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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May 31. 2020

빙그레썅년

두번째 회사에서

01. 바닥 밑에 지옥 있다

2017년 늦은 가을, 때아닌 철도 대란으로 거의 대부분의 열차가 취소된 킹스크로스 역은 기차를 기다리다 노숙하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가장 필요한 짐 두개를 낑낑대며 입석으로 맨체스터와 런던을 오가며 첫번째 직장에서 일하는 사이 런던에서 새로운 회사들과 인터뷰 세개를 마쳤다.


졸업 2주 전 극적으로 수습변호사로 취직해서 이사까지 갔지만, 맨체스터 회사 사장은 비자 문제에 문외한이라 진전이 전혀 없었고, 내가 학생비자가 끝나기 전에 왜 취업비자 신청을 해야하는지, 안하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 비자 수속을 하고 돌아와야하고 두세달이 걸릴 거라는 것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지 않아서, 안그래도 회사가 바쁜 와중에 진전이 미미했다.  학생비자만료일이 다가오는 와중에 다급함을 얹은 기깔나는 커버레터를 완성하고, 비자 스폰서십 라이센스가 있는 로펌 리스트를 영국 이민국 홈페이지에서 뽑아서 집중적으로 CV 와 커버레터를 뿌렸다. 맨체스터 회사에는 비자문제가 해결되면 한국에서 신청을 마치고 돌아오기로 한 후, 학생비자 만료 전날 조금 일찍 퇴근하고 런던에 돌아와 인터뷰 세개를 몰아서 봤다. 그리고 두군데서 합격 이메일을 받았다.


결국 이렇게 비자 문제로 한국에 돌아가 연말을 보내고 런던 북쪽에 있는 나의 작은 스튜디오로 돌아가게 되었다. 한국으로 가는 마음은 착잡했다. 아빠는 그정도 애썼으면 이제 그만 됐다고 했다. 맨체스터에 이사간다고 빼놨던 짐을 한국에 있는 동안 연락하여 다시 돈주고 대여하는 보관 창고로 보내고, 이전 런던에서 살던 스튜디오 주인에게 연락해 다시 예전 집에 6개월만 들어갈 수 있냐고 하니 좋다고 해서 계약을 마쳤다. 맨체스터 집은 계약 보증금 800파운드 정도를 날렸지만, 맨체스터 회사에서 제때 비자를 받아주지 못해 계속 다니고 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무실 바깥 풍경.

02. 두번째 회사로

한겨울 돌아온 런던은 내 편같지 않았다. 팍팍했다. 런던 시내 Blackfriars에 있는 두번째 회사수습변호사(trainee solicitor)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패러리걸(paralegal)이 이미 많이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굴러들어온 애가 패러리걸 경력도 없이 수습변호사 되니 텃세가 이루 말할 수 없었. 나에게 일을 시키려는 사람들 말고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일은 미친듯이 많았다. 예전 직업도 싱가포르와 유럽에 카운터파트가 있어서 야근이 더러 있었는데, 로펌에서는 일이 끝나는 느낌은 전혀 없고 그냥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정도로 오늘 안하면 목에 칼이 들어올 일만 쳐내도 하루가 꽉 차버리고  말았다. 


옮기고 첫날부터 다음주 hearing인 케이스를 받아서 bundle 여섯개 만들고 첫 금요일에 새벽 두시반에 퇴근했다. 새벽 런던 사무실 동네라 청소차 말고는 큰길이 한없이 조용한테 맞은편 로펌에서 어떤 아저씨가 나와서 담배타임 중이었다. 첫주는 휴가간 직원들이 많은데다가 밑에 paralegal도 안붙여줘서 점심때 영국 문구점 프랜차이즈인 Ryman에 가서 바인더랑 디바이더도 직접 사와야 했다. 결국 주중에 다 못끝내서 토요일 아침에 윔블던에 있는 파트너네 집 앞에 카페에 가서 검사맡고 열두시전에 스페셜딜리버리로 상대측과 법원으로 보냈다.  누구도 커버레터를 어떻게 써보내는지, 회사로고가 찍힌 레터헤드 종이는 어떻게 프린트하는지, 케이스번호는 무엇인지, 상대방변호사는 누구인지 뭐 하나 알려주지 않았고, 파트너는 지독하게 무심했다.


울고싶은 하루하루였다. 이때만 해도 이런 과정이 스트레스라 식욕도 없고 생존을 위해서 먹는 수준인데, 대충 꼽아보니 하루에 커피 두잔 사과 한개 쑥떡 한조각 너트 약간 정도 먹으며 산 것 같다.

새벽 두시 런던 시내에서 퇴근할 택시를 기다리며.

두번째 주에는 Leeds에서 첫 법원 항소심 출석이 있었다. 법원은 혼자 갈 때가 더 좋다. 이번 hearing은 barrister(법정 변론하는 변호사)가 이미 선임되어 있어서 나는 instructing solicitor로 필요한 것만 짚어주면 된다. 캐리어 끌고 번들  (bundle- 소송 서류철)이랑 원본 서류 모두 담고 새벽 다섯시반에 집에서 나와 다른 도시로. 증인 여러명이라 우리쪽 증인 심문에만 세시간이 넘게 걸렸다. 영국에서는 어떤 주니어 변호사가 서류가 담긴 캐리어를 기차에서 잃어버린후 개인적으로 찾다가 일주일 후에야 고객과 회사에 분실 사실을 보고한 바가 있는데, 보안에 취약했다는 과실로 변호사 자격을 상실한 바 있어, 다 끝났다고 번들을 버리고 올 수도 없다.


재판은 엉망이었다. 첫 재판이라 긴장한 우리 고객 쪽의 증인이 자꾸 우리 고객의 눈치를 보는 바람에 우리 고객이 퇴장당하고, 이런 행동이 혹시 증인을 매수했는지, 이해관계가 있는지, 판사의 의심을 사서 판결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난 랩탑도 회사에서 아직 받지 않아서 attendance note만 앞뒤로 손으로 서른 세장을 적었다. 마치고 폰을 켜니 파트너가 업뎃하라고 이미 두시간 전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간단히 문자로 답을 보내고 기차로 돌아오는 길에 메일로 정리해서 파트너에게 다시 보냈다. 런던 Euston 역에 돌아오니 오후 다섯시. 사무실에 짐갖다 놓고 다른 일 좀 하고, 여덟시가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마침 영국에 들르러 온 엄마도 집에 혼자 두고 말이다.


퇴근길 런던.

03. 빙그레썅년

알고보니 두번째 회사의 equity partner 한명은 79년생, 내 supervising solicitor는 83년생이었다. 성공의 시간표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나이는 항상 나를 괴롭히는 컴플렉스 같은 것. 기왕 이렇게 할 것을, 나는 왜 좀 더 일찍 결정하고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 인더스트리에 발을 늦게 디뎌 서러운 일이 많다. 긴 하루, 긴 한주, 긴 한달이었다. 고통스러워도 다 추억이 될 순간이리라. 이런 담금질이 있어서 난 이제 방긋 웃어주면서 할  다 하는, 친구말마따나 '빙그레 썅년'으로 자라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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