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틀린 길을 가도 되는 시간
작년 11월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리고 12월에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1 ~ 2월동안 회사에서 하던 일들을 정리와 인수인계 한 뒤, 3월 한달간 수술과 치료를 위해 휴가를 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일이!? 라며 이야기를 푸는게 이 글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해서 더 이야기는 하지 않는게 좋을것 같다.
단지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한달간 쉬었다.
3번째 회사에 오기까지 퇴사 <-> 입사 사이에 항상 여유를 두지 않았다.
쉬어봐야 회사 다닐때와 크게 다르지 않는 생활을 할것이라고 생각했고, 매월 고정비가 빡빡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휴식은 신선했다.
첫 일주일은 수술과 입원으로 병원에만 있어야 했고, 이후 3주는 집에서 쉴 수 있었다.
쉬기전부터 퇴원만 하면 매일 카페에 가서 이것 저것 코딩해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퇴원 다음날 부터는 매일 아침 9시에 카페로 가서 6시까지 코딩하고 책을 봤다.
집에 와서는 저녁을 먹고 잡담을 썼다.
몇몇 분들이 "그럴꺼면 회사에 나오지 그랬냐" 라는 말을 해주셨다.
근데 회사에서 개발하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가 싫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회사에서 하는 개발은 휴가때 하는 개발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개발하다보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길이 있다는걸 발견한다.
그러다가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조금 진행해보고 이 방향으로 가면 문제 해결이 안된다는걸 깨닫는다.
하지만,
아무리 가봐야 틀린게 명확한데도 더 가보고 싶다.
이 방향으로 더 가면 어떻게 되나?
왜 틀린거지?
이대로 쭉가면 진짜 해결이 안되나??
왜 이사람들은 이렇게 한거지?
더 시간을 낭비하고 틀려보고 싶다.
근데 회사에서의 개발은 그럴수가 없다.
틀린걸 발견하는 즉시 바로 그 길을 버리고 맞는 길을 찾아야 한다.
회사에서 하는 개발은 일정이 있기 때문이다.
틀린 길을 계속 가는건 프로젝트, 스플린트 일정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출근 전, 퇴근후, 주말 시간을 사용해도 실제로 짜낼 수 있는 시간이 하루 3시간을 넘기가 쉽지 않다.
7 ~ 8시간을 삽질하고 틀리는데만 온전히 쓸 수 있다는게 이렇게 좋은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사회에서 개발을 시작한지 이제 4년 3개월이 지났다.
그간의 나를 돌아보면 분명 남들보다 정답을 찾는게 느리다.
그래서 이런 마음껏 삽질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매년 5일 ~ 10일 정도는 휴가를 붙여서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