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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Aug 28. 2020

마지막 계단에서

고생길의 끝인가 시작인가

2013년 어느 날씨 좋은 5월에 런던에 출장을 왔다가-런던은 사실 우울한 날씨가 80프로인 걸 깊이 생각하지 않고- 엄마 말로는 시부적 2015년 가을에  다시 런던에 왔다. 영국에 온 지 4년 5개월 동안 대학원과 변호사 수습기간이 마음 졸이며 지나갔다.


01. 마지막 관문, 인터뷰 

수습변호사들은 2년간의 수습기간을 거치는 동안 Professional Skills Course ("PSC")와 시험을 통과하고, 회사별로 상이한 파이널 인터뷰와 평가를 거쳐 통과한 후, 변호사 신청 서류를 변호사 협회에 제출하여 정식 변호사가 될 수 있다.


나는 PSC 결과를 수령하고, 법원에서 변론 경력을 세 번 이상 쌓고, 2년간의 트레이닝 일지를 정리하여 회사의 대표 파트너들에게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내고, 시간과 날짜를 컨펌받아 열한 시 반부터 점심시간을 끼고 한 시 반까지 두 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 생각만큼 준비도 별로 못하고, 일 생각에, 인터뷰 긴장감에 네시 반에 일어난 대로 얼굴도 엉망 옷은 블랙 드레스 블랙 재킷. 두 시간의 인터뷰는 말할 것도 없이 지치고 힘들었다.

 

내 분야 관련 법들, 판례들

SRA code of conduct

Compliance

Civil Procedure Rules

Bolam Bolitho Denton 등등 판례에서 유래된 legal test 들


파트너 세명이 돌아가며 난타전으로 질문을 해댔다. 한 75프로 맞았나? 자존감이 바닥이 되고 파트너들도 입술이 말라갈 정도로 녹초가 되고서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사장은 변호사협회에 내 변호사 등록서류를 서명해서 보내자는데, 내 수퍼바이저는 'This interview was not up to my expectation. I expected more from you' 이런 못된 소리를 해댔다. 뭐지? 이건 적이야, 아군이야?


수퍼바이저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하기를, 너의 옵션은 지금 sign off 하고 한 달 뒤에 다시 인터뷰해서 체크하는 것, 그리고 2주나 한 달 뒤에 다시 인터뷰하고 sign off 하는 게 있단다. 파트너들이 두 시간 후에 결정해서 알려주겠다고 하기에  결국 결정을 못 내고 한 시 반에 사무실에 돌아왔다. 먼저 변호사가 된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항상 겸손하게 공부하는 자세를 만들어주려고 절대 바로 서명해서 등록시켜주겠다는 확인은 안 해준다고 했다. 걱정 말고 준비하라는 응원을 받고도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정말 끝까지 수퍼바이징 파트너와의 관계는 애증의 그 무엇이다. 이렇게 까다롭게 하는 사람은 우리 수퍼바이저이지만 또 그렇게 해서 다른 파트너의 공격적인 질문은 좀 덜 받았나 싶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름이 변호사 협회에 등록된 날에는 우리 수퍼바이저가 긴 이메일로 회사 파트너들을 모두 참조로 넣어, 자기가 받아본 트레이니 중에 최고였다고, 너의 수퍼바이저라서 행운이었다고 축하해줘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02.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무튼 마지막 날 등록 원서를 보낼 때까지 나는 가슴이 불타는 것처럼 답답해져 왔다. 중간에 클라이언트 한 명을 만나고 돌아오니 세시, 수퍼바이징 파트너를 보러 가니 아무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사인해서 보내잔다. 이제까지 수습변호사로서 해왔던 아침마다 보내는 새로운 판례 요약 업데이트나 다른  잡다한 과제는 그만해도 되고, 월급은 이름 올라간 다음 달에 다시 리뷰하는데 얼마 정도 수준에서 협의한다고 설명해주었다.


아, 기뻤던가. 너무 오랜 고생 끝이라 얼떨떨했던 것 같다. 지난 4년동안 손에 기회를 쥔 것 같은 순간 파도에 흩어지는 모래알처럼 눈앞에서 없어지는 경험을 수없이 해와서, 사실 이름이 변호사협회에 오를 때까지 기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가족 카톡창에 소식을 알리고, 친한 변호사들과 패러리걸, 비서에게 메신저로 알려주었다. 다들 뜨겁게 축하해주는 따뜻한 나의 사람들. 사무실에 있는 친구 변호사에게 여권과 부가 서류 공증을 부탁해서 등록 원서, 트레이니 교육 수료 및 시험 통과 증명서, 변호사 협회에 신청료 및 자격증명 발급료 납부 증명과 함께 당장 보냈다.


03. 심사 그리고 발표

한 달쯤 지나면 변호사 협회에서 발표가 뜬다. 오후 세시면 해당일에 임용되는 변호사 명단이 쭉 뜨는데 회사 단체창에서도 축하해주고 나중에 리셉션에서도 소리 지르고 박수쳐주고, 책상에도 막 축하 메시지를 남겨 놓는다.

이름이 올라간 날에는 김부장이 회사로 꽃을 보내 축하해주었다


변호사 협회에서 심사 중에 이상이 있으면 미리 통보해주기 때문에 안될 사람들은 미리 안다지만, 두시부터는 마음은 온통 발표에 가 있었다. 세시, 명단에 이름을 확인하고, 아빠, 엄마, 김부장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회사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꺅 소리 지르면서 달려와 기뻐해 주는 비서를 안아주었다. 


수습이 끝난 후 회사에서 변호사 계약 offer를 주었고, 또 내 건강 문제로 한국에서 수술을 받느라 몇 달이 쉽게 지나갔지만, 곧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웃는 얼굴로 2년을 다녔지만 노예 같은 수습 생활은 칭얼거림 이상의 고통이었다. 나와 같이 고통받는 트레이니들에게서 위안을 찾는 가학적 시간은 꽤 오랫동안 마음에 PTSD처럼 남아있을 것 같다. 아무튼 끝은 오고, 난 더 나에게 맞는 자리로 가니 이제 된 것이다. 인생의 숙제는 참으로 끝이 없어서 자세를 낮추고 겸손할 수밖에 없다. 관 뚜껑 닫을 때까지 인생은 모르는 거라고 그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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