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천국

몽골 홍고린 엘스

by 와이

몽골 고비 사막 투어 3일차. 나와 친구 Y는 홍고린 엘스의 모래 언덕 앞에 서 있었다. 이곳을 올라가 일몰을 보고 모래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눈 앞에 거대한 언덕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개미떼처럼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두 시간 정도 걸린다던데?
흠...그 정도 거리는 아닐 것 같은데?
한 발 가면 두 발 밀려나가면서 발이 빠져서 그렇대.
에이 아무리 그래도 두 시간은 아니다. 정상이 지금 한눈에 바로 보이는 수준인 걸.

현지 가이드 '만나'는 빠르면 삼십분, 대개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18:50PM 나는 Y 그리고 만나와 함께 등반을 시작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고프로와 짐벌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나는 기운차게 올라갔다. 한시간 안에 올라가야지! 언덕의 초반은 경사가 그다지 급하지 않아 제법 수월했다. 그러나 올라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모래도 점점 수렁처럼 발이 빠졌다(이 때 찍은 고프로 영상을 나중에 확인하니 헉헉 숨 넘어가는 소리밖에 담기지 않았더란다).

사태의 심각성을 슬슬 깨닫기 시작하면서, 언덕을 오르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얼굴이 새빨개져서 너나할 것 없이 정신이 가출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차라리 네 발로 기는 게 더 쉽다며 여러 무리들이 네 발로 기어 위로 지나갔다. 그래봤자 다들 숨이 차서 나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반복했지만 말이다.

중반 이후부터 Y와 내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Y는 훨씬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고 나는 이를 악물고 먼저 올라가고 있었다. 주변에서 곧 일몰이 되니 그 전에 정상에 도착해야 한다며 다그치는, 다른 팀의 가이드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이 급해졌지만 몸은 생각만큼 민첩하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모래에 계속 빠지는 걸 버티기 위해서 다리에 힘을 잔뜩 주자니 종아리 뒷근육이 미친 듯이 땡겨왔다. Y의 말마따나 쥐날 것 같은 통증이었다.


여긴 지옥인가


방문 전 후기를 찾아봤을 때 이 일정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이 많았다. 위험한 게 아니라 체력 소모가 심하다고 안내를 해줘야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아우성쳤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숨을 헐떡이며 도무지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제 곧 일몰 시간인데. 더 늦어지면 아무것도 볼 게 없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딱 죽을 것 같은데. 썰매로 모래를 찍어가며,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 가면 도착한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간신히 간신히 앞으로 나아갔다.


드디어 언덕의 끝자락이 내 머리 위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손끝에 석양빛이 닿을 만큼 정상이 가까워져 있었다. 정상의 직전이었다. 아, 고프로 다시 켜야지.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촬영을 그와중에 잊지는 않았다.


손끝이 아닌 이마에, 눈썹에, 눈시선에, 코에, 입술에, 턱선에, 어깨에, 허리에, 무릎에, 발끝에 석양빛이 닿아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대로 언덕 능선에 서서 울었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늘진 비탈길을 딱 숨이 끊어질듯한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올라와 마주 선 풍경은 더 이상의 말은 언어도단으로 느껴질 정도로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펑펑 울고 싶었지만 혼자 있는데 우는 게 어쩐지 창피해서 애써 눈물을 꾹 참아보았다. 그래도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 계속 치고 올라왔다.

정상에는 이미 사람-한국인 여행객이 90%인 몽골답게 불필요할 정도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한국어로 왁왁 떠드는 한국인-들이 가득해서 정신도 없고, 뒤쳐진 Y도 걱정되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 풍경이, 바로 이 풍경이 모든 것을 너무도 사소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 풍경을 마주하자마자 오열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왜일까.


만나가 어느샌가 다가와서 나를 챙겨주었다. Y는 아직 올라오는 중이라고 전해주었다. 아까 옆에서 지나가던 여자가 다리에 쥐날 것 같다고 말한 걸 들은 참이라 그녀는 괜찮을까 싶었다. 그래도 이날은 모래가 좀 젖어 단단해져 있어 올라오기 쉬운 편이었던 거라고, 도무지 믿기 힘든 얘기도 해주었다.


어디선가 비행기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리 없을텐데. 바람에 모래가 쓸리면서 내는 소리가 비행기 소리처럼 들리는 거라고 옆에 앉은 사람이 말하는 걸 들었다.


만나가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만나도 자기 사진을 찍는다. 오늘 같은 풍경을 마주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다. 날이 항상 오늘처럼 맑지도 않을 뿐더러 평소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편히 풍경을 보기 힘들 때가 많단다. 일몰이 유명한 다른 유명 관광지에서도 일몰 보기를 몇 번 실패한 적이 있으니 무슨 의미인지 잘 안다. 특별한 풍경이구나. 가슴 속에 뜨거운 덩어리가 차오른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눈으로 보는 게 제일 예뻐요.
맞아요!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자꾸 열심히 찍게 되는 것 같아요.


늘 그렇듯 해는 아쉬움을 자극하며 빠르게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하늘에 아직 거둬가지 못한 자신의 옷자락을 늘어뜨리며.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자 하늘이 온통 제비꽃같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이 세상 풍경이 아니었다.

죽음 뒤에 도달하는 세계가 있다면 이런 풍경일 게 분명하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Y가 드디어 언덕을 올라왔다. 못 올라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장한지고. 올라오자마자 ‘다시는 이런 거 안해!’를 외친다. 답다.


Y가 올라오는 길에 본 목격담을 전해주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국인 그룹이었는데 어떤 여자가 뒤쳐지니 남자 하나가 자기가 그녀를 데리고 가겠다며 다시 언덕을 내려가서 여자애 손을 잡고 이끌어주더란다. 다시 언덕을 내려갔다니...이 모래 언덕을 조금이라도 다시 내려갔다니...남자의 참사랑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는 진심으로 그를 응원했다.


근처에 앉아 있던 한국인 중에는 중년의 부부와 딸로 보이는 일행도 있었다. 젊은 나도 딱 죽기 직전의 상태로 간신히 올라왔는데 저분들은 어떻게 이 길을 올라오셨을까 싶어서 절로 감탄이 나왔다. 셋이 앉아 도란도란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예뻤다. 나도 부모님과 이곳을 앉아 있는 상상을 했다. 함께 이 풍경을 보고 있으면 엄마와 아빠는 얼마나 기뻐할까.




지나고나니 좀 더 꼼꼼히 감상할 걸 싶은 아쉬움이 폭발했다. 아까는 분명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여행의 아쉬움은 끝이 없다. 멈추지 말고 더 빠르게 올라갔더라면(실제로는 그럴 체력은 전혀 없었음에도). 그래서 정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사람도 더 적은 상태에서 내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죽을 때까지 결코 잊지 못할 풍경 하나가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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