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마흔살을 앞두고
행복은 내 마음으로부터
01. 회사원의 안식년, 필요했던 고생
회사를 그만두고 맞이한 내 인생의 3막은 다른 차원의 고생길이었다. 하지만 소소한 성과도 있다. 요리가 늘었고, 살이 조금 빠지고 있고, 테니스와 골프를 좀 잘 해보려고 애쓰게 되었고, 여행해본 나라가 11개가 늘어났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남자친구가 생겨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됐다. 직업을 선택하고 거주할 수 있는 나라의 폭이 넓어졌고, 부모님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많은 나라를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그저 현실을 벗어날 핑계이든 회사원 생활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든, 서른세살에 공부를 택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의 인생은 풍요로워졌다. 런던의 작은 방에서 나 자신과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나를 알아갔고, 내가 잘하는 것과 지금 있어야 할 곳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강제로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자존감이 높아졌다. 명상에서도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첫 단계, 그것을 문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두번째 단계라고 하잖아. 나는 혼자 작은 스튜디오 방에 앉아 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이런 시간이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다.
02. 늦었다고 생각할 땐 이미 늦었을지도
요즘은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 따뜻한 응원의 말로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많이들 말하지만, 나의 처절한 경험에 비추어보면 직업을 바꾸는 문제에 있어서는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늦은 게 맞았다. 직업을 구하는 과정에서 항상 더 많이 설명해야 하고, 특히 결혼과 출산을 앞둔 여자로서 나이도 많아 한국에서 로펌을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은 조건이 되었다. 물론 다시 금방 채울 수 있겠지만 투자비용도 컸다. 게다가 늙어가는 부모님은 60대 후반부터 많이 편찮으신데, 그 시기 옆에 있을 수 없는 것도 미안한 일이었다.
모든 선택에는 타협과 희생이 따른다. 소송과 중재로 변호사 3년을 먹고살았지만, 이기는 것이 명확한 케이스는 많지 않았다. 하물며 사람 사는 인생에서 마냥 좋은 선택이 있을 리 없다. 서른 세살의 나에게는 더 좋은 선택이 없었기에 이 길을 택한 것 뿐이다. 욕심이 많고 나이의 부담이 있어 훌쩍 떠나는 용기있는 회사원이 되지 못했지만, 차선으로 유학을 택한 회사원들 중 하나가 되었고, 법 공부를 선택했다.
03. 좀 더 자주 행복한 어른이 되는 길
그리고는 이런 날이 왔다. 미움조차 마음에 인이 박힌 회사에 마음 따뜻한 작별을 하고,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게 됐다. 이제 조금 더 행복한 길이 열린 것 같다. 주말이 지나면 런던을 떠난다. 영국에 온지 딱 5년이 되는 날에 영국을 떠나게 됐다. 집에는 이삿짐 박스와 정리안된 짐들이 굴러다닌다. 그래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머리 아픈 일들이 많이 귀찮지는 않다. 남의 돈 버는 일에 머리가 아플일이 없을리가 없다. 어른이 된 것이다.
그래,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