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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22. 2021

함께 해줘서 고마워


빚진 기분이 드는 소소한 일이 있다. 그것은 내가 사람들의 생일을 잘 못 챙긴다는 것이다. 그걸 기억하는 게 왜 이다지도 어려운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쩜 그걸 잘 기억하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하여간에 매년 내 생일이 되면 이런저런 사람들이 축하 메시지도 보내주고 선물도 보내주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차!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사람 생일은 언제였지? 선물에서 굳이 보답을 신경쓰는 것은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현실의 나는 그런 순수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누군가 나한테 이런 성의를 보였는데...이 마음이 너무도 불편해, 아예 몇몇 지인의 생일은 매해 반복 설정과 함께 달력에 등록해놓고서는 겨우 몇년전부터에서야 꼬박꼬박 생일(선물)을 보답할 수 있었다. 




늘 나의 관심사는 개인의 영역에 있었다. 아니, 그 숙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히 벅차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일테다. 그래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신기했고, 자신을 넘어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낯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이 자기 삶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하고서 다른 이들의 삶에 관여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괜한 오지랖이 아닌가?   


그러던 작년, 회사를 통해 진행하는 영어 수업의 선생님이 한번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이 사실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는 거 알아요. 수업을 듣는 학생 이상의 것을 해주셨다고 생각해서 이 수업이 특별해요.”

코로나 직후 많은 회사들이 대면으로 진행하던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축소 혹은 중단했고, 주로 중개업체를 통해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의 경제 상황도 위기에 처한 때였다. 같이 수업을 듣던 회사 동료들이 선생님을 위해 회사에 대면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해서 계속 진행할 수 없는지 적극적으로 문의했고, 다행히 회사가 이것을 허용하면서 영어 수업은 온라인으로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순전히 그분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 때 처음, 마음 속에 '연대'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정치적인 뉘앙스가 포함된 그 단어가 항상 조금 껄끄러웠지만, 그 순간만큼 그 단어가 따뜻하고 단단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서 2인3각을 하면서, 누군가와 발을 묶고 어깨를 붙잡은 채 같은 걸음으로 나아가던 그 기억처럼 말이다. 타인을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것을 깊게 생각한 적도 없고, 사회 문제에 헌신한 적도, 헌신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누군가의 의지가 실현되어 타인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되고 그것이 감사로 남는 과정을 목도한 것은 내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그래서 함께 하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반드시 거대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수준의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나의 삶에 아무런 고민이 없다거나, 그것이 완벽해서 남을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삶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주변에 어깨가 내려앉은 사람이 있다면 그 어깨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내 생일 선물로 한결같이 먹을 거리를 선물했다. 누구는 자기가 아는 맛있는 디저트집의 쿠키를 배송해주고, 또 누구는 함께 갔던 여행이 생각난다며 제철 무화과를 보내주었다. 외로운 코로나 시대에 서로 만나기도 어려운데 원격으로 챙김을 받자니 뭉클했다. 


한 때 오롯이 나의 힘으로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고, 오만하게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러다 가끔씩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게 된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나의 뼈, 나의 살, 나의 마음을 살뜰하게 채워주었는지. 정신없이 몸이 아픈 날, 말하기도 전에 내가 필요한 걸 챙겨주는 엄마. 이모의 옥수수빵이 먹고싶다고 지나가며 말했던 걸 기억하고서는 어느 새 그걸 해다주는 이모. 우울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던 대학생 시절, 수업도 제끼고선 재밌을 것 하나 없는 나의 하소연을 들어주던 친구. 

누군가가 나와 함께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안온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굉장한 일이다.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온 지 서른 해도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어떤 보이지 않는 양수에 따뜻하게 담겨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누군가의 다정함으로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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