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정리를 하고 나서 옷을 털려다가 바짓자락에 묻어 있는 흰 털뭉치를 발견했다. 작년 가을에 죽은 우리 집 반려견 은달이의 털이었다. 손으로 떼어서 가만히 살펴보았다. 거리에서 내 옆을 지나쳐간 여인의 짙은 향수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걸어 놓은 빨랫줄마냥 남아 있는 비행운처럼, 음반에서 들려오는 요절한 가수의 노랫소리처럼, 은달이의 흔적이 집에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민들레 홀씨처럼‘후’하고 입김을 불어서 날렸다. 하나둘 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오래전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방을 청소하다가 남겨진 손톱과 머리카락을 찾은 적이 있었다. 문득 그립고 슬픈 감정이 들면서 한편으로 죽은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던 일부가 아직 내 곁에 남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왜 누군가 죽은 후 그가 남긴 신체는 멀리하고픈 감정이 드는 것일까.
서양에서는 고대사회부터 이집트의 시신인 ‘미라’가 무병장수에 효험이 있다는 미신이 있어서 미라를 사서 갈아먹는 풍습이 있었다. 미라가 약재로 팔리지 않게 된 건 치료 효과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18세기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하지만 갈색을 내는 물감의 소재로는 계속 사용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머미 브라운(mummy brown)’이다. 물감회사에서는 1960년대 초쯤, 더 이상 미라를 구할 수 없게 되기도 했지만 혐오 의식 때문에 미라를 갈아서 만든 물감 ‘머미 브라운’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게 되었다 한다.
“우리가 집, 가구 등에 즐겨 사용하는 목재들은 '나무의 시신'이에요.”
어느 저명한 철학가가 강연 중 예시를 들면서 한 말이다. 오랫동안 썩지 않는 나무의 몸뚱이를 우리는 생활에 활용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상하다거나 멀리하고 싶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외려 편안하고 친숙하게 여긴다. 그러고 보면 박물관에 동물이나 사람의 뼈가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동물을 박제한 음식점이나 가정집도 종종 볼 수 있다.
지금은 구하기 어렵지만 코끼리의 상아로 만든 도장을 나도 하나 지니고 있다. 크고 맑은 눈망울로 죄 없이 세상을 살았을 어느 소의 가죽으로 만든 구두에 나는 발을 넣고 다니며, 악어의 피부로 만든 지갑을 엉덩이 부위에 달린 바지 뒷주머니에 항상 휴대하고 있다. 누군가는 죽은 족제비의 털을 장롱 안에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닭, 돼지, 소는 물론이고 무수히 다양하고 많은 동물들의 사체를 먹고 활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데 사람의 시신은 왜 두렵고 무섭고 혐오스럽게 느껴질까.
어느 진화생물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이 배설물을 혐오하거나 시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부패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병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개체가 진화과정에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아남아서 그런 감정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그런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살아남게 된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타인의 신체는 물론이고 고통과 쾌락 및 죽음에 대해서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주검에 대한 두려움을 지녔기에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리라.
봄철이라 정원 준비에 손이 바빠졌다. 겨우내 살아 있다가 봄비를 맞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풀들을 뽑아내며 꽃들을 심거나 옮기는 일들을 하고 있다. 여기저기를 바지런히 호미질하던 아내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새카만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들어서 보여주었다.
“잡초를 파내다가 발견했어. 은달이에게 내가 작년에 주었던 밤이야.” 아내는 슬픈 감정이 밀려온 듯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개들은 먹다가 남은 음식을 땅에 파묻는 습성이 있다. 아내는 작년 가을 은달이가 죽기 얼마 전에 햇밤을 삶아서 그중 몇 개를 주었던 모양이다. 입맛을 잃은 은달이는 먹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어딘가에 파묻었을 것이다. 해가 바뀌고 맞이한 새봄, 호미로 일을 하던 아내에게 발견된 것이다. 은달이의 타임캡슐을 말이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엄마. 몸이 많이 아파요. 힘도 없고 입맛도 없네요. 예전 같았으면 눈 깜빡할 사이에 다 먹어치웠을 것을 말이죠. 이 맛난 것을 여기에 파묻어 둘게요. 조만간 기운이 생기면 다시 찾아 먹을래요. 하지만 내가, 만일 내가 죽는다면 내년 봄쯤에 엄마는 이것을 발견하게 되겠지요. 부지런한 엄마는 호미로 이걸 찾아내고 말 거예요. 그러면 엄마는 그 밤이 내가 작년에 묻어둔 것이라는 걸 모를 리 없겠죠. 내가 죽었을 때 제일 그리운 것은 언제나 나를 이뻐해 주시던 엄마의 그 따스한 손길일 거예요. 나는 항상 그 손길이 고팠어요. 그래서 엄마가 그림을 그릴 때면 캔버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서 방해하기도 하고 붓을 물고 달아나기도 했죠. 정원에서 오래 호미질을 하고 있으면 그 앞으로 기어들어가 엎드리곤 했고요. 그러면 엄마는 나를 야단치거나 나무라는 대신 쓴웃음 지으며 ‘은달아! 왜 또 그래? 쓰다듬어줄까?’하고 나를 다독이셨지요.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얘기했던 게 생각나요. ‘은달이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 틀림없어. 저렇게 호강하며 사랑을 받으니 말이야.’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태어나도 나는 엄마의 개로 살고 싶어요. 엄마의 조카가 언젠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나를 보곤 ‘개팔자 상팔자네. 나도 고모집 개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화가 나서 ‘왈’하고 짖었어요. ‘그 자리는 내 자리야!’라고 주장하면서 말이죠. 엄마! 내가 죽은 후 나의 영혼이라는 것이 있고 어딘가 천국이 있다면 언젠가 엄마가 그곳에 오시는 날 맨 먼저 달려가 엄마 품에 안길래요. 기쁨에 껑충거리며 엄마의 얼굴을 핥아주고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요. 엄마. 감사하고 사랑해요. 그립고 또 그리운 은달이가.”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다가 문득 연꽃을 들어 보이자 무리들 중에 그의 제자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는 얘기처럼 아내가 밤 한 톨을 들어 보이자 나는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다. 죽음이 목전일 때 언젠가 먹으려고 파묻었던 은달이의 행동이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아등바등거리며 욕심부리는 내 모습 같이 느껴져서였을까. 아니면 은달이가 우리에게 남긴 사연이 고스란히 읽혀서였을까.
밤을 들어서 보여준 아내와 그것을 쳐다보던 나, 우리는 마주 보며 슬픈 미소를 가만히 지었다. 그때 어디선가 휘파람새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마른 풀잎과 낙엽, 지난해의 주검으로 뒤덮인 땅을 뚫고 푸른 새싹들이 벚꽃이 피듯 일제히 돋아난다. 봄이 오는 정원에 새들도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