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가장 따뜻한 마음으로 지은 이름

by 조성현

수달이의 이름은 작명소에서 짓기로 했다. 아내가 사주를 재미삼아 보곤했기에 당연히 이름도 그것을 염두한 이름이 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한자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이름이야 뭐든 상관없었으니 그러자고 했다.


수달이가 태어나자 일시(日時)가 작명소에 전달되었고, 작명소에서 사주팔자와 음양오행을 분석한 내용을 문자메시지로 보내왔다. 그게 무슨 내용인지는 전화로 들었다. 수달이의 팔자에는 목(木)이 세 개고, 토(土)가 두 개고, 금(金)이 두 개고, 그런 내용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들어도 모르지만,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종종 사주를 보셨기에 낯설지 않았다.


B1D98B79-8FAD-4149-B3FC-66B867C13A7B_1_201_a.jpeg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어머니는 사주를 종종 보셨다. 특히 자주 가던 곳이 있었는데, 그곳의 역술가는 '도장 선생'으로 통했다. 사주를 본 뒤, 인생이 잘 풀리게 도와준다(고 주장하)는 도장을 파주었기에 그렇게 불렸다. 본인이 만든 도장이 남의 인생과 어떤 연관이 될 수 있는지 아무도 알수 없지만, 듣자하니 그 도장은 꽤나 잘 팔리는 듯 했다.


언젠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도장 선생을 만나고 온 날이 있었다. 도장 선생은 아버지의 과거를 기가 막히게 맞혔다. 문과인데 계산을 잘하는 이과형 문과고, 조직에서 관리자로서 인정받는 팔자라고 했다. 유년 시절에 가족복이 없지만, 자신이 꾸린 가족은 매우 단란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도장 선생이 자신을 꿰뚫어보고 있다고 여겼으리라. 아버지의 메모에는 도장 선생의 말들이 잔뜩 쓰여있었다. 언제쯤 운이 들어올 것이며, 언제는 각별히 조심해라, 따위의 아버지의 미래를 점치는 말들이었다.


그 메모가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십수 년이 지난 뒤었다. 잔뜩 쌓인 아버지의 메모를 정리하던 중에 도장 선생의 예언은 발굴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본 도장 선생의 예언들은 도통 맞는 게 없었다. 나는 그 때 생각했다. 사주팔자라는 건 정말 쓸모가 없구나.


하지만 그 후에도 어머니는 가끔 사주 따위를 보러 가셨다. 동양판 타로 같은 당사주를 보기도 했고, 신점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어머니가 사주를 보고 오면 나도 내심 우리 가계의 미래가 궁금해 그 내용을 물어봤다. 어머니는 웃으며 언제쯤 집이 팔릴 것 같다, 환갑 쯤에는 인생 필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진짜 그렇게 될지 알 길은 없지만, 희망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퍽 만족스러웠다.


가족의 미래가 어두웠던 시절이었다. 가게 영업은 어려워지고 큰아들은 방황하던 시절. 복권이라도 당첨되지 않는 이상,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시절. 생계의 압박에 짓눌린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다퉜고, 철 없는 나는 그것들을 용케 무시하며 압박을 더했다. 그러니 도장 선생이든 부적 선생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희망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인사치레도 좋으니 잘될 거라는 말이 간절하던 때였다.


그러니 어머니는 사주를 봤던 것이다. 그냥 때가 되면 잘될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덕담이라도 들으려고 말이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도장 선생은 우리 가족의 미래를 밝게 점쳤다. 그게 우연이 아니었음을 나는 이제 깨닫는다. 역술가는 행운과 불운 모두 말했겠지만, 어머니는 행운만 귀에 담아 돌아왔던 것이다. 원했던 것은 그것이었으니, 그것을 위해 돈을 지불했으니.




나는 여전히 사주팔자를 믿지 않지만 그것으로 삶의 고단함을 달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과학적이지 않은 믿음들은 분명 개화되지 못한 옛것이지만 오히려 설명될 수 없는 것만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다. 때로는 해결책보다 괜찮아, 잘 될거야, 라는 해결 없는 위로가 더 필요한 법이다.


사실 아내가 수달이 이름을 작명소에서 짓자고 했을 때 내심 마땅치 않았다. 의미없는 사주팔자 따위에 돈을 내는 게 싫었다. 어차피 지을 이름이라면 기왕이면 사주팔자도 좋은 이름이면 더 좋지 않냐는 아내의 말에 수긍했다. 그것은 아이의 안분한 미래를 염원하는 엄마의 마음이었기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하는 초보 부모의 불안을 달래야 했기에 말이다. (게다가 '이름이야 어떻게 지으나 상관없지 않겠느냐'라고 말하면서 굳이 아내의 방식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되는 것이니 그럴 수 없었다.)


수달이의 이름은 정해졌다. 이름에는 우리의 바람이 담겼다. 흐릿하게 시야를 가리는 안개와 먼지를 치워내고, 자신만의 눈으로 앞을 당당히 응시했으면 하는 바람. 수달이는 총명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사주팔자, 음양오행의 완벽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름을 가졌으니 수달이는 이제 천하무적이다. 그렇게 믿으면 그런 것이다.


620C2A67-837B-4BD4-9836-B18540139F29_1_105_c.jpeg
8F8CFE96-A3C4-4629-9CBA-4614ADB36014_1_105_c.jpe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빠의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