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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Apr 20. 2022

"불타오르지 않는다"는 이효리 너무 X100 공감했다.

친구가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남녀 주인공이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적잖게 충격을 받아 시름시름 앓을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친구를 위로하며 말했다.


"그건 새드엔딩이 아니라 해피엔딩이야. 만약 결혼했다고 생각해 봐. 애틋하고, 없으면 못 살겠다 싶은 그런 거 다 없어지고 결국은 훤해지는 이마 면적이나 늘어진 뱃살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서로에게 심드렁해지는 거야."


친구는 (결혼 생활을)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무릎을 탁! 치며 "옳다. 옳아. 그 둘은 그렇게 되면 안 돼... 언제까지고 아름답고 열렬한 사랑의 아이콘으로 남아야 해"라고 말하며 냉커피를 후루룩 마신 뒤 '캬아~' 하고 슬픔을 깔끔하게 털어냈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에 난데없이 빠진 이유가 용솟음치는 사랑의 감정을 주인공 남녀를 통해 대리만족한 것 같다고 실토했다. 친구도 나도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다. 아니 실은 너무 좋아서 문제다. 너무 사랑하는데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왜 그 있지 않은가. '막, 거시기, 저시기' 한 감정이 안 생기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출처_서울 체크인 티빙 오리지널

얼마 전 이효리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한 프로그램에서 말한 적 있다. 남편을 너무 사랑하지만 불타오르지가 않는다고. 자극을 위해 스타킹도 사보고 뭔 짓을 해봐도 어렵다고... 나는 이효리의 말을 너무X100 공감했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남편도 나를 사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더 더 더 깊어진다(강한 긍정은 강한 부정... 이 아닐 거야). 그 사랑은 부비대고 쪽쪽 대고 싶은 차원을 넘어 육체를 초월한 성스러운 사랑으로 격상되었다. 스킨십으로 사랑을 확인하려 드는 애송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 그런데,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이제 우리 나이 마흔 몇인데... 좀 더 뜨거워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따뜻한 물에 몸 담근 개구리가 멋모르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처럼 우리의 거시기 저시기한 감정도 편안하고 안락함에 길들여져 멋모르고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깨워야지. 죽어간다는 걸 자각할 수 있도록. 다시 팔짝팔짝 뛰어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나는 찐하고 격정적인 감정을 일깨우기 위해 일상의 온도를 후끈 높여보기로 했다. 어떻게? 스킨십으로.


그러고 보니 아이들과 입 맞추고 안아주고 살 부대 끼는 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해왔으면서 남편과의 스킨십은... 생각만으로도 쑥스러운 지경이 됐다. 매일 회사일과 육아에 방전된 배터리 둘이서 뭐 얼마나 스파크가 튈까? 하지만 사랑도 노력이다. 나는 남은 에너지를 불태우겠다는 일념으로 남편에게 다가갔다.  


소파에 앉아있는 남편 옆에 착 붙어서 "우리 남편 손이 많이 텄네" 하며 핸드로션을 발라주고, 머리가 왜 이렇게 무겁지? 하며 어깨에 스을쩍 기대었다(아주 자연스러웠어!). 아이들에게 뽀뽀! 한 다음에 남편에게도 공평하게 뽀뽀! 잘 한 일이 있으면 엉덩이도 한 번씩 토닥여 주고, 드르렁 드르렁 코 골며 자는 남편의 머리도 쓰담쓰담해주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좀 오버해서 와락 안아주기도 했다.  


평소에  하던 짓을 하자니 나도 민망하고 남편도 당황해 하는 듯했지만 그것 또한 시일이 지나니 자연스러워졌고 남편도 은근히 즐기는  보였다. 살을 맞대고 아직 봐줄 만하다고, 멋지다고, 주문을   말하니, 내가  주문에 내가 걸려든 걸까? 눈가 주름이  처지긴 했지만, 정수리가 허전하긴 하지만, 그의 체취를 맡으며 '맞아,  사람 내가 한때 그렇게나 앵기고 싶어했던 남자였지'라는 기억이 서서히 떠올랐다. 연애 때의 세포가 포슬포슬 살아나는 것도 같았다.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어느 날, 나를 벽으로 거칠게 확 밀치고 도톰한 입술을 내 코 앞에 들이대며 "우리 사랑은 식지 않았어!"라고 '두근' 거리게 해줄 줄 알았는데...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넙적다리를 벅벅 긁으며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요즘 뭐 사고 싶은 거 있어?"


기껏 애정의 온도를 높이려고 쑥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힘들게 스킨십을 했더니 물질이나 밝히는 여편네로 여기고 말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값비싼 명품백 같은 거 말하고 안 사주면 앞으로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고 하려다 "그런 거 없어!" 하고 팩 토라져 버렸다.


이후부터 내 스킨십의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자 남편은 애가 닳는 표정으로 "왜 오늘은 손 안 잡아줘?", "얘들아 엄마랑 아빠 뽀뽀한다~", "나도 칭찬해줘" 하며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닌가. 격정적인 사랑의 감정은 개뿔, 이렇게 유치하게 마무리 되나 싶었지만 그 옆에선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감정이 포르르 피어나고 있었다.  


우리가 손잡고 뽀뽀하면 아이들은 꺄아악! 괴성을 지르면서도 꺄르르 웃는다. 막내는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자기도 해달라고 볼과 이마를 들이민다. 사춘기 아들도 동참시키려 하면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친다. 아이가 웃는다. 남편도 웃는다. 집이 형광등을 하나 더 단 것처럼 환해진다.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것처럼 뚝 떨어져 제 할 일을 하던 옛날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체코 카를교에 있는  조각상은 멀리서도 어느  부위만 도드라지게 보인다.  부위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 탓에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그렇게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스킨십의 진짜 효과가 아닐까?


자꾸 만져주고 쓰다듬어 주면 사람도 조각상도 녹슬지 않는다. 환하게 빛을 내게 된다. 뱃살 두둑한 주꾸미도, 정수리 훤한 오징어도, 억지로라도 만지고 보듬다 보면 서로에게 만큼은 다시 반짝이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어쩐지, 스킨십 요법 이후로 밖에 나가면 남편이 더 잘 보이더라니.


중년의 기혼 여성이여! 남편과의 스킨십을 두려워하지 말자. 한때는 조인성도 송중기도 현빈도 안 보이게 했던 남자라는 걸 잊지 말자. 그리고... 남편이 '뭐 필요한 게 있냐?'고 묻거든 값비싼 물건의 이름을 대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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