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학교가 사라지면>을 펴내며
어릴 적 내 별명은 '조 토끼'였다. 엄마가 매일 양 갈래로 머리를 깡총하게 묶어 주었는데 그 모습이 토끼 같다며 선생님이 지어주신 별명이다.
종종 걸음으로 20여 분을 가야 닿을 수 있었던 신광초등학교는 전교생이 채 40명이 되지 않았다. 폐교가 논의되던 해에는 신입생이 없어서 2, 3, 4학년이 함께 수업을 했다. 그때 나는 5학년이었다. 1년만 더 있으면 신광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데 다른 학교 졸업생이 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5학년 때 폐교된 신광초등학교
▲<학교가 사라지면> 그림책 일부 장면 ⓒ 자상한 시간
담임 선생님은 학교 바로 옆에 마련된 사택에서 지내셨다. 동네 어른들은 밑반찬과 과일을 몰래 문 앞에 두곤 했다. 게다가 총각 선생님이 노총각이 되도록 놔둘 리 없는 어른들은 적극 중매를 서 친구의 사촌 언니와 결혼에 이르게 했다.
어느 가을엔 전교생이 뒷산에 도토리를 따러 갔다. 조막 손으로 도토리를 몇 포 대씩 주워 담았다. 이유는 몰랐으나, 수업을 안 해서 좋았고, 친구들과 산 속에서 눈치껏 놀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해 여름, 교실마다 키 큰 선풍기가 한 대씩 놓여졌다. 선생님은 우리가 주운 도토리를 팔아서 산 거라고 말해주셨다.
우리는 10인용 낮은 나무 탁자에 둘러 앉아 점심을 먹었다. 선생님도 함께였다. 집안 대소사 모두 선생님에게 고하는 친구들 속에서 나는 늘 말문 열기를 어려워하는 아이였다. 그날은 선생님이 먼저 말을 걸어주셨던 걸까? 내가 읽은 동화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너무 재밌다고 해주셔서 그다음 날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지어냈다.
시에서 주최하는 백일장 대표로 뽑혔다. 전교생 중에 글 대표 1명, 그림 대표 1명이 나가는 대회였기에 어깨가 으쓱했다. 사실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선생님이 사주신다는 자장면이 더 기대됐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날의 내가 쓴 문장은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첫 줄에 '"빵빵" 소리가 났다'라고 썼다가 차에서 "빵빵" 하고 울리는 그 기계의 이름을 몰라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은 '클락션'이라고 알려 주셨다. 그래서 '"빵빵" 클락션 소리가 났다'로 고쳐 썼다. 그 글로 나는 장려상을 받았다.
부채 춤 연습, 교실 나무 바닥에서 하던 공기 놀이, 흙 바닥 운동장에서 했던 오징어 게임 등... 작은 학교에서 작은 일들이 매일같이 포슬포슬 쌓여갔다.
폐교 소식이 들리자, 내 소복한 일상도 먼지처럼 흩날려가는 듯했다. 윗 집 친구는 이참에 아예 시내로 나간다고 했다. 가족 같던 선생님과 헤어진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폐교 후, 나는 스쿨버스를 타고 옆 마을 학교에 다녔다. 아쉬운 마음과 동시에 2층 학교에 간다는 설렘도 존재했다. 5학년이 될 때까지 2층 짜리 건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어린 눈에 그렇게 '삐까뻔쩍' 해 보이던 그 2층 짜리 학교도 얼마 전에 가보니 전교생이 19명이라고 했다. 나의 두 번째 학교도 폐교 위기의 학교가 된 셈이다. 내가 나온 면 소재지에 유일한 중학교도 10여 년 전에 문을 닫았다.
신광 초등학교는 폐교 후 캠핑장으로, 중학교는 아예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주민 건강 센터가 들어섰다. 친정으로 가는 길마다 이 학교 터를 지나가는데 새로 선 건물을 볼 때마다 가슴 한쪽이 허전해진다. 학교가 사라진다는 건 왠지 내 학창 시절을 통째로 도둑맞는 기분이 들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제의 일은 새까만데, 오랜 과거의 일은 또렷하다. 하지만 그 기억들 마저 언제 사라질지 몰라 서둘러 글을 썼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그림책 <학교가 사라지면>이다.
▲학교가 사라지면 그림책먼 곳의 누군가가 아닌, 바로 우리 곁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사라지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 ⓒ 조영지
<학교가 사라지면>은 어린 시절의 내 경험과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과거 내가 겪은 일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아이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올해만 해도 전국의 초중고 49곳의 학교가 사라지고 서울 내에서도 6곳의 학교가 폐교 예정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의 나의 걱정과 쓸쓸한 마음이 다시금 떠오른다.
내 아이들은 학급 과밀이 심한 신도시에 산다. 학교도 빈익빈 부익부처럼 학생이 몰리는 곳에만 몰린다. 이곳에서는 학생이 너무 많아 학교를 코앞에 두고도 다른 학교로 배정 받는 경우도 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학생이 없는 풍경을 잘 체감하지 못한다.
나는 이 둘을 이어주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아, 학교가 사라진다는 건 이런 마음이겠구나...' '새로운 학교에 간다는 건 이런 용기가 필요하겠구나.' 폐교 위기의 학생들에겐 너무 걱정하지말라고,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위로도 전하고 싶었다.
세상은 유독 빨리 바뀐다. 어제의 건물 자리에 오늘은 다른 것이 들어선다. 글과 그림도 순식간에 만들어지고 친구보다 스마트폰에게 더 마음을 주는 시대다. 그런 세상 속에서도 분명, 사라지는 자리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고, 그것을 옛 방식으로 추억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처럼.
이 책 역시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누군가에게 조용히, 따뜻하게 가닿기를 바란다.
*오마이 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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