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대로 살기

가장 사치스러운 삶의 방식

by 조성현

"집에 미역 어딨어?" 어젯밤, 아내가 대뜸 물었다.

"냉장고 위 선반에 있어. 근데 왜?" 내가 되물었다.

"미역국 끓여주려고."

"미역국은 왜?"

"내일 성현 생일이잖아!"


물음과 대답이 몇 번이나 오가고 나서야 다음 날이 내 생일임을 알았다. 며칠 전에 생일 선물까지 미리 받아놓고는 정작 생일이 다가왔는 줄도 몰랐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은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는 탓에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흐려졌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흘러가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다가올 뿐이다.

그 반복에 가끔 균열을 만드는 일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내 생일이 그것이었다. 아내 덕분에 생일상도 받고 생일 케이크에 촛불도 불었다. 촛불을 끄기 전에 잠깐 소원을 빌었다.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길.


균열은 거기까지였다.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는, 다시 딸을 재우고 젖병을 닦고 화초에 물을 줬다. 똑같은 일이지만 서두르지 않고 정성을 들였다. 딸의 졸음을 어제보다 더 세심하게 살폈고, 젖병은 구석구석 뽀득뽀득 닦았고, 화분의 흙을 하나씩 만져보며 물을 주었다. 차근차근 일을 끝내고 있는데, 돌연 마음에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천천히 산다는 게 참 평화롭구나, 생각했다.

타고난 것이 느린데다 남의 간섭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천천히 할 일을 하는 것만큼 적성에 맞는 것도 없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내가 태어난 날이자, 내가 타고난 대로 산 날이었다. 타고난 대로 살다니!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삶인가. 조바심, 부담감 다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하루를 보냈다는 것은 어쩌면 생일보다 더 특별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생일이 끝나지 않았으니, 소원 하나 더 빌고 자야겠다.

'우리 가족 모두 타고난 대로 살길.'


E0B80F8A-ED80-4480-B431-0FBD79BFDB2A_1_105_c.jpeg 아내 덕에 미역국도 먹고 생일 케이크 촛불도 불었다. 아내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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