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아서 소중한
손녀와 할머니가 모두 애를 쓰고 있다. 손녀는 몸을 뒤집으려고 버둥거리고, 할머니는 인공 관절에 적응하려 엉거주춤 걷는다. 몸뚱이라는 게 참 당연하게 존재하는데, 뭐라도 하나 삐걱거리면 작은 마디 하나도 당연한 게 없다는 걸 그제야 느낀다. 나도 딸처럼 몸을 뒤집으려고 낑낑거리던 때가 있었을 것이고, 어머니처럼 성치않은 다리로 절뚝거리는 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멀쩡히 일어서고 걷지만 그게 멀쩡하게 되지 않을 때가 오면 결국 어머니를 떠올리며 당신의 고통을 알겠노라며 하나마나한 말을 중얼거릴 것이다. 그 때에는 쉬지 않고 몸을 뒤집던 시절의 열성과 당연하게 걷고 뛰던 시절의 활력은 망각의 늪에 빠져 다 사라져있지 않을까.
딸의 성장과 어머니의 회복은 서로를 향하고 있다. 손녀는 할머니를 보러가기 위해, 할머니는 손녀를 보러가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애쓴다. 그 사이에 내가 영상 통화로 둘을 연결시켜준다. 이제 백일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손녀는 스마트폰 액정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에게 미소로 화답한다. 할머니는 손녀가 방긋 웃는 것을 보고는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른다. 손녀의 미소는 천연 진통제로 꽤나 잘 듣는 약이다.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보며 몸이 성해야 사랑도 마음껏할 수 있구나, 생각하는데, 장애를 갖고도 양껏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테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다고 생각을 고친다.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조건을 운운하는 것은 어쩌면 사랑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몸뚱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소홀하게 했던 것처럼, 사랑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밤에 모든 당연한 것들에게 말을 건다. 당연히 있어서 대화하지 못했던 것들. 바라보지 않았던 것들.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 반가운 목소리에 당연한 존재감을 불쑥불쑥 보인다. 내게 이런 것들이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당연한 것들이 점점 사라진다. 그것들만 보듬고 살기에도 벅찬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