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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22. 2021

얼굴 보여줘서 고마워

어쩜 사람이 이다지 가까우면서도 멀 수 있나 싶다. 고마우면서도 미울 수 있나 싶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수준으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 착각이 독이 되어 서로를 상처입히고는 한다.


엄마에 대한 얘기다. 




아마추어 공연 직후 나의 예술적 감수성이 한껏 풍부해져있을 때, 나는 엄마도 한때 예술계에 투신한 적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연극을 보러 명동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희곡집을 열심히 읽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학창시절 엄마는 학교 전체 오디션에서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어 대규모 연극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유명한 연출가가 연기 지도를 할 정도로 본격적인 수준이었다. 엄마는 성실하게 공연을 준비했지만, 최후의 순간 그 역할을 포기했다. 다름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과의 애정씬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장면을 연기하는 게 너무도 부끄럽고 부적절하게 느껴져서 도무지 연기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연출가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격렬한 학생 시위 때문에 연습실을 오고가는 게 불안해 연습에 꾸준히 참여가 어려우니 그만두겠다고 둘러댔다고 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모집에서 여주인공으로 뽑힐 정도로 엄마에게 대단한 재능이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고작 그런 귀여운(?) 이유로 역할을 고사했다는 것은 더욱 놀라웠다. 그 땐 그런 시대니까, 엄마는 말했지만 나는 엄마의 성격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엄마가 연기에 뜻이 있었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한편으로는 엄마가 나에게 물려준 유산에 대해 생각했다. 일종의 애매한 끼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노래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더 어릴 적에는 까불거리며 춤도 곧잘 추곤 했는데, 막상 성인이 되어 연기를 해보니 세상에는 엄청난 끼쟁이들이 넘쳐났고 나는 그저 책상물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이상으로 나를 예술의 세계에 던져넣고 싶냐고 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딱 이정도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애정씬 때문에 여주인공을 포기한 엄마나 책상물림을 굳이 벗어나고 싶지 않은 나나 닮은 데가 있는 것이다. 




엄마는 헌신적인 사람이어서 같이 있으면 일단 편하다. 프렌치토스트가 먹고 싶다고 하면 어느 새 잘 익은 샛노란 빵이 예쁘게 접시에 담겨 내 앞에 놓이고, 허리가 아프다 싶으면 어느 새 옹골찬 팔이 내 허리를 꾹꾹 눌러온다. 입안의 혀처럼 나의 편의를 챙겨주는데, 그게 고마우면서도 어떤 때는 몸서리칠만큼 싫을 때도 있다. 그냥 내버려둬도 알아서 할텐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싫음은 대략 세 가지 이유로부터 비롯된다. 나를 챙긴답시고 엄마가 부산스럽게 굴면 나까지 덩달아 정신이 없어지는 게 첫번째이다. 안 그래도 쉬이 긴장을 해버리는 터라, 성실한 꿀벌마냥 붕붕거리는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피로가 두배가 된다. 두번째로는 나를 챙기느라 무리해서 엄마가 아프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복장이 터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병뚜껑을 잘 못 딸 정도로 손가락이 쑤신다면서 그 손으로 자꾸 뭘 해주려 하면 나는 심란해질 수밖에 없다.


엄마의 헌신이 무서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마치 다정한 올가미도 같아서, 그 대가로 엄마가 은연중 기대하는 것을 내가 채울 수 있을까 두렵다. 엄마는 콧방귀를 뀌며 자기는 아무것도 바라는 거 없는데 과장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럴리 없다. 

엄마한테 나는 늘 자랑거리였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라는 딸이 있고 우리가 보통의 모녀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 자체가 엄마를 뿌듯하게 했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의 관계에 항상 열심이었다. 엄마의 그 마음을 아는 이상, 나는 이 행복과 이상을 지켜줘야 한다는 묘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엄마와 진탕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시작이 무엇이었는지는 놀랍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한낮에 3시간 넘게 지치지도 않고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엄마도 나도 모두 진땀을 빼가며 목이 쉬어라 울부짖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거의 절규에 가까운 호소를 했더니 엄마는 '너는 배가 불러서' '네가 힘들어봤자' '네가 힘든 걸 뭘 안다고'라는 식의 문장을 내뱉었다.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엄마란 사람이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나. 잔인해도 이렇게 잔인할 수가 없네. 정말 이기적이고 잔인한 사람이다. 평생 가도 잊지 못할 언사였다.

결국 그 날의 싸움은 엄마가 몰랐던 나의 힘듦을 알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긴 했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까지 힘든 줄은 몰랐다며 왜 말하지 않았냐고 했다.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며. 참으로 기가 막혔지만, 이미 잔뜩 상처받은 나로서는 더이상 가타부타 따져들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해둔다. 크로와상을, 팥빵을, 돈까스를. 괜찮다는 가게를 틈틈이 알려주고, 좋아할 것 같은 물건을 직접 사다준다. 


한번은 큼지막한 월병을 사다주었다. 어쩌다보니 엄마는 하루가 지나서야 그걸 먹게 되었는데, 한입 베어물고나니 예상과 달리 월병에는 팥소가 아니라 흰앙금이 들어있었다. 엄마는 마침 어제부터 어쩐지 흰앙금이 땡겼다며 어제는 아쉬운 마음에 팥소가 들었을 거라고 여우의 신포도 같이 굴었네, 재잘거렸다. 아이처럼 신나게 월병을 먹는 엄마를 보는데 에휴, 어떻게 당신을 계속 미워할 수 있나 싶더랬다. 

금새 월병 하나를 해치우고 나를 차에서 내려주며 엄마는 내 등뒤로 다정하게 말했다. 

얼굴 보여줘서 고마워

뒤통수가 얼얼했다. 인사말을 얼버무리며 지하철을 내려가면서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게 뭐라고. 얼굴 보는 게 뭐라고. 그거 아무것도 아닌데. 왜, 어째서.



엄마는 아무래도 나를 너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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