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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Aug 09. 2020

질문하는 사람

묻고 듣는 것, 이해하고 찾아나가는 것

누군가를 만난다. 때로는 오래된 친구를, 때로는 아직 아는 게 별로 없는 낯선 이를. 한 두 마디를 주고받다 보면, 늘 더 알고 싶은 게 생긴다.

질문에 대답이 이어지고 대답은 다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대화는 끝없는 주고받음이 된다.


묻는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 

예전에 잠시 일했던 스타트업은 별명을 쓰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내가 스스로에게 지어준 이름이 '와이'였다. 나를 잘 표현하는 단어이자 가장 나다운 행위. 나는 동료들이 나를 '질문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이 나다움이란 것에 썩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건너 아는 지인으로 배우를 만났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보는 것에 고민이 많아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배우 생활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었어요? 어떤 게 견디기 어려웠어요?  

저는 아마추어 공연 한 번뿐이었지만, 끝나고나니 너무 마음이 공허하고 힘들었거든요. 원래 이 일은 그런 건가요?  

어쩌다 배우가 될 결심을 했어요?   

오가는 대화 속에 배우가 처하게 되는 환경이 얼마나 녹록지 않은지, 좋은 연기라는 것은 얼마나 주관적인지 들었다.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도 그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매번의 작품이 끝날때마다 늘상 마주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냥 어릴 적부터 슈퍼스타가 되고 싶었어서 배우를 시작했다는 그의 대답에 같이 웃었고, 사실은 연기 자체보다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이루어낸다는 데에 자신의 진짜 만족감이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과 의미있는 결과를 내는 게 행복하다는 그 말에서 나와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의도치 않게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드는 때도 있었다. 서슴없이 날아드는 질문에 상대방은 당황하기도 하고, 혹여 나를 남 일로 이러쿵저러쿵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사람처럼 여기고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뒤늦게 '아차!' 싶은 마음이 들며 상대방에게 무척 미안했다.

그래서 몇 가지 나름의 규칙을 세워두었다. 먼저 내 표현이 지나치게 직설적이지는 않은지 한 번 더 생각한다. 내 의도가 좋더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른 느낌이 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다음에는 상대방의 대답을 꼼꼼히 듣고 반응한다. 상대방이 나누어주고 있는 소중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으로는 나의 질문이, 우리의 대화가 당신에게도 유의미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위해서 내 감정도 솔직하게 공유하고, 우리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대화를 이어나간다. 


어찌되었든 난 질문을 계속한다. 당신의 대답에서 그 다음 생각의 씨앗을 찾아내고 또 다시 질문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다 누군가로부터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되려 질문을 받을 때도 있었다. 

"글쎄. 질문을 하는 게 곧 ‘나’ 같아."

나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그 사람조차 언어화하지 못한 내면을 함께 들여다보는 것. 그래서 당신이 내게 무미건조한 타인이 아니게 되고, 당신도 나와 똑같이 여러 모습을 지닌 복잡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

그리하여 각자의 특별함과 굴곡으로 이 세상이 채워져있다는 것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하는 것. 그래서 내가 마주쳤고, 마주치고, 마주치게 될 무수한 당신들과의 어려움을 보다 긍정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러한 당신들과 함께 살아내는 이 삶 또한 긍정하게 되는 것. 

무엇보다, 세상에서 제일 알고 싶은 당신인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함으로써,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하게 되고 세상에 대한 나의 태도를 정리하는 것. 그래서 나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답을 확인해나가는 것. 




또 누군가를 만난다. 때로는 나와 닮은 사람을 때로는 나와 다른 사람을. 질문과 대답의 끝에서 난 당신의 얼굴과 언어에 비쳐진 나를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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