귀담아 들으려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나는 늙어본 적 없지만 그들은 젊어본 적 있다. 젊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마음 중심에 놓으면 마음을 때리는 마흔 살의 바람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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