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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공원을 산책하는 직장인에 관한 소고

by 힉엣눙크

물고기가 서서히 떠오른다. 자신이 살아가고 숨 쉬는 물의 세상과 낯선 공기의 세계가 만나는 그곳을 향해. 깊은 물속에서 위쪽을 바라보면 오로라처럼 일렁이는 물결이 보인다. 햇빛이 조각조각 반짝이는 그곳으로 물고기는 올라간다. 이윽고 붉은 등과 지느러미를 수면 위로 드러낸다. 물과 공기의 경계를 유유히 헤엄치며 나아간다. 가끔 수면 위로 입을 뻐끔거리며 공기를 맛보기도 하는 것이다.


점심식사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사람들은 대개 삼삼오오 공원으로 간다. 사무실 근처 호수공원 산책로를 몇 바퀴 도는 것이다. 차가운 바람에 맑아지는 머리, 바람에 일렁이는 호수의 윤슬, 빈 나뭇가지에서 노래하는 참새의 울음소리. 잠깐 마주치는 바깥세상은 항상 같은 것 같지만 언제나 다른 세상이다.


정오 무렵 호수공원 인근의 사무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소화를 시킬 겸 바람을 쐬기 위해 줄을 지어 그렇게 반짝 돌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총총히 돌아간다. 산책이란 목적 없는 행위이자 할 일 없음이다. 사람들은 산책의 이런 무위성이 가져다주는 작은 위안을 얻고 다시 할 일을 찾아 돌아간다. 오후 온종일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또 그렇게 하루가 지나갈 것이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박스 안에서 내내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치질이 걸렸거나 걸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점심시간의 짧은 외출은 물고기가 부족한 산소를 찾아 수면 위로 떠올라 입을 끔뻑이는 시간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그때면 종종 공원이 아니라 주택가 쪽으로 향한다. 사무실 인근에 도시계획에 따라 2층 이하 주택만 있는 전용주거지가 있다. 공원보다 한적해서 즐겨 거기를 찾는다. 다양한 집들과 세간살이들, 사람의 흔적이 묻어나고 숨결이 느껴지는 가정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의 변화와 유행이 주택에도 녹아 있다. 같은 소재와 기법을 사용한 집들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함께한 추억을 안겨준다. 사실 주거지만큼 매력적인 관광지도 없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따분한 곳일지라도 외국인에게는 매력적인 곳이다.


나는 해외여행을 할 때면 패키지보다는 자유여행을 선택한다. 여러 불편을 감수하고 내가 자유여행을 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지인들의 주거지를 할 일 없이 거닐기 위함에 있다. 유명한 관광지나 번화가보다는 한적한 주택지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그 나라 특유의 문화를 오롯이 체험할 수 있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보여주기 위해 과장해 꾸미거나 공들여 다듬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삶의 손때가 묻고 세월의 더께가 앉은 공간은 가슴속에 중저음의 울림을 전해준다. 생활의 애환이 녹아있는 골목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낮 주택가 거닐기는 잘 꾸며진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시답잖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집을 통해 발견되기 때문에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조용하기까지 하다. 잘 다듬어진 나무들과 잔디, 한 귀퉁이에 놓인 티테이블, 그리고 홍학 인형 한 쌍이 다소곳이 놓인 정원 등 주인의 애정이 가득 담겨 있는 집이 있는가 하면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채워진 집이 있고, 원래 있던 나무를 베어내고 주차장만 덩그러니 조성한 집, 마당을 온통 텃밭으로 만들고 대파를 심어놓은 집, 조그만 틈도 없이 종이박스를 잔뜩 쌓아 놓은 집, 번들거리는 대리석으로 거들먹거리는 집, 잘 지은 집이었지만 허술하게 쇠락한 집.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집 등등. 다양하고 제각각인 집들을 일별 할 수 있는 이곳은 아파트 공화국에서 드물게 만나는 정다운 곳이다.


집을 보면 그 집주인의 삶이 보인다. 물론 내 상상 속의 집주인일 뿐이다. 꼼꼼하고 부지런한 사람,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남이야 뭐라든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 성가신 것 질색이고 편하게 살자는 사람 등등 집을 통해 주인의 삶이 그려지는 것이다.


자신의 흠결은 모른 채 남들에 대해서는 마치 신처럼, 이러쿵저러쿵 평가 해대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습성처럼 나도 그렇게 집을 보고 주인의 성향과 삶을 맘껏 상상해 보는 것이다. 어쩌면 집은 내게 시니피앙(signifiant)인지도 모른다. 집은 내게 그 속에 살아가는 주인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낮동안 당신이 비워둔 집을 나는 조용히 둘러본다. 자궁처럼 텅 빈 집과 탯줄처럼 이어진 골목길을 두고 당신은 어디를 헤매고 있는가. 태어난다는 것은 다시 돌아가고픈 그리움을 유전처럼 간직하고 떠나야 하는 운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찾고 추구하고 꿈꾸며 멀리 떠나가는 길은 어쩌면 다시 돌아오기 위한 길인 것이다. 그리움이란 말은 돌아가고 싶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닐까. 멀고 먼 여행은 오랜 귀향길이다.


떠났던 당신이 돌아오는 길, 커졌다 작아지는 가로등 불빛 사이를 지나 어두운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당신은 편안할까. 습관처럼 켠 티브이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소파 위에 앉아 있는 당신의 뒷모습을 당신의 집은 물끄러미 바라본다. 당신 가슴에 생채기로 남아 있는 긴 외로움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고 점심시간 산책길에서 당신의 집들은 내게 속삭여 주었다.


호수 속 물고기가 수면 위로 천천히 떠올라 물과 공기의 접점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그곳에 새 한 마리 날아와 물을 마신다. 세상의 경계에서 둘은 만나고 헤어진다. 이 삶의 공간과 저 삶의 시간이 만나는 접점. 그러나 그 경계를 넘어가려면 물고기와 새는 생명을 잃어야 한다. 다만 물고기는 공기를, 새는 생명수를 각각 얻고 그저 제 삶의 길을 찾아 떠나가는 곳. 삶과 죽음의 경계이자 이 세상과 저 삶의 그리움이기도 한 곳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수면에서 만나는 물고기와 새의 만남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물고기가 될 수 없고 나는 새가 될 수 없다. 둘은 만나지만 어차피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외롭다.


점심시간에는 깊이 숨을 쉬고 물을 마시자. 그리고 수면을 고요히 바라볼 일이다. 어쩌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처럼 숨쉬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오는 한 마리 물고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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