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고비 사막
초록과 푸른 하늘, 별을 보러 간 몽골 여행이었지만, 마음에 제일 남은 건 이른 아침마다 혼자 거닐며 마주친 일출의 풍경이었다.
웹툰을 꽤 즐겨 보는 편이다. 몽골이 내게 온 것도 웹툰을 통해서였다. 세 명의 작가가 함께 몽골을 여행하고 연재한 웹툰 <한 살이라도 어릴 때>를 재미나게 읽으며 나도 눈이 닿는 저 끝까지 펼쳐진 푸른 초원을 보고 양볼이 미어터져라 양고기를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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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떠나야 하는 여행지라니! 비록 남미 여행 이후 문명이 소멸한 오지 여행에 대해 예전만한 로망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몽골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하는 건 아니니 부담이 적었고,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라 한국인이 운영 하는 투어 업체가 많고 한국어로 투어를 진행한다는 것도 비교적 마음이 놓였다.
몽골에 도착하기도 전에 여행은 각종 사건사고로 시작되었다. 토요일 주말 오후 꽉막힌 서울 시내 도로를 가로질러야 했던 공항버스는 평소보다 시간이 배는 걸렸다. 나와 친구 Y는 비행기 출발 한 시간 전쯤에서야 아슬아슬하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Y는 심지어 수화물 부치는 너무 늦어져서 짐이 제대로 실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협박까지 당했다. 다행히 탑승 후 승무원이 짐이 잘 실린 걸 확인해줬지만 말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비행기 좌석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데 이번엔 앞자리 사람이 좌석을 크게 흔드는 바람에 앞좌석에 끼워둔 내 커피가 바지 위로 그대로 쏟아졌다. 새로 산 바지였는데...앞자리 사람도 놀라 미안함을 표현했지만 커피 얼룩은 영 지워지지 않았다.
늦은 밤 울란바토르 공항의 탐탐(그렇다, 한국에 있는 그 탐앤탐스 커피이다)에서 현지 가이드를 무사히 만났다. 숙소 앞 대로변에 씨유 편의점이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걸 보며, 그렇게 첫째날이 지나갔다.
#투어 첫째날
다음날 시내에서 환전과 장보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고비 사막으로의 투어가 시작되었다. 투어는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기사 아저씨 '나츠카'와 한국말을 하는 현지인 가이드 '만나' 두 사람과 함께였다. Y와 아저씨 이름이 예쁜 일본 여자 이름 같다고 웃었다. 나츠카 아저씨는 말없이 친절했다. 그리고 스피드를 즐기는 편이었다. 앞선 차의 속도가 마음에 안들면 거침없이 역주행을 하곤 했다. 한국어는 독학으로 배웠다는 만나는 통신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이었지만 몽골 여행 성수기인 5~8월에는 투어 가이드 일을 한다고 했다. 만나라는 이름은 정말 한국어의 ‘만나다’라는 의미라고 했다. 외할머니가 한국에 사셨었는데,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일을 하란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그래서 몽골식 이름이 아니다보니 정작 몽골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했다.
만나와 나츠카 아저씨. 아마 이것이 여행 동안 가장 많이 눈에 담은 광경일 것이다.
투어 첫째날 미국 그랜드캐년과 비슷한 퇴적층 협곡인 차강소브라가를 둘러보는데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졌다. 서둘러 차로 돌아가려는데 폭우에 땅이 엄청난 진흙탕이 되어버렸다. 미끄러워진 바닥에 결국 Y는 몇번을 넘어지고 굴렀다. Y는 울상이 된 채 젖은 몸을 떨었다. 첫날부터 종잡을 수 없는 대자연의 변덕으로 조난 체험을 제대로 했다.
숙소인 게르에 도착해 진흙투성이가 된 몸을 씻으려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물은커녕 지린내와 약한 샤워 수압만이 우리를 반겼다. 또, 게르 숙소는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어렵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이후에는 강제로 전체를 소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샤워장의 불마저도 22시가 지나니 강제로 꺼졌다. 남미 여행으로 이미 오지의 끝을 보고 온 나는 이정도는 웃어 넘길 수 있는 기분이었지만, Y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각자 멘탈 체크를 하는데 이정도일줄은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게르 안에는 벌레가 너무 많았다. 깜깜한 초원에서 유일하게 불빛이 들어오는 곳이라 벌레가 더욱 몰리는 듯 했다. 많아도 너무 많아서, 새삼 놀라거나 죽일 필요조차 안느껴질 정도였다. 게르 출입문의 경첩이 고장 나 문을 제대로 잠글 수 없어 더 침입자가 많았던 것 같다. 귀뚜라미가 멋대로 울음을 연주하고 땃쥐가 후다닥 침대 아래 흙바닥을 내달렸다.
나는 따뜻한 침낭 안을 파고들어가 정신 수련을 위해 볼리비아에서 고난의 순간을 찍어둔 영상을 한 번 더 돌려보았다. 정신이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투어 둘째날
아침 일곱시쯤 되면 캠프 스태프가 게르를 돌아다니면서 게르 머리뚜껑(?)을 반쯤 열어준다.
이 여행에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던 첫번째 사고가 일어났다. 욜링암에서 승마 체험을 할 때였다.
욜링암은 독수리과에 속하는 ‘욜’이라는 새의 암(협곡)이라는 의미로,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지역이나 요근래에는 지구 온난화가 심해져 여름에는 얼음을 볼 수 없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말을 배정받았다. 승마를 워낙에 좋아해서 특히나 기대하던 일정인데 ‘사람이 너무 많으면 못 탈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들은 터라 너무 신났다. 나는 승마바지를 챙겨 입고 고프로까지 가슴팍에 매달았다.
욜링암은 초록과 암벽이 어우러진 멋진 협곡이었다. 새파란 하늘 아래 푸른 협곡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모든 걸 완벽하게 느끼게 해줬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감탄을 질렀다.
그런데 내가 탄 말이 출발부터 꽤나 성질을 부려대는 통에 나는 긴장감을 느꼈다. 이전에 승마를 배울 때에도 낙마한 적이 있는지라 더욱 그랬다. 내 말은 자꾸 개울가로 가서 물을 마시려 하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말에 발길질까지 해댔다. 그러다 좁은 개울가를 건너가는데 (나중에 들어서 안 사정이지만) 어느 멍청이가 자기 말의 고삐를 잡지 않고 있었고, 바닥에 질질 끌리던 그 고삐가 내 말의 발에 감기면서 크게 놀란 내 말이 날뛰기 시작했다! 정말 길이 좁았고 여러 사람들이 탄 말이 서로 가깝게 모여있는 터라 순간 머릿속에 경고등이 울렸다. 일단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고 말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도무지 제어가 되지 않았다. 이러다 말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면 일이 심각해지는데. 긴장과 흥분 냉정함이 동시에 머릿 속을 휘몰아쳤다. 그때 근처에서 동행하던 스태프가 재빨리 다가와서 말을 잡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달려들어도 말은 쉽사리 진정하지 않고 계속 날뛰면서 나에게 뜻밖의 로데오를 선사했다. 난 최대한 말 위에 버티려고 하고 있는데, 스태프는 나를 빨리 말에서 떼내려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스태프 쪽으로 몸을 떨어뜨렸고 그대로 개울가로 떨어졌다. ‘빨리 날뛰는 말로부터 멀어져야 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생각만큼 몸이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았고, 스태프가 순식간에 나를 끌어올려서 개울밖으로 나를 빼내주었다. 뒤이어 말도 진정되었다.
나도 놀라고 주변 사람 모두가 놀랐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말을 진정시킨 스태프 아니, 생명의 은인께서 현지어로 (아마도)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내 젖은 옷을 받아가며 자기 옷을 대신 건넸다. 장갑을 벗으려는데, 손이 벌벌 떨리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대답도 나름 침착하게 하고 안다쳐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그치지 않는 사건사고에 약간의 기묘함마저 느끼는 여유를 부리던 차였지만, 사실 놀라긴 정말 놀랐나보다. 생명의 은인께서는 내 옷도 개울물에 야무지게 빨아서는 넓적한 돌 위에 말려주기까지 했다. 그 풍경도 어찌나 기이하면서도 정교하고 또 자연스러운지. 나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확실히 너무 놀라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내가 탔던 문제의 조랑말.
#투어 셋째날
아침 햇살 속 게르 숙소.
게르 출입문이 작고 낮은 탓에 나와 Y는 번갈아가며 문짝에 머리를 박았다. 덕분에 여행 내내 우리는 구호를 만들어 외쳤다. "게르에서는 머리 조심!!!"
셋째날은 낙타를 타는 체험이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천천히 고비의 모래 언덕을 돌아보는 코스였다. 내 낙타는 계속 하품해대면서 Y의 다리에 침과 콧물을 뿜어댔고, Y의 낙타는 걷는 동시에 무른 똥을 계속 싸면서 똥 묻은 꼬리를 내 다리 근처로 거세게 흔들었다. 우리 둘 다 으악거리느라 혼났다. 낙타에서 내리자마자 나와 Y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어제 승마가 훨씬 좋았다며 낙타는 다시 안타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둘째날에 이어 쉴틈도 없이 죽음과 인사를 했던 두번째 사고도 이날 일어났다. 감격에 젖어 홍고린 엘스 모래 언덕의 일몰을 보고 난 후였다.
일몰 시간이 지나니 하늘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언덕 정상까지 힘들게 들고 온 모래 썰매를 타고 빠르게 언덕을 하강할 차례였다. 만나가 요령을 알려줬지만, 썰매는 모래에 푹푹 빠지기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만나가 그냥 발을 썰매 안에 넣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썰매에 가속이 붙더니 언덕을 미칠듯한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럭 겁이 나서, 만나가 알려준 대로 속도를 줄여보려고 발을 썰매 밖으로 다시 꺼내려했다. 이즈음에서 뭐가 잘못된 건지 어느샌가 나는 썰매에서 튕겨져서 옆으로 데둘데굴 굴렀다. 얼굴부터 모래에 쳐묻혔다. 잠시 정신이 암전된 사이, 어디선가 괜찮냐는 질문과 함께 다른 팀의 현지 가이드 한 분이 놀란 채 다가왔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써보니 코밑이 젖어있었다. 손을 대보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팔과 종아리에도 피가 묻어 있다. 뜻밖의 유혈 사태에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그 가이드의 팀인 한국인 여자 두 분도 휴지를 건네며 다가왔다. 가슴에 매달고 있던 고프로말곤 아무런 짐-그러니까 핸드폰-도 없는데다가(썰매를 타다가 물건이 날라가 잃어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 썰매를 출발시키기 전 모든 짐은 만나에게 맡겨두었기 때문이다) 날이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던 터라 사리 분별이 안되었다. 혹시 코피말고 다친 곳은 더 없는지 물어보자, 그 분들이 내 얼굴을 핸드폰 조명으로 비춰봐주었다. 얼굴이 온통 모래투성이인 것을 빼면 괜찮아 보인단다. 어디 코가 심하게 부딪혀서 찢어지기라도 했나 싶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럼 코피는 왜 갑자기 나는 걸까요.
아마 건조해져 있는데 크게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하. 그런데 그만 가셔도 괜찮아요. 저 구조해주시느라 괜히 시간 쓰시는 것 같아서...
저희 그냥 쉬고 있었어요, 괜찮아요!
구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이만 그럼 일행을 찾아서 가볼게요.
(이게 웬 만담인가..전날도 이날도 나는 흥분하면 되려 침착하게 말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 것 같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나는 생명의 은인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 세상이 참 따뜻하고 나는 참 뭣하게 운이 좋았다...
Y와 만나는 나보다 뒷편에 있을 것 같아 나는 걸어서 언덕을 내려가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능선 근처에서 사람들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날이 새까맣게 어두워졌다. 조명 하나 없는 나는 이미 서로 엇갈린걸까 그냥 투어 차로 가는 게 낫나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서로 일행을 부르는 소리가 모래언덕에 메아리쳤다. 어떤 가이드는 핸드폰 액정 화면에 한국인 손님 이름을 띄우고는 모래언덕을 다시 오르고 있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나는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 언니!언니!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나였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내가 하도 빨리 내려가서 내가 구르는 걸 전혀 보지 못한데다가, 내가 보이지 않자 내가 먼저 차로 돌아갔다고 생각해서 차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가 나타나지 않아 만나가 다시 나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모래 언덕을 출발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 기분이 바닥을 쳤다. 피를 본데다가 온몸이 욱씬거리는 걸 보니 다음날 몸이 괜찮을지 걱정되었다. 무엇보다 이틀 연속으로 죽을 뻔한 사고를 겪자니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았다.
그 와중에 이 모든 게 또 고프로에 찍혔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Y는 이쯤되면 그 고프로는 블랙박스 아니냐고 했다.
어두운 차안에서 되는대로 모래도 털어내고 짐정비도 미리 해보았다. 정신이 지쳐왔다. Y가 2NE1의 “I Don’t Care”를 틀어주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역시 어릴 적 듣던 노래가 최고라며.
그날밤엔 별똥별과 은하수를 보았다.
사실 투어 내내 매일밤 별보기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북두칠성이 한국보다 훨씬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밤이 어두워질수록 별은 더 선명해지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까지 눈에 들어왔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빠르게 지나가는 아이, 짧게 지나가는 아이, 희미하게 사라지는 아이. 나만 몰랐지, 밤하늘에서는 참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구나. 서쪽 하늘 낮은 곳에서는 화성이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이름을 몰라 내가 멋대로 사슴자리라고 이름붙인 한 무리의 별들도 그 옆에서 깡총였다.
별사진을 찍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많은 준비와 솜씨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추위를 버틸 수 있는 인내심도?
#투어 넷째날
습관성 모닝 게르 사진
Y가 이제 적응한 느낌이란다. 오, 너도 그 느낌이 왔구나. 여행이 좀 지나다보면, 현실의 삶이 점차 잊혀지고 원래부터 이렇게 살았던 것만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여행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포장 도로를 달리는 일보다는 비포장의 초원길을 달리는 일이 많았다. 표지판도 없는 끝없는 초원을 나츠카 아저씨는 몸 속 내비게이션이라도 있는지 거침없이 달렸다. 그럴때마다 차체는 좌우로 굉장하게 흔들렸는데, 각오했던 것보다는 견딜만 했다.
흔들림보다도 먼지로부터의 보호가 절실했다. 어디로 들어오는 건지 달리는 내내 흙내가 차 안으로 훅 끼쳤다. 나츠카 아저씨가 틈날때마다 마른 걸레로 차 안 짐에 소복히 내려앉은 먼지를 닦아냈다. 이래서 여행 준비물로 사람들이 마스크를 챙겨오라고 했던 거구나 싶었다.
바얀작Bayanzag
‘바얀’은 많다는 뜻으로, ‘작’이라는 이름의 가진, 건조 지역의 작은 관목이 많다는 의미의 지명이다. 일몰 시간에 바얀작은 마치 불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암벽이 빨갛게 물들어 flaming cliff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곳은 영국인 고고학자들에 의해 다량의 공룡 화석이 발굴된 곳이기도 하다.
#투어 다섯째날
여명에 밀려나는 그믐달이 게르 캠프 위에 두둥실 떠있다.
바가 가즐링 촐로Baga Gazriin Chuluu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암석 사이로 가벼운 트레킹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바가 가즐링 촐로는 테를지까지 한번에 이동이 어려워 머문 한적한 곳이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트레킹을 일찍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나는 홀로 게르 캠프 옆의 양과 염소떼를 쫓았다. 뉘엿거리는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피해 도망가다가도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안온한 작은 모험이 나를 즐겁게 했다.
내가 가까워지면 자꾸 멀어지니, 사진에 주로 찍히는 건 앞모습이 아니라 궁뎅이가 보이는 뒷모습뿐이었다.
이날밤 건조한 사막 공기에 기어코 코피가 터졌다.
#투어 여섯째날
테를지를 향해 가는 길 멀리서 또 양과 염소떼가 보였다. 나츠카 아저씨가 잠시 차를 세웠다. 전날 혼자 그 무리를 쫓아갔던 게 꽤 재밌었어서 Y도 이들을 가까이서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천천히 다가가야 도망가지 않는다면서 나츠카 아저씨가 웬 풀을 뜯어 손에 쥐어주었다. 냄새를 맡으니 쪽파 같은 매운내가 올라왔다. 시킨대로 조용히 다가갔지만 결과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다가가는 속도보다 아이들이 도망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아이들을 쫓아오다보니 투어 차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멀어졌다.
무리 사이에서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우리 그냥 우다다다 뛰어볼래?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무리를 향해 돌진하는데, 아이들은 더 정신 나간 것처럼 재빠르게 도망쳤다. 잡힐 듯 안 집힐듯 기어코 또 더 거리가 멀어진다. 에잇 됐다, 이 녀석들아.
숨을 몰아쉬며 언제 다시 투어 차까지 돌아가지 생각하고 있는데, 나츠카 아저씨가 차를 운전해서 나타났다. 만나가 그렇게 뛰어서 쫓아다니는 걸 주인이 봤으면 혼났을 거라고 했다.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무리를 억지로 쫓았다고.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그대 뒷모습
이날따라 차량 이동 중 쉬는 시간이 없었다.
몽골 여행을 출발하기 전 걱정했던 '대자연에서의 볼일 보기'가 여행 중 생각보다 일어나지 않았다. 두어 시간마다 쉬는 시간이 있었고, 그 때마다 비록 푸세식일지언정 화장실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상 시 가리개용으로 쓰려고 작은 가방에 꺼내두었던 우산도 며칠전부터는 그냥 큰 짐에 넣어둔 참이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마을도 들리지 않고 그저 달리고 또 달렸다...또 달린다...동공이 흔들려왔다.
만나, 우리 도착하려면 한 한시간 정도 더 가야해요?
네, 왜요 언니?
저 화장실 급해서 그때까지 못기다리겠어요. 볼일 봐야할 것 같은데 잠깐 차 좀 세워주세요.
차가 멈추고 손에 휴지와 티슈를 꼭쥐고 최대한 멀리 걸어나갔다. 가는 길에 왜 때문인지 꽃이 참 많이 피어 있었다. 적당히 갔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낮은 수풀을 등지고 쪼그려 앉았다. 볼일을 해결하며(?) 간신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뿔싸, 그다지 잘 숨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정면으로 걸어나온 우리 차량쪽에서는 내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가 지나가던 도로쪽으로는 언덕의 경사가 낮아 지나가는 차가 내 시야에 다 들어왔다-그말은 그 도로를 지나는 차에서도 내가 잘 보일 거라는 의미였다. 큰 트럭들이야 창피하지만 다시 안 볼 사람들이 타고 있었을테니 아무래도 좋았지만, 투어팀의 코스가 거의 다 비슷한데다가 몽골 여행객의 90%는 한국인이니...아찔한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테를지 국립 공원Terelj National Park
울란바토르 수도 바로 근처에 위치한 국립 공원으로 며칠씩 투어를 떠날 여유가 없는 여행자들은 이곳의 게르 숙소에 머물며 '몽골스러운' 체험을 하기도 한다. 전반적인 시설도 고비 사막에 위치한 캠프나 체험 시설보다 당연히 더 좋다.
테를지 국립 공원에 도착해 투어의 두번째 승마를 했다. 부디 이번에는 낙마하지 않게 해주세요.
언니, 달려보고 싶어요?
네! 근데 무서우니까 경보만 조금.
알겠어요.
역시 약간의 경보 정도 속도만 붙어도 말이 상하로 크게 흔들리는 게 제어가 쉽지가 않았다. 다시 두려움이 슬슬 밀려왔지만 말에서 떨어질 것 같진 않았다. 앞을 쳐다보았다. 새파란 초원에서 티없는 햇빛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말을 타고 있었다. 온 세상이 상쾌하게 다가왔다.
몽골 전통 요리인 허르헉Horhug
양고기와 야채를 담은 냄비에 뜨겁게 달군 돌을 함께 넣고 이것을 두어시간 동안 푹 익혀내 만든다. 맛있다.
#투어 마지막날
Khan Terelj Camp
테를지의 이 게르 캠프에서는 밤동안 게르마다 나무장작을 넣어 불을 떼주었는데, 불이 한창 타오르면 너무 덥고 불이 꺼지면 너무 추워 온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손풍기를 틀었다가 다시 장작을 넣고 그러다 다시 게르문을 열어두기를 반복했다.
마지막날까지 소소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Y의 파운데이션 병이 깨졌고, 우리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Y는 마지막으로 또 게르 입구에 머리를 박았다. Y는 다시는 게르에서 자지 않을 거고 자기는 게르가 싫다며 이를 박박 갈았다.
게르 캠프에서 처음으로 본 경고문
이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생략)
테를지 국립 공원을 떠나 일주일만에 문명-울란바토르 시내로 돌아왔다. 대자연 속에서 지내다 잘 정돈된 도심을 지나다니니 그새 낯설었다. 그래도 일주일만에 아이스 라떼를 먹자 한 입만에 감동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아, 다른 건 몰라도 문명 세계의 커피는 도저히 못 끊겠다.
언니 커피 마셔서 좋아요?
응! 행복해요!
남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역시나 제법 야생미가 넘치는 여행이었다. 그래도 다른 여행객에 비해 (돈을 써서) 상대적으로 편히 여행을 한 편인데도 말이다. 차량도 푸르공이 아닌 '델리카'라는, 에어콘도 잘 나오고 오프로드에서 바닥의 흔들림이 덜한 차량을 선택했었고, 다른 일행 없이 나와 Y만 하는 단독 투어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예뻐서' 선택하는 푸르공 투어 차량
승차감도 나쁘고, 에어콘도 나오지 않으며, 무엇보다 좌석이 앞뒤로 달려 있다. 즉 인원이 여럿이면 누군가는 역주행으로 타고 가야한다는 소리. “사람이 타는 차라는 걸 깜빡하고 만들었대요”라고 만나는 말했다.
그래서 문명-예를 들어 와이파이-을 벗어나면 정서가 불안해진다거나 위생이나 서비스에 예민한 사람에게 썩 적합한 여행지는 아니다. 몽골 여행을 위해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주어진 상황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죽음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나드는 아찔한 사건이 있었지만, 이건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어야 할 것이다. 위에는 적지 않았지만 두 차례의 부상으로 나는 몸 왼편 전체에 타박상을 입었었다. 시퍼런 멍이 몸을 가득 뒤덮었는데 참으로 장관이었다. 한번도 그런 종류의 부상으로 병원에 간 적은 없지만 만약 병원에 갔다면 전치 2~3주는 너끈히 받았을 것이다. 덕분에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한달 넘게 여행의 진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몽골에 간다면 역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그렇다면 초록의 초원과 푸르른 하늘 그리고 반짝이는 별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