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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정원 Apr 21. 2024

춤의 계절

날이 따뜻해지면서 정원에도 꽃이 피고 잎이 돋아나서 텅 빈 공간들이 어느새 가득 채워지고 있다. 연둣빛 자그마한 잎사귀들을 바라보면 어린아이들의 모습처럼 귀엽고 앙증맞다. 그런 와중에 참새들의 행동이 수상쩍어지기 시작했다.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춤을 추는 주체는 수컷들이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날개를 접어서 곧추 펴고 머리를 숙였다 치켜들며 절도 있는 춤을 춘다. 수영선수들이 출발선에서 물속으로 막 도약할 때의 자세처럼. 암컷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추는 수컷들을 보면 안쓰럽다. 그럴 때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애쓴다."


어떤 수컷은 열심히 춤을 춰도 암컷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어떤 수컷은 용케 암컷을 유혹해서 짝을 짓는다. 눈이 맞은 참새들이 뭔 염치와 체면이 있겠는가. 그들은 사랑을 스스럼없이 시전한다.

   

참새와 비둘기, 뱁새, 찌르레기 심지어 물까치들의 춤판이 우리 정원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윽고 암컷의 선택을 받은 수컷들은 본격적으로 짝짓기에 돌입한다. 봄이 바야흐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춤은 짝짓기다. 참새도 그러하고 벌이나 개미도 마찬가지다. 콜 포터가 만들고 엘라 피츠제랄드가 다시 불러 유명해진 'Let's do it'이 떠오른다. "새들도 하고 벌들도 하는 것" 반복하면서 이어지는 가사는 사람, 동물, 식물들까지 종횡무진 넘나들며 모두 그것을 한다고 언급한다. 그건 바로 사랑이다. 사랑에 빠졌거나 혹은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춤을 춘다.


춤은 사랑을 위한 유혹이자 사랑을 받기 위한 노력이고 사랑의 입장권이다. 동물 세계의 암컷들은 수컷을 선택할 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건강한지 얼마나 영민한지 얼마나 생존확률이 높은 지를 판단한다. 그래서 수컷들은 세대를 이어가며 춤을 보다 멋지고 아름답고 힘차게 출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다큐에서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짝짓기 춤 축제를 본 적이 있다. 나뭇잎과 천조각만 허리에 두른 젊은 남녀들이 서로 마주 보고 북장단에 맞춰 오랜 시간에 걸쳐 춤을 추는 의식이었다. 발을 구르고 껑충거리며 뛰거나 손을 잡기도 하고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흔들며 격렬하게 추었다. 신들린 듯 에너지를 무한정 발산하는 모습은 어쩌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수컷 참새의 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춤을 추며 서로에게 끌린 남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프리카의 춤은 노예선에 함께 실려 남미의 삼바, 룸바 등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인류도 춤을 통해 짝을 짓고 사랑을 구했던 것이다.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춤을 살피다가 셔플댄스를 보았다. 저건 나도 금방 할 수 있겠다 싶어 따라 해 보았다. 체력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단순히 폴짝거리며 뛰는 거라 우습게 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체력이 곧 방전되고 말았다. 내가 참새였다면 아마도 암컷들에게 외면당했을 듯싶다. 참새로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고 그런 나를 선택해 준 아내가 다시금 고맙게 여겨졌다.


1980년대 후반, 고등학생 시절 브레이크 댄스가 유행이었다. 잘 나가던 아이들은 여학생들과 미팅을 하고 디스코텍도 드나들었다. 선생님들도 이 사실을 잘 알아서 합동으로 디스코텍 단속을 나가기도 했다. 가수 박진영을 닮은 같은 반 친구가 있었는데 쉬는 시간이면 교단에 올라가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었다. 그가 연출하는 짧은 '공연'은 공부에 찌든 우리들에게 청량제 구실을 했다. 로봇처럼 관절을 자유자재 꺾고 지렁이처럼 바닥을 기거나 물구나무를 설 때 저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고 또 금지된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그의 영혼이 부러웠다. 당시 일본 노래는 금기시되어 방송에서 일절 들을 수 없었지만 디스코텍에서는 ‘긴기라기니 사리게나쿠’라는 노래가 연일 나왔고 소풍을 가면 어디서 구했는지 불법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그 노래를 휴대용 오디오에 틀고 아이들은 디스코라 우기며 막춤을 췄다. 교단에서 춤을 추던 친구의 모습을 보며 웃던 그때가 벌써 40여 년 전이다.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여학생들과 춤출 생각에 신나게 달려가던 그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춤은 일탈이다.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1994년 한석규, 최민식, 채시라가 연기한 인기 드라마였다. 한석규는 시골에서 상경하여 성공을 꿈꾸었지만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결국 비뚤어진 욕망으로 카바레와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여성들을 유혹, 등쳐먹는 제비가 되었다. 뭇 여성들을 사랑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그가 스텝을 밟으며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를 연습하던 모습이 코믹하면서 서글프게 기억된다. 제비와 꽃뱀. 춤은 유혹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그녀에게(Talk To Her)'에서 베니뇨는 남자 간호사이다. 우연히 발레 학원에서 춤추는 알리샤를 보고 사랑에 빠져버린다. 춤은 강력한 구애의 동작이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짝사랑에 빠져 있던 베니뇨. 그런데 사랑하는 그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버리고 간호사인 그는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필 수 있게 된다. 어찌 되었든 그에게 사랑이 이뤄진 것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무용극이 등장한다. ‘현대 무용의 전설’, ‘춤의 역사를 바꾼 천재’라 일컬어지는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작품이라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단순한 북장단에 맞춰 남녀가 짝을 지어 무대에 등장하는데 엉덩이를 실룩이며 추던 춤은 영화의 감동과 함께 오랫동안 잔영으로 남아있다. 인생 너무 무겁게 살지 말라고 엉덩이 한 번 씰룩하듯 가볍게 살아보라 말하는 듯 느껴져서였을까.


"나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보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


피나 바우쉬의 말이다. 따뜻한 햇살, 촉촉한 비, 그리고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자연이 벌이는 축제의 계절 봄이 왔다. 참새들은 짝을 찾는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행동한다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소가 닭 쳐다보듯 서로를 대했었다. 그러다 봄날의 훈풍에 호르몬의 변화를 맞으며 사랑이 찾아들었다. 이른 봄, 고로쇠나무에 수액이 빨려 올라가듯 말이다. 고로쇠가 물을 빨아들여야겠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듯,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참새처럼 나도 자연의 순환에 따른 호르몬의 리듬과 인생의 장단에 맞춰 춤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은 춤이다. 저마다 각양각색의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나도 피나 바우쉬처럼 궁금하다. 나의 춤을 빚어내는 내 감정은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사랑은 모든 장벽을 넘어서고 사랑은 곧잘 춤이 맺어준다. 춤은 사랑이다. 심장이 얽힌 두 사람은 호흡을 맞추고 스텝이 엉키지 않도록 노력한다. 서로를 배려할 때 사랑이라는 춤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오래 행복한 춤을 추고 싶다면 열정적 감정만으로는 버텨내기 어렵다. 때로 스텝이 엉켜버리기도 할 것이다. 포기하지는 말자. 춤이란 원래 그런 법이라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인내와 절제의 손길이 서로의 허리와 어깨를 감싸 안을 때 꼬인 스텝은 풀리고 춤은 더욱 아름답게 완성될 수 있을 것이기에.


따스한 햇살 속에 향기로운 꽃들이 가득 피어나는 정원에서 나는 아내에게 춤을 권해본다. ‘셀 위 댄스?(Shall w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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