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 중에 봄을 가장 먼저 느끼는 곳은 어디일까? 미각이다. 여름에는 수박을, 가을엔 사과와 감, 겨울에는 군고구마를 먹으며 계절을 실감한다. 겨울에도 수박이 나오는 등 농산물이 계절을 잊은 지 오래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혀를 통해서 봄을 가장 먼저 느꼈다. 점심시간, 겨울의 끝자락이라 아직 두꺼운 외투를 입고 사무실 인근 단골식당에 갔더니 인심 좋고 부지런한 주인아주머니가 봄나물과 쑥국을 내왔다. 싱그런 맛과 향. 나는 입으로 봄을 먼저 맞았다.
강아지, 송아지, 사슴처럼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엄마의 젖을 빠는 일이다. 생명은 생의 시작을 맛으로 알아차린다. 아이는 자라면서 잡히는 것은 무엇이나 입으로 가져간다. 이것저것 맛을 보고 감별하는 것이다. 같이 노는 친구의 볼도, 자고 있는 아빠의 발가락도 입으로 맛을 본다.
입으로 맛을 본다는 것은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내 몸을 열어서 허용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용감하거나 지혜로운 자가 죽으면 그의 골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그가 지녔던 지혜와 용기를 자신의 몸에 받아들여서 그처럼 되고자 한 것이다. 관절이 아플 때면 높은 곳에서 자유자재 뛰어내리는 고양이를 삶아 먹고, 성기능이 떨어지면 물개의 해구신을 먹는 것처럼.
우리는 여행을 가면 꼭 현지에 있는 맛집을 찾는다. 그곳 음식을 맛보지 않고서는 방문지를 제대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리라. 마찬가지로 세월을 여행하는 우리가 제철 음식을 맛보지 않는다면 아직 그 계절을 제대로 느낀 것이 아니다.
지겨운 겨울 장마가 끝난 다음날 거짓말처럼 화창하게 개었다. 반짝이는 햇살을 가득 담은 우리 집 정원에서는 매화가 피어나고 튤립과 무스카리, 히아신스, 그리고 수선화의 새싹이 얼었던 땅을 비집고 새초롬하게 파란 싹을 내밀었다.
마당 가장자리에서 꽃대를 올리기 시작하는 수선화를 보면서 문득 노부부가 만들었다는 거제도 공곶이 수목원이 가보고 싶어졌다. 그곳은 창원보다 좀 더 남쪽이라 지금쯤 꽃을 제법 피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꽃을 볼 수 없을지라도 그들이 가꾼 농장이자 수목원, 그리고 거제의 바다를 보고 싶었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출발했다.
우리가 정원을 가꾸면서 남의 정원을 구경 가는 일은 대개 겨울철이다. 황량한 정원에 뭐 볼 게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정원의 구조를 살피기에는 아무것도 없을 때가 가장 좋다. 뼈를 알려면 엑스레이 사진을 살피듯.
사실 나머지 계절에는 이것저것 할 일도 많은 데다 무엇보다 우리 정원이 온갖 꽃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구태여 다른 곳을 구경하고픈 생각이 안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만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우리 정원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하지 않는가. 나도 어쩔 수 없는 팔불출이다.
거제도 공곶이는 지명이다. 그곳 방파제가 있는 부둣가에 차를 주차하고 주민에게 물어서 길을 찾았다. 새로 조성한 해안 산책로 대신 오래전부터 있었을 마을길로 올랐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자 이윽고 내리막 좁은 돌계단 길을 따라 후박나무, 아왜나무, 동백나무의 숲이 이어졌다. 길을 내려가니 고즈넉한 곳에 숲 속 조그만 오두막이 하나 나타났다.
입장료는 받지 않았다. 뭇사람에게 자신의 사유지를 개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무료로. 나무로 만든 낡고 초라한 오두막은 무인점포였고 외벽에는 아름다운 시들을 손글씨로 써서 여기저기 붙여 놓았다. 부부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졌다. 바람에 실려 은은하게 번져오는 천리향의 꽃향기와 숲의 싱그러운 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조금 걷자 숲 속 오솔길이 끊기고 갑자기 바다가 불쑥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하얀 돌들로 이뤄진 몽돌해안이었다. 나무에 가려져 느낄 수 없었던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서 온몸을 흔들었다.
새하얀 해변과 푸른 바다, 바람이 불어오는 너머에는 크게 소리치면 들릴 것 같은 거리에 내도(內島)라는 섬이 정겹게 떠 있었다. 전부 노랗게 칠해진 20여 채의 집이 겨울에도 푸르른 상록활엽수 숲 속에 안겨 올망졸망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해변 벤치에 앉아서 바라보니 마치 먼 이국의 땅에 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 달리 생각나지 않았다. 아, 내가 참 아름다운 나라에 살고 있구나, 아름다운 지구 한 귀퉁이에서 호흡하고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이곳은 조선조 병인박해 때 숨을 곳을 찾던 천주교 신자들이 머물던 곳이었다고 한다. 죽음의 광풍이 불자 삶의 터전을 버리고 육지를 떠나 도착한 거제도 공곶이. 바다와 만나는 막다른 곳에 이르러 비루한 처지를 한탄하며 주저앉았을 때 뜻밖에 눈앞에 펼쳐진 이 아름다운 신의 선물을 마주하고 그들은 용기와 희망 그리고 안식을 얻었을 것이 틀림없다.
1969년 무렵 이십 대 젊은 남자는 거제도 여자와 혼례식을 치르고 산책을 나섰다. 우연히 들른 공곶이 해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평생을 바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던 부부는 주저 없이 자신들의 낙원에 정착했다.
나는 몽돌 하나를 주워 들었다. 겨울 끝자락 찬 기운에도 햇볕에 달궈져 따스했다. 그들 부부도 이곳을 찾아들었을 때 감격하며 반질거리는 돌 하나를 쥐고 내도(內島)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아름다움에 취해서 곧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바람과 파도에 구르고 부딪히며 동그란 몽돌처럼 깎이고 깎여서 공곶이에 잠들고 싶었을 것이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들어내고 쌓았을 돌들. 호미와 곡괭이만으로 수십 년 고르고 또 고르며 콩고물처럼 바슬거리는 밭을 만들었을 그들의 노고를 생각하다 울컥했다. 장구한 세월 험난했던 그들의 노력에 비할 바 못 되지만, 나와 아내가 정원에 미쳐서 주남저수지 인근 지금의 땅에 집을 짓고 정원을 일구었던 지난 시간들이 비춰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부부는 수선화 구근 2개를 얻어 심고 하나 둘 늘려 지금의 농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정원이나 화원이 각광받을 때도 아니고 수목원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였다. 교통이 불편했던 오지에, 게다가 너도나도 돈 벌기 바쁜 시절에 한가하게 꽃을 심고 가꾸었던 부부의 가슴에는 큰 병이 들었던 것이 틀림없다. 자연을 사무치게 사랑하는 고질병 말이다.
그들 부부의 꽃과 나무에 대한 사랑과 우직하면서도 소박한 마음이 아름다운 해변에 켜켜이 쌓여 있어 수려한 풍광이 더욱 아름답고 또 가슴 뭉클하게 와닿았던 것이리라.
거제의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추운 줄 몰랐다. 그 오랜 세월을 돌보며 가꿔왔던 그들의 낙원은 부부의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터이다. 안타깝게도 작년 오월에 남편이 세상을 먼저 떠나고 부인도 몸이 불편해서 관리에 어려움을 겪자 수목원은 한동안 방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거제시가 위탁받아 운영하기로 해서 농장이 유지될 수 있게 되었다 하니 다행스럽다.
삼월 말쯤이면 그곳은 노부부의 마음을 닮은 수선화가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것같이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일 것이다. 봄볕 같은 마음만 있다면 당신이 살고 있는 그곳도 낙원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그렇게 말이다.
돌아서는 길. 우리는 도다리 쑥국을 먹으러 갔다.
아! 봄이 참 맛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