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단아하다는 표현이 적당할 듯하다. 선이 뚜렷하고 좌우 비례가 정확했다. 도톰하면서도 명료한 입술. 무령은 거울을 보며 끝이 살짝 올라간 입술을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 쓸었다. 그러자 가지런하면서 하얀 이가 슬쩍 내비쳤다. 까만 눈망울에 자그마한 코, 갸름한 얼굴선 옆으로 흐르는 단발머리. 그녀는 로션만 바르고 빗질을 했다. 거치대에 올려져 있던 기타를 가방에 넣은 후 문을 나섰다.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1100번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지나 내렸다. 초록색 쿼터집업 상의를 걸친 무령의 뒷모습은 아직 앳돼 보였다. 무릎까지 오는 카프리 팬츠를 입었고 희고 가느다란 종아리가 드러나 있었다. 그 아래 새하얀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보도를 걸었다. 가끔 오른쪽 어깨에 짊어진 기타 가방을 추어올렸다. 이윽고 성진구 청소년 문화센터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2층 203호 프로그램실 문을 열었다. 일곱 평 남짓한 작은 방에 의자가 다섯 개, 그 앞에 보면대가 각각 놓여 있었다. 벽과 천장에는 흡음재가 붙어 있었다. 한 남자가 창가에 서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흰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상의는 자색 카디건에 청바지를 입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어서 와. 무령아.” 그가 인사를 건넸다. “조금 늦었네. 준현이는 오늘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단다. 앉거라.” 무령은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남자가 전자 피아노에 서서 한 음을 짚었다. 무령은 약속이나 한 듯 노래를 불렀다. “아아아아...” 산을 오르듯 천천히 음을 높였다가 계단을 내려오듯 다시 낮췄다. “오늘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데.” 남자가 말했다. “자, 조금 더 올라가 볼까?”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리고 한 단계 높은음을 짚자 무령이 음을 뱉어냈다. “아아아아...” 점점 높은음을 두드릴 때마다 그녀의 소리는 높아졌지만 억지로 끌어올리는 느낌이 없이 시원하게 내질렀다. 거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무령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목에 핏줄이 섰다. 한참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는 듯한 발성 연습이 이어지고 나서 잠시 휴식을 가졌다.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무령이 기타를 꺼냈다. 보면대에 악보를 올린 후 노래를 불렀다. 노고지리의 '찻잔'이었다. 차분한 목소리에 슬픔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넘치지 않았고 박자를 지키면서도 그 속에서 음을 늘였다 줄였다 했다. “어제 만든 곡인데 한 번 들어봐 주실래요?” 그녀가 말하면서 수줍게 살짝 웃었다. “부끄럽지만...” “오, 한 번 들어보자.” 그가 말했다. “자, 시작해 봐” 도시에 살고 있는 소녀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담긴 노래였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자연스럽게 공간을 울리는 무령의 목소리는 그의 가슴을 적셨다. “담백하고 좋아. 조금 더 너의 색깔을 더하면서 감정을 실었으면 좋겠어.” 그가 말했다. “무령아. 목소리 좋은 사람은 많아. 하지만 매력적인 소리는 드물지. 너만의 소리를 찾아내고 그걸 절대로 잃어버리지 마.” 남자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넌 소리에 감정을 실을 줄 알아. 타고 난 거지. 아무리 아름다운 보석이라도 다듬지 않으면 그냥 반짝이는 돌일 뿐이야. 무슨 말인 줄 알지?” 무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습관처럼 집게손가락으로 입술을 쓸었다. 그런 행동을 하던 또 다른 누군가를 그는 떠올렸다. 살구색 보온병을 열고 자기로 된 머그컵에 커피를 따랐다. 쪼르르 소리가 들리면서 커피 향이 은은하게 났다. 보온병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2년 전 ‘블루 오리올스’ 출신의 보컬 가수가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한다는 현수막을 봤을 때 무령은 가슴이 설렜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노래가 삶의 존재 이유이자 운명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혼자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불렀지만 이게 옳은 것인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잘 몰랐다. 누군가의 가르침을 원했을 때 구원처럼 그 현수막을 발견하게 되었다. '블루 오리올스‘라는 밴드는 검색을 해도 찾을 수 없었고 강사 이름인 김철현도 마찬가지였다. 신문기사 딱 하나만 발견할 수 있었다. 20년 전 어느 나이트클럽에 불이 났었다. 빠져나온 남성이 다시 불길을 뚫고 들어가 한 여성을 업고 나왔다는 단신 기사였다. 그가 바로 '블루 오리올스‘ 보컬 김철현이라고 씌어 있었다.
무령은 더 이상 고아원 숙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만 18세가 된 지난가을에 자립정착금으로 임대주택을 얻었고 편의점 알바 자리도 구했다. 여덟 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일을 하고 나면 보컬 수업을 듣고 저녁에 혼자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침에 편의점으로 출근하면 먼저 바닥을 청소했다. 시식대도 닦고 커피머신이나 온장고도 깨끗이 정돈하고 나면 신선식품 입고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창고에서 음료수를 꺼내와 냉장고에 채워 넣었다. 정신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손님이 조금 뜸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을 골라 포스기에 폐기 등록을 했다. 무령은 버려지기에 아까운 샌드위치와 우유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조금이나마 식비를 아낄 수 있어서 좋았다.
점심때면 인근 건물에 일하는 회사원들이 담배, 커피 등을 사러 왔다. 단골 중에는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늘 찾아와서 햄버거와 주스로 점심을 먹는 이십 대 중반의 남성이 있었다. 항상 검은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 그리고 붉은색 혹은 청색의 넥타이를 했다. “어서 오세요.” 그가 오면 무령은 자연스레 인사를 건넸다. 어느 날 남자가 매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오늘 그 햄버거 다 나가고 없어요. 옆에 있는 치즈 샌드위치 드셔보세요. 맛이 괜찮아요.” 그녀가 말했을 때 남자가 무령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키가 큰 그 남자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무령은 그의 눈이 참 맑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치즈 샌드위치를 집으며 말했다. “어떻게 아세요. 그 맛을?” “먹어봤으니까요. 아마 입맛에 맞으실 거예요.” 무령이 대답했다. “치즈를 싫어하지 않으신다면요.” 남자는 창가에 붙어 있는 시식대에 앉아서 샌드위치와 주스를 먹었다. “괜찮네요. 아니, 더 맛있어요.” 다 먹은 봉지와 유리병을 재활용 박스에 넣으며 남자가 말했다. “고마워요.” 유리문을 열고 남자는 다시 자신의 빌딩으로 돌아갔다.
손님이 없을 때면 그녀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텅 빈 매장이 그녀의 무대가 되었다. 그날은 12월이라 분위기에 맞춰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그 남자가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노래에 빠져 그가 들어오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무령은 순간 부끄러워서 두 볼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머라이어 캐리보다 더 낫네요. 정말 잘 부르시네요.” 그가 말했다. “가수라 해도 손색이 없어요. 제가 장담하죠.” “별말씀을요. 그냥 흉내 낸 것뿐인걸요.” 그녀가 말했다. ”부끄러워요.” “오후에 퇴근하는 모습을 우연히 봤는데 기타 가방을 메고 있더군요. 제대로 된 무대에서 그쪽 노래를 듣고 싶어요. 근처에 내가 자주 들르는 라이브 카페가 있는데” 그가 말했다. “거기 가수들보다 나아요. 정말입니다.” 그는 노래를 사랑했고 그녀의 잠재성을 일찌감치 알아준 유일한 팬이었다.
무령과 그녀의 오빠는 어릴 때부터 같은 고아원에서 자랐다. 엄마가 그들을 홀로 키우다 사고로 죽자 일가친척이 없던 그들은 그곳에 맡겨졌다. 그녀의 오빠 한태수는 무령보다 다섯 살이 더 많았고 힘들거나 외로울 때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 태수는 무령만 보면 언제나 웃어 주었다. 조용한 성격에 항상 자상하고 따뜻했다. 무령이 열두 살 무렵 짓궂은 원내 남학생이 그녀를 괴롭혔다. 무령이 울음을 터뜨렸고 그 소식이 태수의 귀에 들어갔다. 저녁에 귀가한 그가 그 남학생을 두들겨 팼다. 남학생은 코피가 터지고 얼굴이 퉁퉁 붓고 말았다. 원장이 태수를 다른 곳으로 전원을 하려 하자 무령이 매달리며 애원했다. 그는 반성문을 썼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사고를 치면 그때는 반드시 전원 하겠다는 각서를 제출하고서야 무령과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몇 년 뒤 태수는 먼저 자립을 했다. 떠나는 날 그가 무령에게 말했다. “잘 지내. 연락 자주 할게. 오빠가 돈 많이 벌어서 니 학비 마련해 줄 테니까 넌 공부 열심히 해. 알았지?”
태수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저녁에 간혹 연락이 오긴 했지만 목소리가 많이 피곤해 보였다. 조선소였다. 그는 철 구조물을 조립하고 용접하는 일을 했다. 삼 년 전, 그가 휴가를 얻어 고아원을 찾아왔었다. 과자와 학용품을 한 박스 사들고서. 그를 기억하는 아이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후 무령과 태수는 휴게실에서 차를 마셨다. “숙소가 제공되어서 돈이 굳었지.”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도 좋아. 잘 가르쳐 주고 정이 많아.” 무령의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굴에 실망스러운 빛을 띠며 그가 말했다. “지난번 네가 가수가 되려 한다고 말했을 때 난 사실 걱정스러웠어. 힘든 길이니까. 널 위해 적금을 붓고 있었거든. 대학 들어가면 책값이랑 생활비를 대주고 싶었는데...” “오빠, 난 노래를 부르고 싶어. 꼭 가수가 될 거야.” 그녀가 말했다. “공부보다는 노래가 내 적성에 맞아. 노래할 때 난 행복해.” “알아. 어릴 때부터 넌 노래 부르는 걸 무척 좋아했지.” 그가 말했다. “네 꿈을 반대하지는 않아. 부디 잘 되기를 빌게.” 그가 잠시 밖으로 나갔다. 다시 돌아올 때 커다란 기타 가방을 하나 들고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자 무령이 “꺅’하고 외마디 소리를 쳤다. 태수가 가방을 건넸다. 무령이 케이스를 열고 기타를 꺼냈다. 수제 기타였다. 무령이 줄을 튕기자 휴게실에 있던 보급형 통기타보다 훨씬 부드럽고 깊은 소리가 울렸다. ”고마워. 나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무령이 말했다. ”고마워 오빠." 무령은 태수를 끌어안아 준 후 기타 이곳저곳을 매만졌다. ”멋진 가수로 성공하길 빌게.“ 무령의 기뻐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오빠가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거 잊지 마." 무령이 조율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원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둥그렇게 모인 아이들은 노래가 끝나자 ‘와’하고 소리치며 크게 박수를 쳤다. 무령은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한 달 전, 무령의 오빠 한태수는 그날도 조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무겁고 시큼한 쇠냄새, 여기저기 지지직거리며 터지는 불꽃들. 기계음 소리 때문에 작업자들은 고함을 지르며 대화를 나눴다. 그는 무거운 강판을 들고 이층 난간을 이동하고 있었다. 구십 도로 꺾이는 곳에서 몸을 틀다가 중심을 잃었다. 순간 휘청했다. 철판을 놓치지 않으려고 꽉 쥐면서 방향을 돌렸다. 밑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몸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난간 너머로 쓰러졌다. 철판은 난간대에 세웠지만 몸은 그만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그에게 사람들이 달려왔다. 앰뷸런스에 실려갈 때 그는 눈을 뜨지 못했다.
무령에게 전화가 왔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무령이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태수 씨 동생 되시나요? " 어떤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제 오빠예요. 어떻게 아세요?" 무령이 말했다. ”오빠분이 오늘 아침에 공장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났어요." 그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령은 깜짝 놀랐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니, 무, 무슨 사고 말인가요?" 무령이 외쳤다. ”공장 난간에서 떨어졌는데... “ 남자가 대답했다.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오빠는 지금 어때요?" 무령이 소리쳤다. ”괜찮은가요? 괜찮은 거죠? 그렇죠?"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무령은 급히 거성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남자가 말한 병원에 도착해서 전화를 하니 그가 로비로 나왔다. 회사명과 로고가 가슴에 새겨진 회색 잠바를 입고 있었다.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침통한 표정이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가 주저하며 말했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정말 죄송해요. 오빠는... 사망했습니다." 무령은 순간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싸늘한 기운이 등허리를 타고 내려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턱이 떨렸다. 남자가 무령을 부축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무령이 말했다. ”어... 어떻게 그... 그럴 수 있죠?"
경찰과 함께 안치실로 들어갔다. 흰 가운을 입고 양손에 흰 장갑을 낀 남자가 커다란 서랍을 당겼다. 긴 트레이에 누워 있는 시신 위로 흰 천이 덮여 있었다. 그가 얼굴 쪽 천을 벗겼다. 무령은 놀란 눈을 한 채 손으로 입을 가렸다. 오빠였다. 하지만 오빠가 아니었다. 항상 미소 짓고 웃고 말하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껏 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지닌 채 고요히 누워 있는 그 사람은 오빠였지만 오빠가 아니었다. 낯선 얼굴을 한 오빠는 편안해 보였다. 모든 생기가 빠져 버린 생경한 모습으로. 무령은 온몸이 떨렸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옆에서 뭐라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그녀의 팔을 흔들었다. ”오빠가 맞습니까? 경찰이었다. “오빠 한태수가 맞나요?” “네... ” 무령은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가운을 입은 사람이 흰 천으로 오빠의 시신을 덮고 서랍을 밀어서 닫았다. 무령은 안치실 바깥으로 나갔다. 어떻게 나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바깥에 벤치가 하나 있었다. 무령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오빠를 화장했다. 세 시간쯤 지난 후 쇠절구에 뼈를 빻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조그만 창을 통해 나무로 된 유골함을 건네받았다. 무령은 그 유골함을 가슴에 안았다. 따뜻했다. 평소 오빠의 그 따스하던 손길처럼. 태수는 배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지만 배를 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언젠가 말했다.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한 번 하고 싶다고. 내가 만든 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며 웃던 그의 모습이 무령은 떠올랐다. 옆에 서 있던 공장 직원에게 말했다. “바다에 오빠를 뿌리고 싶어요.”
배가 찬 해풍을 뚫고 달렸다. 퉁퉁거리는 엔진소리와 함께 디젤 매연 냄새가 났다. 먼바다로 나가자 점점 파도가 거세졌다. 공장 직원이 무령에게 말했다. 여기가 좋을 것 같다고. 무령은 가슴에 품고 있던 유골함의 천을 풀었다. 나무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있던 하얀 가루를 손으로 꺼내 바다 쪽으로 뿌렸다. 하얀 가루가 바람에 날리면서 파도에 떨어져 내렸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구토처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억억... 어 어 엉...” 허리를 꺾으며 그녀는 울음을 토해냈다.
장례를 치른 후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무언지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내가 공부를 했었더라면, 태수가 그 공장에 취직하지 않았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끝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각의 고리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고개를 돌렸다. 방 안 귀퉁이에 그가 사 준 기타가 조용히 세워져 있었다. 오빠를 안듯이 기타를 안았다. 옷깃이 스치자 현이 자그마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그녀는 조용히 아르페지오로 곡을 연주했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소리 없이 불렀다. 그녀는 말없이 오빠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무령은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 편의점 사장에게 한동안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와 만나기가 싫었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휴대폰에서 카톡이 울렸다. 보컬 선생 김철현이었다. ‘무령. 요즘 왜 수업에 안 나와? 전화도 받지 않고. 무슨 일 있어? 지금 그만두기에는 네 재능이 아까워. 내가 생각하기에 넌 소질이 있어. 멈추면 안 돼. 내가 장담하는데 지금 포기하면 넌 언젠가 크게 후회하게 될 거야.’ 선생님의 문자를 읽고 난 후 무령은 어둠 속에 홀로 오래 있었다. 무언가 다시 새로운 싹이 돋아났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며칠 뒤 무령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싫어도 거부해도 삶은 냉혹하게 생존의 굴레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편의점으로, 청소년 문화센터 보컬 수업으로,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그녀는 내일 죽는다 해도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하던 일을 반복할 뿐이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가 아니라도 사과나무를 심듯이 생계를 꾸리고 일상을 지속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직장인들에게 담배와 커피, 그리고 음료를 팔았다. 점심때 그 남자가 왔다. 이제는 햄버거 대신 샌드위치를 가져왔다. 바코드 스캐너로 삑 하고 읽고 잠시 기다릴 때였다. “요 며칠 안 보이던데.” 남자가 물었다. “어디 휴가 다녀왔어요?” “오빠가 죽었어요.” 무령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장례를 치르느라...” “저런, 미안해요.” 남자는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미안해요.” 결재가 끝났고 남자는 카드를 회수해서 지갑에 넣으며 샌드위치와 음료를 들고 창가 시식대로 향했다. 식사를 다 마치고 떠나려던 그가 진열대에서 초콜릿을 집어 들더니 다시 계산대로 다가왔다. 바코드를 찍고 계산을 했을 때였다. “오늘이 밸렌타인데이라서.” 그가 말했다. “선물이에요.” 그녀가 주저하며 초콜릿을 들었을 때 그는 이미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청소년 문화센터 203호실 문을 열었다. 준현이가 앉아 있었고 보컬 선생은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이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 오랜만이네. 몇 주 빠져 먹어서 걱정했었는데.” 흰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선생이 말했다. “무슨 일 있었어?” 무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깨에 메고 있던 기타를 내렸다. “네, 일이 좀 있었어요.” 무령이 대답했다. “벌써 이 주가 지났네요.” 수업이 진행되었다. 발성연습이 있었고 노래 연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무령이 이승철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부르던 중이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 그때였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목이 메는지 소리가 잠겼다. 사래가 걸린 것처럼. 무언가를 삼키려 했다. 하지만 끝내 삼켜지지가 않아서. 삼킬 수가 없어서 무령은 끝내 눈물을 쏟았다. 선생도 준현이도 당황해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너... 무슨 일이 있구나.” 선생이 무령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됐다. 오늘 수업은 그만하고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그랬구나. 어떻게... 정말 안타깝다.” 한때 ‘블루 오리올스’ 보컬 김철현이 무령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일식 꼬치구이 전문점이었다. ‘네지리 하치마키’를 수건처럼 머리에 두른 젊은 요리사가 바 너머에서 분주하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맥주를 먼저 시키고 요리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무령은 맥주를 들이켰다. 맥주의 흰 거품이 그녀의 윗입술에 붙었다. 그녀가 습관처럼 집게손가락으로 입술을 닦았다. 선생이 생맥주 한 잔을 더 시키 주려 할 때 무령이 말했다. “하이볼이 마시고 싶어요.” 선생이 하이볼을 주문했다. 잔이 나오자 그녀는 쭉 들이켰다. 취기가 오르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블루 오리올스를 검색하다가 그 기사를 봤어요. 나이트클럽 화재사건 말이에요. 선생님은 그때 왜 그러셨나요?” 그녀가 발그레한 볼을 한 채 물었다. “애인이었나요?” 김철현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어떻게 알았어?” 그가 물었다. “요즘 검색하면 다 나와요. 모르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블루 오리올스를 검색하니까 공연이나 음반 소식이 뜰 줄 알았는데 그런 건 하나도 없고 뜬금없이 나이트클럽 화재 사건이 나오더라구요.” 그때 꼬치구이가 나왔고 선생은 하나를 집어 들고 씹었다. 간간이 맥주도 마셨다. “블루 오리올스? 삼류 밴드였지. 음악 하나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맘 같지 않았어. 실력도 문제였지만 운도 따라주지 않았어. 쓰레기 같은 노래를 하는 것들이 떡상하는 것을 보면서 우린 좌절했지. 미친 것들... 우라질 세상.” 그도 하이볼을 시켰다. 단번에 들이켠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던 삼류 가수였어. 우리는 자연스레 친해졌고 연인 사이가 됐지. 어느 날 그녀의 집에 간 적이 있었어. 네댓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더라고. 사생아였어. 그녀는 결혼을 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난 그녀를 사랑했지. 그의 눈에 살짝 물기가 어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날 전기 합선으로 나이트클럽에 불이 났어. 불꽃이 튀고 연기가 피어올랐지. 순식간에 불이 붙기 시작했어. 사람들이 놀라서 일제히 출구로 향했어. 노래를 부르고 있던 나는 사람들에 휩싸여 함께 밖으로 나왔지. 그때 그녀가 생각이 났어. 대기실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그녀가 말이야. 지하로 연결된 나이트클럽 계단에서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지. 아직 소방차가 출동하기 전이었어. 나는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지. 매캐한 연기가 시커멓게 솟아오르고 있었어.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내려갔지. 지하에는 천장에 불길이 붙어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어. 조명은 꺼지고 캄캄했지만 그 불빛에 의지해서 대기실을 찾아 들어갔지. 손으로 더듬다가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녀가 만져졌어. 그녀를 둘러메고 다시 나왔어 불길은 더욱 거세져서 뜨거웠어.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차서 나는 그녀를 업은 채 엉금엉금 기다시피 나왔지. 어떻게 계단을 올랐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올라가서 쓰러졌을 때 사람들 소리가 들리고 소방차의 요란한 경적과 사이렌 소리가 울렸어.” 그는 전자담배를 꺼내더니 밖으로 나갔다.
“이야... 선생님 진짜 대단하시네.” 준현이가 말했다.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내걸었으니 말이야.” “그때 돌아가셨다면 우리가 이렇게 수업을 들을 수도 없었겠지.” 무령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선생님은 성악을 전공했었대. 가난한 음대생에게 꿈은 멀었지. 그러다 대중음악으로 방향을 바꿔 밴드와 합류를 했던 거야. 당시에는 음악으로 생계를 잇는 것이 힘든 시절이었으니까. 지금도 다르진 않지만.”
그때 선생이 돌아왔다. 자리에 앉더니 꼬치구이를 한 입 뜯고 하이볼을 쭉 들이켰다. “그래서 두 분은 어떻게 됐나요?” 무령이 다시 물었다. “결혼은 하셨나요?” “불안정한 딴따라의 삶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가 쉬워.” 선생은 씁쓸한 표정으로 무령을 쳐다봤다. “우린 곧 헤어졌지.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느 날 그녀에게 연락이 왔어. 내 애를 가졌다는 거야. 난 솔직히 믿지 않았어. 그녀의 삶이 부평초 같았으니까. 내 아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냐는 말이지. 어쩌면 책임 지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라.” 그는 다시 술을 마시고 말을 이었다. “사랑이 진 자리는 초라한 추억만 남는 법이야. 난 그녀의 연락처를 지웠어. 전화도 차단하고.” 철현은 무령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한 오 년쯤 지난 뒤였을거야.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죽었다는 거야. 다 지난 일이야.” 무령과 준현은 꼬치구이 집을 나섰다. 밤거리에서 비척거리는 보컬 선생을 부축한 채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음 주 무령이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였다. “가수가 되려면 무대에 서야 해. 경험을 쌓아야 하지.” 김철현이 말했다. “아무리 자신의 기량이 좋아도 관객과 호흡할 수 없으면 다 꽝이야. 근처에 괜찮은 라이브 카페가 있는데 사장이 내 지인이야. 알바 삼아서 뛰어봐. 어때?” “글쎄요. 아직 실력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령이 말했다. “솔직히 겁이 나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봐.” “네 목소리로 불러. 흉내 내지 말고.” 그가 힘을 주어 말했다. “넌 무당이야. 샤먼이지. 사람들의 아픔과 시대의 한을 네 목소리에 담아내야 해.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어. 그럴 때 네가 원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거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철현이 말했다. “슬픔 속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마. 맞서서 극복해야 해. 잘해봐. 넌 이미 때가 됐어.”
무령은 며칠 뒤 '카페 아나브리‘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되었다. 심장은 두근거렸다. 두려움이 몰려와서 입안이 바짝 타올랐다. 바로 앞에 체크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사십 대 남자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 김광석 그리고 산울림을 노래했다. 노련하게 잘 부르는 가수였다. 사람들의 박수가 크게 울렸다. 관객들을 둘러보다가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초콜릿을 선물했던 편의점 혼식남이었다. 그도 그녀를 발견하자 손짓으로 불렀다. 그녀가 다가가자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녀가 메고 있는 기타를 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공연을 할 거죠?” 그가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제 첫 공연이에요. 떨리네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편의점에서 우연히 들었던 그 노랫소리가 아직 기억나요.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았죠. 외롭고 쓸쓸하고 힘든 날, 어디선가 작은 등불이 켜지는 것 같았어요." 그가 고백하듯 말했다. ”그만둘까 흔들리고 있던 내게 큰 힘이 됐었죠.” 그러더니 동료들을 돌아보며 그녀를 소개했다. “여기 이 분 실력이 정말 대단해요.” 그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살짝 들어봤었는데 그 순간에 팬이 됐죠." 그때였다. 남자 가수의 노래가 끝이 났다.
스폿 라이트가 무대에 내려졌고 그녀는 중앙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오빠의 기타를 가만히 안고 심호흡을 한 뒤 조율했다. “안녕하세요. 노래를 사랑하는 무령이라고 합니다. 전 무엇도 아니에요. 텅 빈 피리 같은 존재죠.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나요. 여러분의 입김을 담아내는 그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무령은 ’My Funny Valentine‘에 이어서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를 불렀다. 창밖으로는 차량의 후미등 불빛들이 눈물처럼 일렁였다. 홀로 서 있는 가로등 아래로 연인이 손을 잡고 지나쳤다. 처음엔 떨렸지만 곧 노래에 집중했고 신들린 듯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소리가 이마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온몸이 스피커처럼 진동을 했고 토해내는 한 음 한 음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마지막으로 제가 만든 노래를 들려 드릴게요. 얼마 전에 오빠가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오빠를 그리워하며 지었어요. 제목은 ‘작고 빛나는 것’입니다.” 기타 소리가 전주를 시작했고 그녀의 청아하면서 슬픈 목소리가 홀을 가득 메웠다.
이윽고 노래가 끝났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조용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편의점 남자가 먼저 박수를 쳤다. 이어서 박수 그리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더니 폭포처럼 울려 퍼졌다. 새로운 영매가 출현했음을 사람들은 직감으로 알았다. 관중들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무령의 눈에 들어왔다. 편의점 그 남자. 그가 상기된 표정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힘껏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녀의 새로운 삶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