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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Jun 21. 2020

회사 사람들 이야기

다들 자기의 컬러로 인생을 만든다


01. 외국인 수험생 아저씨의 눈물


요즘 들어 사람의 됨됨이가 표정과 태도에 나타나는 것이 참 무섭고도 편리함을 알아가고 있. 그래서 눈으로 보는 내 앞의 사람들의 내러티브가 글보다 힘이 있지! 우리 회사가 전통적으로 하고 있는 수습변호사의 최종 임용 전 인터뷰도 그런 걸 보려는 건지, 나에게는 목에 들어오는 칼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지만.


작년 한번 떨어진 후 QLTS(다른 나라 변호사들의 영국 변호사 자격시험)영국 변호사 명단 발표에 이름을 올린 좀 친한 아시아 어느 나라 변호사 A (앤디 정도로 해두겠다)도 그랬다. 앤디는 얼굴에 '나 착함'이라고 씌여진, 그리고 아들이 벌써 둘이나 있는 나와 동갑인 아저씨인데, 우리 회사의 자유방목형 매니지먼트와 피 튀기는 소송업무로 흰머리가 늘었어도 웃음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소송 담당이었다. 5점 차이로 첫번째 QLTS에서 떨어지고 가족들은 런던 밖 생활비가 싼 도시에 두고 혼자 패러리걸로 런던에 살며 회사를 다니는 일년동안 그의 공부가, 마음이, 생활이 쉬웠을 리가 없다.


호사 협회의 시험 결과 발표가 난 날, 이 다 큰 아저씨가 복도에서 아빠랑 전화하며 우는 모습을 마주쳤다. 이 마지막 단계까지 오는 시간은 이렇게 모두에게 나름의 의미로 고통스럽다. 앤디는 가족이 있는 소도시로 돌아가 소송 전문 로펌에 들어가 잘 지내고 있다.


02. 다른 수습변호사들

2019년 8월 정식 변호사 등록 (qualify) 예정인  수습 변호사들의 종 평가 인터뷰가 있었다. 나보다 조금 앞에 들어온 아이들. 파트너 세명 이상이 앉아 수습 변호사 한 명을 앞에 앉혀놓고 두 시간 정도를 인터뷰하는 -괴롭히는- 시간.


이 인터뷰가 끝나면 이틀에서 일주일 정도 사이에 회사 파트너회의에서 검토 후 개인에게 결과를 통보해주고, 변호사 협회에 제출할 정식 변호사 등록 서류에 회사 대표변호사가 서명해서 보내준다.  서류 제출 전까지는 수습 변호사는 변호사 협회에 등록되어있는 수습 변호사로 관리는 받지만, 독립적으로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거나 공식적으로 누구를 supervise 하는 직책을 맡을 수 없다. 이 인터뷰는 2년의 수습 변호사 계약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단계이니 우리에게 이 의미는 돈과 자유로 가는 문을 여는 계단의 마지막 한칸이랄까. 


드문 일이지만, 변호사협회 규정상 회사는 6개월까지 트레이닝을 연장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 우리 회사에서는 트레이닝 기간 중에 2-3개월 probation받아 그만큼 수습 기간이 연장된 사람은 있지만 마지 인터뷰를 통과 못해서 연장된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7-35살의 2년차 제일 독기 오를 시기의 수습변호사들이 기죽은 모습으로 일주일여를 말을 잃고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는 건 남일 같지 않았다.

나랑 비슷한 나이의 -수습으로는 꽤 늙은- 남자 수습 변호사 벤자민(가명)은 자기 삼촌네 로펌에서 패러리걸을 하다가 우리 파트너들이 좋게 봐서 트레이니로 데리고 온 케이스이다. 반전 사연을 감추고 사는 벤자민은 요즘은 정말 칼같이 각 세운 잘빠진 수트에, 약간 짜증 나지만 벤자민 꺼인지 딱 알아차릴 향수에, 머리를 잘 세워 이마를 까고, 양복 포켓스퀘어 스카프도 항상 하고 다니는 변호사스러운 아이다. 하지만 얼굴에 상처가 있고, 길에서 살아본 적도 있으며 마약도 팔아본 적 있다고. 이상한 건 우리들과의 관계도 좋고 파트너들이랑 시작도 좋았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파트너들이랑 으르렁거리느라 회사 생활이 순탄하지 않다.


 벤자민은 첫 번째 변호사 임용 인터뷰를 망치고는 아무 말도 없이 풀이죽어 2주를 보내다가 두 번째 인터뷰 날짜를 받았다. 두 번째 인터뷰 후에는 일주일 정도 결과를 기다렸는데, 자기는 회사에 밉보인 게 많아서 여섯 달 연장될 거라느니 딴 회사를 알아봐야겠다느니 세상 근심 걱정을 다 늘어놓더니, 드디어 회사에서 sign off를 받고, 아마 우리 회사가 요즘 일이 너무 많아져서 qualified solicitor가 더 필요해서 통과시켜준 것 같다고, 뭐 그래도 이제 결과를 받았다고 행복해했고.

반면 수습 일 년 차부터 실력도 없는데 밑에 패러리걸을 두 명 붙여줘서 회사에 소문이 많던 여자 트레이니 샬롯(가명)도 있다. 샬롯 비서들이 best dressed lawyer award도 만들어줄 정도로 옷에 신경을 많이 쓰고 머리도 항상 완벽하게 세팅해서 출근을 하는 아이다. 그녀는 변호사 임용 인터뷰 날 입술밖에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쨍하게 새빨간 레드 립을 바르고 몸에 딱 붙는 미디스커트를 입고 와서, 자기는 대답이 막히면 자기 입술을 보게 립스틱 컬러를 고른 게 오늘의 전략이라고 신박한 접근을 하더니, 인터뷰 후 이틀 만에 파트너들의 sign off를 받고 바로 두바이로 일주일 휴가를 떠났다. 인생은 쉽게 풀리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히.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 Training contract 찾기, 한 달에 한 번은 꼭 눈물 날 일이 있었던 첫 열 달, 무대공포증을 안고 선 첫 법정 변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도 페이드 아웃되는 sign off 순간에 선 친구들이 부럽다. 하지만 파트너들에게 영혼까지 털릴 듯 쪼임 당하는 벤자민의 모습을, 자기 파티션에 앉아 눈물 질질 짜는 샬롯의 모습을 봤기에, 얘네들이 결국에는 이 날에 다다를 수 있어서 참 좋다.


03. 피자 배달부에서 파트너가 된 나의 보스

나의 보스-데이빗이라고 부르겠다-는 변호사가 된지 8년이 되었고 우리회사 파트너들 중 하나이다. 데이빗은 변호사가 된 후 5년만에 파트너가 되었는데, 업계에서는 꽤 빠른 편이다. 그는 33살에야 변호사가 되었는데 지나온 이력이 피자 배달 등 다양하고 얼굴에 있는 흉터도 심상치 않다. 가족들과 늦은 이민을 와서, 로스쿨을 다니며 여러 배달일을 거쳐 우리 사장 아래에서 수습변호사를 했고, 빠른 승진을 거쳐 파트너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데이빗은 나의 늦은 시작을 많이 응원해주었고, 꽤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다. 하지만 성공 지향적인 사람들이 많이 그렇듯 그는 변호사들 중에서도 특히 돈을 밝히고, 집요하고, 가차없이 냉정하다. 그래서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몇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들 금방 그만두어 요즘 우리 보스의 골치가 아프다. 자기 혼자 달려가는 사람들의 단점은 밑의 사람을 챙기지 못하는 것이다. 밑의 아이들이 질문이 있을 때마다 대답해주는 대신 질문폭격을 날리고 답을 가져오라고 닦달하는 나의 보스는 앞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새로운 사람들을 채용하고 빈 자리를 매꾸는데 쓰게될 것 같다.


04. 자기 이름을 더럽히는 회사 선배

회사에서 drink reception 외부 행사가 있어 같이 일하는 선배와 런던 템즈강변 어느 랜드마크 건물의 높은 층에 있는 식당에  적이 있었다. 그는 열여덟살이 어린 부인과 2년전 결혼한, 나보다 꽤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와인 서너잔을 마신 후 그는 갑자기 나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너와 일하는 것이 좋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너를 사랑하는 것 같다는 둥 당황스러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동료로서 우리는 좋은 팀이다, 정도로 화답해줬는데,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며 손을 잡고 난 너를 정말 사랑한다고, 5년전에 우리가 만났으면 너와 결혼하자고 했을 거라며, 충격적인 말을 이어가며 스킨십을 했다. 당황한 나는 불편하다고 이야기하고, 대충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집에 가는 길까지 그가 따라왔다. 그는 남들은 신경쓰지 말고 자기만 보라고, 술도 취하지 않았는데 술주정같은 말을 이어가며 나를 꽉 잡고 보내주지 않았다.


어찌어찌하여 무사히 집에 오고, 충격에 하루를 회사에 나가지 못한 이후에 회사에 사건을 리포트하고 알게 된 것은 그가 이전에 성추행으로 재판까지 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애시당초 왜 그와 같이 일을 한 내가 그런 백그라운드를 알지 못했는지, 회사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지만, 수습변호사로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괜히 문제를 일으키고, 아직 변호사 정식 등록도 마치지 않았는데 법정 사건에 기록이 남아 괜히 임용 신청서류에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 차원의 경고와 징계로 이 일은 마무리했지만 아직도 회사에서 그를 마주치면 왜 인생에서 많은 것을 이루고도 존중받지 못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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