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참 거지 같네.
아이들에게 건강식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싱싱한 콩나물을 깨끗이 씻어서 보그르르 끓는 물에 넣어 국을 끓이고 냉동고에서 꽝꽝 언 고등어를 꺼냈다. ‘고등어 찜을 해야겠다~!’ 오래만에 요리 열정에 스위치가 켜졌는데 앗! 요리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부랴부랴 안방에 충천해 놓은 핸드폰을 가지고 와서 젖은 손을 탈탈 털며 ‘백종원 고등어찜’이라고 적었다. 진간장, 맛술, 설탕, 간 마늘, 고춧가루를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화면에 적힌 대로 한 스푼, 두 스푼 따라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주방은 금세 어지러워졌다. 하라는 대로 하랬더니 그럴싸한 맛이 났다. 어지러운 것쯤은 눈감아 줄 수 있는 아량도 생겨났다. 나름 좋은 엄마가 된 것 같은 흥에 취해 주방을 분주하게 오가고 있는데 딸아이가 언제 왔는지 모르게 내 옆에 서있었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왜 내가 다 싫어하는 것만 했어!”
“왜에 전엔 잘 먹었잖아~”
아이를 구슬리려 다정히 말했다.
“아이 진짜, 난 수제비 먹고 싶은데!"
짜증 섞인 딸아이 말을 듣자마자 내 안에 즐겁게 나팔을 불던 천사가 신경질적으로 나팔을 내동댕이치고 표정을 싹 바꾸었다.
“그럼 먹지 마. 그런데 이제 와서 수제비를 할 수 없으니 네가 먹고 싶은 거 찾아서 먹어”
“ 싫어~~~~ 어어어 어~~~”
“ 그럼 김 줄 테니까 밥이랑 먹던가”
“ 그것도 싫다 구우~~~”
천사가 급 발진했다
“그럼 쳐 먹지 마!!!!”
아이도 아이지만 나 역시 당황했다. 쳐, 쳐, 쳐, 먹지 말라니... 너무 갔다 싶었지만 사과할 마음은 없었다. 나는 한층 더 데시벨을 올려 말했다.
“먹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허으윽 허으윽.....”
아이는 괴물 같은 소리를 내더니 발을 쿵쿵대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결정타로 꽈앙!! 하고 문을 닫았다.
“저놈에 지지배가 진짜!!!!”
불러내서 예의 어쩌고 저쩌고 할까 하다가 그냥 참았다. 내 옆에선 콩나물국이 끓어 넘쳐 ‘치이익’ 하는 소리를 냈다. 내 마음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싱크대 군데군데 뻘겋게 튄 양념장 역시 내 마음에 난 스크래치 같아 딱 꼴 보기 싫어졌다.
이때,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 온 아들이 신발을 ‘휫~휫~’ 벗어던지고 들어오며 기대하는 얼굴로 “엄마 밥 뭐야?”라고 물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그릇을 ‘쾅’하고 놓았다.
딸아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멍뭉한 아들은 눈치 없이 자꾸 배고프다고 밥 밥 거려서 더 화가 났다. 좀 전까지만 해도 좋은 엄마라고 자아도취 된 여자는 사라지고 분노조절 장애 진단을 받은 것 같은 엄마만이 불 꺼진 침대 위에서 자책하며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좀 더 좋게 말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먹고 다음에 네가 좋아하는 수제비를 해줄게라고 다정하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큰 북 두드리듯 자기반성이 나의 가슴을 둥둥 쳐댔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런데 좋은 엄마란 무엇인가? 무조건적인 희생인가? 따뜻한 말 한마디인가? 친구 같은 엄마인가? 그렇다면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긴 글른 것 같다. 어떤 때는 누가 나의 삶을 관찰 예능으로 찍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 행동, 표정... 늘 심판받는 기분이 든다. 매일, 매 순간, "엄마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엄마로서의 품위가 손상되었군요.""당신이 진짜 엄마 맞습니까?"같은 지적과 평가들. 앞뒤 없는 악플을 받는 느낌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으므로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엄마도 그런 용기를 내어보고 싶다. 매 순간 좋은 엄마가 되기 어려우니 ‘나쁜 엄마가 될 용기!’ 말이다. 엄마도 험한 말을 할 수 있고, 소소한 비행도 저지르며, 맛있는 걸 혼자 홀랑 먹어버릴 수도 있다. 누가 그것에 대해 욕을 하면 ‘나쁜 엄마가 될 용기’를 가지면 된다.
나는 오늘 아이에게 ‘쳐 먹어’라고 했지만 건강식을 먹이려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노력하던 내 노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 조금만 괴로워하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얼른 일어나 다시 밥을 차리자. 나 혼자 내린 자기 합리화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기분이 조금 덜 거지 같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거지 같은 기분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왜 기분이 나쁠 때 거지 같다고 하는 걸까? 듣는 거지 기분 나쁠 수도 있지 않을까? 거지라는 프레임도 엄마와 마찬가지로 편견과 모순으로 가득한 것 같다. 거지라고 다 기분 나쁘게 사는 게 아니라 진정 무소유를 실천하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괜히 거지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이 든다.
나는 딸에게 먼저 다가가 “미안해, 엄마가 말이 너무 심했지? 앞으로 니 입맛에 맞는 저녁 메뉴를 정하도록 노력할게”.... 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굶겼다. 그래도 자책하지 않았다. 나쁜 엄마여도 괜찮을 용기를 내어보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